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난을 치며 생전 처음 행복했다"
  • 이문재 편집위원 (moon@e-sisa.co.kr)
  • 승인 2001.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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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란 전시회 연 김지하 시인/난초 그림에서 '무질서 속 질서' 깨달아

일찍이 추사는 난(蘭)과 선(禪)이 둘이 아니라고 했다. 추사의 불이선란(不二禪蘭)은 시인 김지하에게 불이란시(不二蘭詩)였다. 난은 그에게 ‘타는 목마름’이었고 ‘중심의 괴로움’이었으며 ‘카오스모스’였다. <오적>과 <타는 목마름으로>로 1970년대와 온몸으로 맞선 그는, 1980년대 초반, 천·지·인을 붓 끝에 집중하며 새로운 도약을 예비했다. 감옥 창가의 민들레 한송이에서 피어난 그의 생명사상은 난을 거쳐 율려(우주의 중심음)에 이르렀다.


그에게 난은 난데없는 ‘호사 취미’가 아니었다(일각에서는 민중 시인과 양반 문화의 만남을 비판하기도 했다). 난은 좋은 의미의 처세였다. 감옥에서 나와 원주에 ‘칩거’할 때 무위당 장일순 선생(작고)으로부터 난을 배웠다. 무위당은 7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시인에게 <주역>에 나오는 ‘천산둔(天山遯)’이라는 휘호를 보냈다. ‘소인들이 발호할 때이니, 세상과 불가근불가원하라’는 뜻이었다. 그 처방전이 난이었다.



서울 인사동 학고재에서 열린 <미의 여정, 김지하의 묵란>(12월11~26일)은 김지하 시인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유홍준·김영동·김민기·채희완 씨 등 후배들이 ‘기획’한 것이다. 김지하 시인의 난은 1980년대 후반 ‘독립군 군자금’으로 불렸다. 유홍준 교수에 따르면, 재야단체가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시회를 열 때 김지하의 난초 그림은 최고 인기 품목이었다. 당시 김지하 시인의 난초 그림에는 ‘무언가 범상치 않은 신기가 감도는 데다 아름다운 리듬’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시가 참 좋다. 하소연할 데가 거기밖에 없다”


하지만 김지하 시인은 10년 전 붓을 놓고 말았다. 시인은 “난초는 서권기 문자향이 있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것이지 나에게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게다가 몸까지 아팠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후배들이 바람을 넣지 않았다면, 회갑 기념전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후배들의 청에 의해 다시 붓을 들면서, 표연란(飄然蘭)의 의미를 반추해 보았다. 바람과 난초를 동시에 붙잡는 것. 표연란 속에서 난의 현대성과 미래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표연란을 규정하는 미학은 ‘기우뚱한 균형’이다. 김시인은 조선의 미학을 ‘불균형의 균형’이라고 말해왔거니와 바람(속도)과 난초(위상)를 동시에 포착하면서 ‘변화하면서도 변화하지 않는 것’을 궁구하고자 한다. “카오스모스, 즉 항구적인 카오스 속에 있는 독특한 코스모스(질서)를 찾아야 할 때다.”


회갑을 맞은 감회를 물었더니, 그는 회고록으로 우회했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연재하고 있는 회고록 제목이 ‘모로 누운 돌부처’다. 부처는 부처이되 돌부처인 데다 모로 누워 있는 부처. 한마디로 자신은 ‘실패한 예언자’였다는 것이다. 환갑은 한 매듭이기도 하지만,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는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한다”라고 말했다. 더 이상 공동체 운동이나 거대 담론의 전위에 나서는 ‘웅변하는 지도자’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전시장에는 <외로움 때문에 꽃핀다>와 <꽃은 시작에 불과하다>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지난 60년이 외로움 때문에 핀 꽃이라면, 그 꽃은 시작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다시 시로, 예술로, 조언자로 돌아가려 한다. 지난 1년 간 수천 점의 난을 치며 생애 처음 행복을 체험했다는 ‘문인 화가’ 김지하씨는 말했다. "시가 참 좋다. 하소연할 데가 거기(시)밖에 없다."
고전적 매혹의 스펙터클 판타지-김소희



영화를 산에 비유하자면, 동네 뒷산처럼 고만고만하거나 아기자기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씩 금강산 같은 명품이나 킬리만자로처럼 낯설고 고혹적인 것도 있다. 에베레스트나 로키 산맥쯤 되면 누군가가 다시 흉내 내기 어려운 어떤 비범함을 갖고 있다는 뜻이 된다. 바로 <반지의 제왕> 시리즈처럼.



1년 만에 이 시리즈의 2편인 <반지의 제왕-두 개의 탑>이 전세계에서 개봉된다. 물론 이 영화의 특별한 명성은 J.R.R. 톨킨의 전설적인 원작으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을 포함한 호빗·드워프·엘프 등 가상의 여러 종족이 어울려 사는 세계를 창조한 뒤 자유와 선의지라는 알레고리를 거대한 모험담으로 풀어가는 이 소설은 언어와 문학, 지리와 역사, 신화 등 유럽의 온갖 문화적 전승을 끌어모아 촘촘하게 창조했기 때문에 완벽한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현실감을 주는 판타지 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그러나 바로 그 문화적 완벽성 때문에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번역본을 읽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되기 힘든 요소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눈으로 볼 수 있는 영화가 등장함으로써 문제가 좀 달라졌다. 게다가 피터 잭슨 감독이 창조해낸 영상은 그 자체로 기념비적인 데가 있다. 특히 자유 왕국인 로한을 지키기 위해 헬름 협곡의 성채에서 벌이는 중세적인 전투 장면은 토를 달 여지가 없는 장관이다. 비단 이 장면뿐만 아니라 <반지의 제왕 - 두 개의 탑>은 무려 세 시간에 달하는 상영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스펙터클로 끌어가는 특이한 영화다.



통상 스펙터클 영화라고 하면 거대한 예산의 제작 기획, 서사시적 주제, 웅장한 볼거리 같은 요소를 가진 영화를 지칭한다. 이 영화의 스펙터클은 최근 추세 그대로 컴퓨터 그래픽을 중심에 둔 특수 효과에 기대고 있다. 그러면서도 <십계>나 <벤허> 같은 고전적 서사극과 북유럽 판타지 영화의 독특한 전통을 고스란히 재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근년의 블록버스터에서 보이는 현란하지만 얇은 스펙터클과 차별화된다. 이것을 ‘바그너적인 스펙터클’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다만 소설을 읽었거나 1편을 본 사람들만이 영화를 제대로 따라잡을 수 있을 듯.



그런데 가볍고 개별화한 개인들의 시대에 영웅적 행위와 도덕적 가치에 근거하는 거창한 주제를 바탕으로 모든 것이 과잉인 이런 스펙터클이 환호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대중은 이 영화를 통해 고전적인 매혹의 기억, 그리고 하나의 정치적인 방향을 향한 강력한 충동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물과 드라마 깊어지고 넓어졌다-김봉석



<반지의 제왕-두 개의 탑>에 대한 평가는 1년 전 선보인 전편 ‘반지원정대’와 비슷하다. 원작인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 문학의 효시이자, 서양 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아 왔다. 영화로 만들어진 ‘반지원정대’는 원작의 상상력과 향취를 훌륭하게 영상으로 재현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인간·요정·난쟁이 들이 어울려 사는 중간계의 아름답고도 기묘한 풍경을 거의 완벽하게 그려낸 ‘반지원정대’는 공포 영화 전문으로 흔히 알려졌던 피터 잭슨에 대한 평가까지 다시 내리게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반지의 제왕>은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고, 1년에 한 편씩 개봉된다. 1년에 한 편씩 찍는 것은 아니고 한꺼번에 3부작 분량을 모두 찍어놓고 순차적으로 편집해서 한 편씩 개봉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출의 방향이나 배우들의 연기, 작품의 전체 분위기는 3부작에서 한결같다. ‘두 개의 탑’을 보기 시작하면 바로 어제 1편을 보고 이어서 2편을 보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1년 만에 돌아온 두 번째 작품 <반지의 제왕-두 개의 탑>은 1편에서 두 갈래로 나뉜 반지원정대의 계속된 모험을 그리고 있다. ‘반지원정대’가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는 등장 인물과 풍경을 소개한 것이었다면, ‘두 개의 탑’은 인물과 드라마의 심화에 초점을 맞춘다. 아라곤은 무한한 생명을 가진 요정 아르웬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고, 1편에서 죽어간 반지원정대의 일원 보로미르의 동생 파라미르는 프로도를 잡아 반지를 소유할 수 있는 기회 앞에서 망설인다.



<반지의 제왕>은 절대악의 존재인 사우론과의 싸움을 그리고 있지만,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니다. 한때 반지를 소유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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