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진실 찾아 뗏목 2만리 <콘티키>
  • 강운구 (사진가) ()
  • 승인 1995.11.3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르 헤이에르달 지음 <콘티키>/학설 입증 위한 항해 기록
‘가끔 우리는 묘한 상황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야말로 그 책과 나는 꼭 그렇게 되었다. 이미 열 몇해 전에 흥미깊게 읽었던 책인데 이제 같은 번역가가 ‘손질하고 다듬어서’ 다시 출판한 것을 의무감을 가지고 읽어야 될 처지가 된 것이다. 오래 전에 읽었건만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한 책을 또 읽어도 재미있고 부럽기는 그제나 이제나 마찬가지다.

나의 후배 중의 한 명은 책을 별로 읽는 기색도 없는데 스스로 흥미가 있거나 필요로 하는 온갖 지식을 머리 속에 차곡차곡 쟁여놓고 있다가, 이때다 싶을 때 그것들을 분수처럼 솟구치게 한다. 아마도 그 후배는 스스로가 필요로 하는 지식이나 흥미거리가 담긴 책을 찾아내는 본능이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등산(암벽 등반·빙벽 등반), 스킨 스쿠버 다이빙, 오토바이 타고 달리기, 산악자전거 타기, 경비행기 타기…, 그리고 또 무전기로 떠드는 햄 같은 것이 대충 꼽은 그이의 취미이다. 온갖 주접을 떠는 꼴로 보아 돈과 시간이 꽤 많은 사람일 거라고 짐작이 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이에게 많은 것은 오로지 호기심뿐이다.

그 후배가 열 몇해 전에 <콘티키>라는 별난 제목의 책을 끼고 다니며 “흠!” “아이구!” “그것 참!” “아!”하고 감탄사를 아주 작은 소리로 신음처럼 토해냈다. 그것은 진짜로 감탄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나에게 “이 책을 꼭 읽으시오”라는 압력을 가하는 효과음으로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 하루 밤을 꼬박 <콘티키>에 빼앗겼다.

이미 그때 꼼꼼하게 했던 번역을 황의방씨가 다시 다듬어서 한길사에서 최근에 출판했다. 그 책은 <콘티키>라는 제목말고도 알파벳으로 된 ‘한길 에듀테인먼트 넥스트 14’라는 수상쩍은 딱지를 달고 있었다. 뒷날개를 보고 그것이 시리즈의 이름인 모양이며, 숫자는 그것의 몇 번째를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책의 표지는 빨·노·파 삼원색과 황금빛으로 되어 있어 야하다. 그러나 그 책의 내용은 그렇게 야한 것이 아니다. 먼곳을 그리워해 본 적이 있거나, 자유나 신념에 대해서 갈증을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반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책이다.

지은이 소르 헤이에르달은 노르웨이의 저명한 인류학자이다.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동남아시아에서 건너간 사람들일 것이라는 학설이 강할 때, 그이는 폴리네시아 사람과 문명은 남아메리카에서 건너간 것이라는 학설을 완성하고 <폴리네시아와 아메리카­선사시대의 상호 관계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썼다. 그러나 아무도 읽어 보려고 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두 곳의 서로 다른 인류학적 지역을 뒤섞어서 생각하지 말라”는 어처구니없는 충고까지 받았다. 그래서 그이는 저 1천5백년 전 태양신이며 한 인디언 부족의 우두머리였던 콘티키가 그랬듯이 뗏목을 만들어 타고 페루 해안으로부터 폴리네시아 군도까지 훔볼트 해류를 따라 흘러감으로써 자기의 학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스스로 ‘콘티키’가 된 노르웨이의 영웅

그 행위는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발사라는 나무 아홉 개를 밧줄로 엮어 만든 뗏목을 타고 여섯 명이서 망망한 바다 4천3백 해리(약 8천㎞)를 1백1일 동안이나 항해한 끝에 마침내 한 섬에 도착하기까지의 기록이 <콘티키>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꾸며낸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다. 인류학을 위한 그 모험은 47년에 있었으며 그 기록인 <콘티키>는 이듬해에 나왔다. 그뒤에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어 많은 사람을 감격하게 했다.

열 몇해 전, 오래지 않은 그 옛날에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가슴이 설레었고, 마음먹은 대로 떠나는 신념과 자유를 부러워했었다. 만약에 여권이 나온다면…. 폴리네시아에 가 볼 수 있다면…. 그땐 ‘해직 기자’(강운구씨는 74년 ‘<동아일보> 사태’때 해직되었다­편집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여권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먼곳이 무턱대고 그리웠었다. 그뒤 세월이 달라져 5년짜리(!) 여권을 두 번째나 받았음에도 남태평양은 멀고 먼 채로 있을 뿐이다.

94년 노르웨이의 릴레함메르에서 열렸던 겨울 올림픽의 개막식 중계 방송을 보다가 언뜻 비치는 헤이에르달을 보았다. 그이는 그 뒤의 몇몇 탐험에서도 살아 남았을 뿐만 아니라 아주 기품 있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이는 노르웨이의 영원한 영웅이다. 콘티키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