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대통령 정책실장 인터뷰
  • 장영희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3.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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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물갈이, 혼란만 부를 것”
이정우 대통령 정책실장(장관급)은 지난해 12월 초까지만 해도 25년간 대학에 몸 담아온 경제학자였다. 그런 그가 2월23일 대통령의 1급 참모로 드라마틱하게 변신했다. 그에게는 신사 혹은 선비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점잖고 부드러운 사람이라는 칭찬이지만, 그 속에는 유약하다는 뜻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8개월 동안 숱한 난관을 뚫고 온 그는 놀랍도록 달라져 있었다. 11월1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만난 이실장은 단호하고 강한 어조로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을 설명했다.

 
참여정부가 내세우는 정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이가 적지 않다. 어떤 정책에 진력했나?


외교 안보 분야를 제외한 모든 정책이 올라온다. 좀더 주력한 정책이라면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3대 특별법(지방분권·균형발전·신행정수도)과 외국인고용허가제도, 자유무역협정 등 통상문제, 부동산대책 등이다. 열심히 일했지만 국민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런 주요 정책들이 막 법안으로 만들어진 단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법이 발효하는) 내년부터 달라진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최대 관심사는 부동산 대책이다. 정부의 목표는 강남 집값 떨어뜨리기인가?

강남뿐 아니라 전국의 집값을 떨어뜨리는 것이 목표다. 장기적으로 서서히 떨어지기를 기대한다. 국민의 5%는 싫어할지 몰라도 95%는 훨씬 살기가 좋아질 것이다. 집값 급등은 중산층과 서민을 괴롭힌 가장 큰 질곡 아니었나. 비싼 부동산값은 임금 인상 압력으로 작용하고 물류와 공장 부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부동산값이 떨어지면 경제에도 활력을 줄 것이다.

중산층이나 서민 가운데에서도 정부가 무차별적인 세금 융단 폭격을 가할지 모른다고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산층과 서민의 세 부담을 최소화하겠다. 2005년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면서 과세 구간과 세율 등을 감안할 것이다. 그러나 과다 보유자에게는 중과해야 보유를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보유세는 누진 구조여서 주택을 많이 가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한국은 거래세(취득세와 등록세)와 보유세 부담이 8 대 2다. 선진국은 거꾸로다. 이렇게 오랫동안 잘못되어 있던 세금 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 부동산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서서히 보유세를 올리겠지만 5년간 후퇴는 없다. 지대세(토지가치세)를 도입할 의향이 있는가?

지대만큼을 세금으로 환수해 버리면 토지를 보유하는 이득이 없어진다. (미국의 경제 사상가인) 헨리 조지는 시장 경제 신봉자요 자본주의 체제 옹호자였지만 토지만은 사유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유는 인정하되 공유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게 없을까 궁리한 끝에 나온 것이 지대세다. 현재 지가의 0.1% 수준인 보유세를 계속 높여 가서 10~20년쯤 선진국 수준인 1%가 되면 지대세를 도입한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대통령의 비전을 추진하는 위원회 가운데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는 가장 눈길을 모았지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인천·광양·부산 항의 물류 체계를 개선하는 로드맵(단계적 이행 방안)을 만들었으며, 재경부와 협력해 인천경제자유구역도 출범시켰다. 외자 유치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의 기계 그룹인) 티센 등 몇 군데를 상대로 한 성공작이 나올 것 같다. 남북간 철도 연결과 금융 허브 로드맵도 곧 나올 것이다. 앞으로 더욱 큰 일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3분기 바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현 경기를 어떻게 진단하는가?

내년에 경기가 살아날 것은 분명하다. 5% 성장률이 예측되지 않나. 지난해 6% 성장했는데 올해 가장 어려웠다. 과거 정부 같으면 단기 부양책을 썼을 텐데 참여정부는 구조적 문제 해결에 주력했다. 국민이 고통받는 줄 잘 알았지만 체질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보약이 된다. 국민은 내년에 그 보상을 받을 것이다.

기업들이 왜 투자를 안한다고 보는가? 투자는 일자리 창출과 직결된다.

수출이 잘 되고 건설 경기가 좋은 반면 가장 안되는 쪽이 투자와 소비다. 오랫동안 과잉 투자가 누적되면서 이것을 서서히 떨쳐내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투자 부진의 근본 요인이다. 정부가 바뀐 데서 오는 불확실성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8개월 동안 참여정부가 추진할 정책을 많이 제시했고, 특히 기업과 관계되는 시장 개혁 3개년 계획이 발표되어 이제는 불확실성이 많이 해소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룹 별로 계획이 서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투자를 하리라고 본다.

일자리를 만들어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다.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는 데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가?

정책실장으로서 첫손 꼽아야 할 일이 우리 경제의 중·장기 전략에 관한 문제다. 고민이 많다. 우리의 가장 큰 힘은 인적 자산이다. 우선 잠재력이 큰 여성 인력을 오랫동안 사장시켜 왔는데 이를 활용하면 당장 잠재 성장률이 몇 %쯤 올라갈 것이다, 차별시정팀에서 조만간 구체적인 활용 방안이 나온다. 주입식과 입시 위주 교육이 창의적 인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잠재력을 갉아먹는 또 다른 요인이다. 창의력 있는 인재를 많이 육성해 그 인재를 보고 외국 자본이 투자하게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지식 기반 경제에서는 번쩍이는 창의력이 국가간 경쟁의 무기다.
교육을 개혁해서 창의적 인재를 많이 배출하는 것만이 한국 경제가 살고 젊은이와 학부모가 고통에서 헤어나오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정말 노사가 신뢰하고 화합할 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성장 잠재력이 나올 것이다. (지난 7월) 네덜란드 모델을 언급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지만, 유럽의 강소국 모델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 같은 대타협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 국정 쇄신 차원에서 청와대와 내각을 전면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늘 상투적으로 언론이나 정치권이 흔들기를 해왔고 그런 주장이 먹혀들었다. 장관 평균 수명이 1년도 안되는 나라가 어디 또 있는지 되묻고 싶다. 일부 장관이나 참모 중에 일을 잘못했거나 특수한 개인 사정이 있으면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국정 쇄신 하자며 싹 갈아치우라고 주장하는데 오히려 국정 혼란만 부른다. 더 나은 사람이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다. 또 인사든 조직 개편이든 재신임 문제가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나야 이루어지지 않겠나.

이런 인식을 대통령도 하고 있나?

그렇다고 생각한다.

참여정부는 줄곧 국정 혼선에다 아마추어 정권이라는 비난을 받아 왔는데….

바깥에서는 굉장히 혼선이 있으며 아마추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던데 잘 굴러가고 있다. 팀워크가 잘맞고 일에 대한 성과가 나타나려고 한다. 일관성 있게 원칙을 지키고 과거 정부에 비해 훨씬 잘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도 국민이 이런 인상을 갖는 것은 언론을 통해 국정을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에 제대로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정우 실장은 지난해 8월 노무현 후보 인기가 거의 바닥일 때 노후보 캠프에 참여했다. 노후보에 대해 그저 개혁적인 정치인이라는 호감을 가졌을 뿐 특별한 인연도 없었다면서 왜 천재 소리를 듣는 이실장이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묻자 그의 답은 이랬다. “원래 그런 기질이 좀 있다. 합류를 권유한 인사에게도 성패와 관계없이 돕겠다고 했다.”

이실장은 바둑(아마추어 5단)·테니스·당구 등 이른바 잡기에 능하다. 그의 취미는 헌책방 가기다. 서울에 올 때마다 신촌의 ‘숨어 있는책’ 등 헌책방 순례를 했다는 이실장은, 학교에 있을 때보다 업무 속도가 10배는 빨라졌고 단 5분도 여유 시간이 없다지만 지금도 주말에는 헌책방에 갈 틈을 내려고 애쓴다. 정책실장 자리는 ‘철인(鐵人)+철인(哲人)’을 요구받는데 둘 중 어느쪽도 아니어서 참 힘들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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