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 말문 트는 ‘열락’의 글쓰기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4.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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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학생들이 펴내고 있는 여성주의 계간지 <쥬이쌍스>(프랑스어로 ‘열락’이라는 뜻)의 공동 편집장 엄김수진(23·왼쪽)·우효경(22·오른쪽) 씨와 회원 8명은 지난 2년간 이 잡지에 실린 비평과 수필 53편을 모아 단행본을 펴냈다. <쥬이쌍스, 그녀들의 심장>(세이북스)이다.

‘식민지 사람들은 지배자의 언어와 자기 언어 두 개의 언어를 배워야 하지만, 제국주의자들은 자기 언어만 알면 된다.’ 책에 인용된 프란츠 파농의 경구가 그녀들의 발간 취지를 대변한다. ‘여성주의를 이야기해야 할 때 ‘언어’가 부재하는 상황에서 나는 종종 말문이 막혔다’(60쪽)라는 경험담이 ‘여성으로서의 글쓰기’를 독려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여성의 글쓰기는 형식적으로는 ‘자기 삶 드러내기’로 표현된다. 쉰세 편 글 가운데 서른두 편이 필자의 성장사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관한 것이다. 나머지 스물한 편의 문화비평문조차도 다분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다. 저자들은 일기에나 등장할 법한 가족사와 개인사를 필명을 빌려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공감(‘어머니에 관해서 말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이기도 하고,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나는 몇 번이고 아버지가 죽기를 소원했다’)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 남자 친구와의 성관계(‘생리혈과 피로 범벅된 이불은 그런 감상을 허락하지 않았다’)에 이은 혼란이기도 하다.

‘여대생의 발칙함’을 강조하는 출판사 광고와 달리 글은 극히 차분하고 페미니즘 특유의 전투성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우효경씨는 “글에 정치성이 약하다는 비판을 듣곤 한다. 하지만 이쪽(내면의 글쓰기)에 더 공감하는 친구들이 많다”라고 말한다. 엄김수진씨는 “여성의 경험 자체가 왜곡되었기 때문에 먼저 그 경험을 다시 꺼내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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