문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차세대 리더로는 소설가와 시인이 골고루 꼽혔다. 팍팍해진 현실 때문인지 서사적인 이야기보다 감성적인 글쓰기를 하는 문인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소설가 공지영·신경숙 씨가 공동 1위를 차지해 ‘두 여자’의 전성시대를 예고했고, 시인 안도현·문태준 씨가 그 뒤를 이어 ‘감성 회복’을 바라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언제부터인가 국내 소설계에 재기발랄한 신인들이 가세해 선배들과 경합을 벌이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최근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가수 타블로가 펴낸 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이 서점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한 달여 베스트셀러 순위를 지킨 것은 문단의 얼굴을 붉히게 만든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국내 소설가들은 지금 외국 작가들에게 영토를 많이 내주고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눈먼 자들의 도시>의 스페인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 <사랑하기 때문에> 등으로 탄탄한 마니아 층을 형성한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 올해 펴낸 산문집 <흐르는 강물처럼>의 인기가 언제 시들지 모를 정도인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 등 유럽·미국 대륙과 일본 등에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한 서점 통계에 따르면 한국 소설 판매량이 외국 소설 판매량의 4분의 1 정도인 형편이다.
독자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이름값’ 하는 몇몇 중견 작가들뿐이다. 김훈·이외수·황석영 등 ‘나이 드신’ 작가들이 쟁쟁한 외국 작가들의 책들과 경쟁하며 체면을 지켜주었다. ‘차세대 리더’로 꼽힌 공지영씨가 지난 봄에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펴내며 지난해 말 낸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의 여세를 이어갔다. 또, 신경숙씨는 지난해 <리진>으로 6년의 ‘침묵’을 깨고 돌아와 최근 <엄마를 부탁해>를 펴내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르며 ‘재기’에 성공했다.
소설의 묘미는 무엇보다 재미이다. 읽는 재미가 있어야 감동도 주고 메시지도 분명히 던져줄 수 있다. 감동과 메시지를 찾아보겠다고 재미없는 이야기에 인내하며 견디는 독자는 드물 것이다. 공지영·신경숙 씨가 차세대 리더 1위에 오른 배경에 이 점도 분명히 작용했으리라 본다. 작가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작품이다. 작품으로 승부를 걸었기에 독자들의 사랑이 지속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불러들여 울고 웃고 또 함께 분노하고 고민하는 한 ‘두 여자’와 독자들과의 끈끈한 유대는 끊어지지 않을 듯하다.
시인 안도현·문태준도 주목…‘감성 회복’ 기대
안도현 시인은 올해 <간절하게 참 철없이>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등을 엮어내는 등 꾸준한 창작 활동을 해내고 있다. <가재미>로 잘 알려진 문태준 시인은 <그늘의 발달> 등을 펴내 시들지 않는 창작욕을 과시했다. 안도현 시인은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문태준 시인은 불교방송국 제작 PD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연수씨는 올해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과 산문집 <여행할 권리>를 잇달아 발표해 여전히 저력을 발휘하고 있고, 지난해 말 <퀴즈 쇼>를 출간한 김영하씨는 지난여름 ‘여행자’ 시리즈 2편 <김영하 여행자 도쿄>를 펴냈다.
시인 송찬호씨는 ‘늘 빠르고 폭력적이고 불운한 것들로 가득 찬 듯한 세상 한 쪽에 도사리고 있는 아름다움의 힘과 실체’를 찾아 들려준 공으로 올해 미당문학상을 수상해 눈길을 끌었다.
성석제씨는 지난 6월 산문집 <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를 펴낸 데 이어 최근에는 소설집 <지금 행복해>를 펴내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올해 초 <그녀의 눈물 사용법>을 펴낸 소설가 천운영씨와 최근 <앱솔루트 바디>를 펴낸 소설가 박민규씨도 국내 작가 중 차세대 리더 10위 안에 꼽혔다.
한국 문학의 흐름에서 ‘여성 작가’가 뚜렷하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로 기억된다. 이념과 사상이 소설의 화두로 자리 잡았던 1980년대에는 남성 작가들이 쓴 대하 역사 소설이나 현장 소설들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썰물 빠지듯 그런 문학의 조류가 지나간 1990년대에는 여성 작가들이 강점을 가질 수 있는 가족과 개인에 얽힌 소소한 읽을거리가 봇물 터지듯 터져나왔다. 특히 1980년대 운동권이나 노동 현장을 지나온 여성 작가들은 ‘여성 해방’이라는 화두를 세밀하게 또는 예리하게 다듬어냈다. ‘운동’에서 축적한 논리와 시대의 변화에서 읽은 가능성으로 무장한 여성 작가들은 뭇 여성 독자들의 가슴을 헤집고 들어가 한 판 굿을 벌이듯 당기고 밀고 부수고 풀어 헤치며 부둥켜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가부장 사회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결점이나 과거지사 등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흉이 되지 않았다. 차분하게 ‘커밍아웃’하고 소곤거리듯 새로운 질서를 말하는 그 이야기들은 가부장 사회가 억압해온 온갖 사슬들을 댕강댕강 끊는 예리한 ‘칼의 노래’였다.
그녀들의 문학은 그렇게 여성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는 구원의 메시지였다.
여성 작가들, 1990년대 문단에 활기 띄워
1963년,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다른 환경에서 자라 따로이 20여 년의 집필 활동을 해온 두 작가는, 중견 작가들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기에 힘겨워하는 시절을 보기에 따라서는 쉽고 편안하게 보냈다. 자기 표현과 사회와의 소통을 하는 데서 조직에 얽매이거나 집단적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문학이라는 창작 방식이 여성들에게 유리한 시절이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공지영씨는 1990년대 문단에 페미니즘을 확산시키고, 페미니즘 확산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작가로 인식되고 있다. 작가 인생 20년을 훌쩍 넘으면서 그녀는 그런 인식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듯하다. 비판과 칭송이 엇갈리는 논쟁 속을 그녀는 ‘무소의 뿔처럼’ 정면으로 돌파했고, 다양한 소재와 주제로 쉼 없이 화제를 이끌어냈다.
공지영씨는 1988년, 1년 전에 있었던 구로구청 농성 사건을 소재로 한 단편 <동트는 새벽>을 문예지 <창작과 비평>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발을 내디뎠다. 그 뒤 386 운동권 출신으로서 후일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통했다. 1997년에 장편 <착한 여자>를 내놓으면서 페미니즘 작가로 명성을 굳혔다. 2005년에는 사형수와 여교수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장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큰 인기를 모아 지지부진했던 한국 소설에 활기를 띄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자전적인 소설 <즐거운 나의 집>과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펴내 자신의 자리를 확인한 그녀는 최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소설 <도가니>를 연재하면서 또 다른 ‘도전’에 연말연시를 바치고 있다.
신경숙씨는 한 일간지 조사에서 국내 문인 중 ‘감수성이 가장 뛰어난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공인된 문장가인 셈이다. 그녀는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우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 <풍금이 있던 자리>가 평단과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스타 작가로 도약했다. 작품성과 대중성의 경계를 잘 타왔다는 평,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더 정치적이지도 더 사회적이지도 않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서술해내는 것이 장점’이라는 평을 받았다. <외딴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딸기밭>을 펴냈고, 이후 6년 만인 지난해 <리진>으로 독자들을 다시 끌어모은 뒤 최근 펴낸 <엄마를 부탁해>로 인기몰이를 하며 언론의 관심까지 독차지하고 있다.
이름 앞에 ‘최고, 베스트’가 붙기도 한다. ‘공지영 신드롬’이라는 말도 있었다. 부담되지는 않나?
부담된다. 문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 ‘대중들의 변덕’에 시달린다. 독자의 사랑을 못 받으면 당장 수입이 줄어드는데 프로로서 그 점도 마음에 걸려 한다. 하지만 최고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리는 사람이 나오기를 바란다.
최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새 소설 <도가니>를 연재하고 있다. 악플로 여겨지는 댓글이 눈에 띄던데, 악플에 대항할 내공이 있는가.
그 점을 주위 사람들이 걱정해주셨다. 악플은 누구나 싫은 것이다. 그전에도 당했는데 그 고통을 삶으로 견뎠다.
<도가니>는 ‘청각장애인 학교인 광주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 판결을 수화로 전해들은 청각장애 학생들의 이상한 신음소리가 법정을 울렸다’는 기사의 마지막 줄에 충격을 받고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했다. <도가니>는 어떤 작품인가?
사건이 발각되고 조사가 이루어지는데 사건에 연루된 상류층 인사들이 담합해서 사건을 덮으려 하자 그에 맞서 진실을 밝혀내려고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는 딸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엄마와 딸이 소통하기도 쉽지 않다. 그 책은 어린 독자들에게도 많이 읽힌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넷 연재에서도 어린 독자들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고 쓰는가?
작가에게는 책을 내는 자체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서 놀랐다. 읽어주시는 분들 중에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숨어 있던 분’들도 많다는 것을 느끼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놀랍고도 감사했다.
한때 페미니스트로 불리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수식어가 떨어져나갔다.
10년 전 이야기이다. 자유주의자니 페미니스트니 다 얽매는 것 같다. 나는 어디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숨어 지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거리낌 없이 살고 싶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좌충우돌’이다.
취업 문제 등으로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힘들다고 한다.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어려운 젊은이들을 보면 가슴이 무너질 정도로 아프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으면 한다. 취직이 안 되거나 하는 그런 시대는 언제나 있었다. 요즘 20~30대를 보면 무의미한 인생을 사는 것 같다. 수능 다음에 토익 점수, 사회에 나가서는 연봉을 따지는…. 그것은 감옥 같은 것 아닌가.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미’인 것 같다. ‘의미’를 못 찾으면 인생은 부질없고 처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