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문화의 ‘그늘’까지 읊다
  • 한형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
  • 승인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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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민 지음 <초월의 상상>/한시로 조명한 조선 지식인들의 ‘꿈꾸기’
유교는 날카롭고 팽팽하다. 나아가야 할 목표가 분명하고 엄격하다는 점에서 날카롭고, 그 당위의 긴장을 흐트러짐 없이 유지하도록 다그치는 점에서 팽팽하다. 날카로운 것은 부러지기 쉽고, 팽팽한 것은 끊어지기 쉽다. 수많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그렇게 부러진 좌절과 끊어진 절망을 안고 살아갔다. 그동안 우리는 이 외상에 대해 깊이 유의하지 않았다.



상처에는 신음이 있고, 치유하려는 열망이 있다. 정 민의 <초월의 상상>(휴머니스트 펴냄)은 그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중세 지식인들의 꿈꾸기를 주로 한시를 통해 조명한 글이다. 그래서 ‘초월의 상상’이라 했다.
외상은 두 군데서 온다. 하나는 사회적 관계에서 오고, 하나는 자연적 운명에서 온다. 유교는 이 모두에 대해 오직 의무와 책임으로 대처하라는 ‘영웅적’ 희생을 권유할 뿐, 위로를 건네거나 상처를 감싸주는 ‘인간적’ 배려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불교에 기댈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을 끊고 출가할 수 없었기에 지식인들은 현세에 있으면서 현세를 초월하는 상상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도교의 길이다. 정 민은 이를 몇 가지 계열로 정리하고 있다. ①노장처럼 인간사에 무심하고, 운명을 수용하는 길. ‘세속을 떠나 영리를 사모하지 않고, 청심과욕(淸心寡慾)을 새겨 반박귀진(反樸歸眞)함으로써 정신의 자유와 초월을 추구한다.’ 은거와 은일도 이 연장선에서 읽을 수 있다. ②불로장생의 양생을 수련하여 신선이 되는 일. <도장(道藏)>의 연단법을 원용하여 내단(內丹)을 기르고 행공(行功)하여 도태(道胎)를 형성하여 연년익수(延年益壽)한다. ③현실을 떠나 상상의 세계를 꿈꾸기. 그것은 유토피아를 그리거나, 인간세의 갈등과 좌절이 없는 선계(仙界)의 행복을 노래한다.


이 책은 여기서 ③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한시 속의 유토피아 의식을 적어 주고, 역대 유선시(遊仙詩)와 사부(辭賦)의 자료를 검토하며, 그것의 서사틀과 낭만적 상상력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해설하고 분석한다. 그는 유선시의 대부분이 16∼17세기 임란 이후 선조 광해 연간에 집중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 이유를, 사변적이고 이론적인 송시(宋詩)에서 진솔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당시(唐詩)로의 전환, <산해경(山海經)> <열선전(列仙傳)>을 위시한 신선 설화와 도교 사상의 유행, 그리고 동서 분당과 기축 옥사, 세자 책봉으로 이어지는 서인들의 정치적 몰락에서 찾고 있다.

‘전란으로 모든 가치들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인간의 실존마저 위협받는 상황과 마주해 형성된 심리적 압박감이 자연스레 이들에게 시공을 초월하는 유선의 모식을 취하게끔 작용했다.’ 그러다가 서인들이 인조 반정으로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현실과의 긴장이 무뎌지고, 비판이 체제 내적으로 흡수되면서, 또 도학(道學)의 권위가 공고화하면서 유선시 또한 쇠퇴했다고 적고 있다.




퇴계가 늘 유선의 꿈을 꾸었음을 아는가


역시 초월의 상상은 좌절된 현실의 반영이다. 행복할 때 인간은 꿈꾸지 않는다. 유선시의 종장이라는 허난설헌의 그 화려한 선계 묘사에서 나는 거꾸로, 이 좁고 야박한 땅에서 못난 서방을 만나 뜻과 재주를 펴지 못하고 스물일곱 나이에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서리와 달 찬 속에서 붉게 떨어져’ 버린 그녀의 한과 슬픔을 읽었다. 허 균이 <동국명산동천 주해기>를 위작한 이유 또한 이 근처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신선들의 세계를 체계화하거나, 혹은 역모를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꿈꾸는 세계와 놓인 현실 사이의 괴리를 상상 속에서나마 해소해 보고 싶어 그런 희작(戱作)을 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조선 유교 문화의 ‘그늘’을 읽을 수 있었다. 참여의 집단적 당위와 함께, 은둔의 개인적 공간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다. 현실과 상상, 삶과 꿈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아는지 모르겠다. 조선 유교의 중심인 퇴계가 늘 유선의 꿈을 꾸었고, 율곡도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공중의 누대(樓臺)를 생각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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