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범패, 깊고 그윽한 ‘노래 공양’
  • 吳允鉉 기자 ()
  • 승인 1995.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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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원사에서 장벽응 스님 시연… 무형문화재 50호로 지정돼 전수
“범패(梵唄)의 특징을 들라면 깊은 감정, 장엄한 선율, 거룩한 주제를 들 수 있지.” 무형문화재 50호 범패 보유자인 장벽응 스님(87)은 범패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난 10월20일 서울 신촌에 있는 봉원사에서는 고려 시대 이후 맥이 끊긴 팔관대재와 극락 왕생으로 가기 위해 미리 지내는 제사인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가 열렸다. 열세 살 때부터 스승 이범호 스님으로부터 범패를 배웠다는 장벽응 스님은, 이 재가 진행되는 4시간 내내 팔십 노구를 곧추세운 채 부처님에게 ‘노래 공양’(범패)을 드렸다.

장벽응 스님의 범패 소리는 시종일관 일정한 장단이 없이 억세고 꿋꿋한 소리로 길게 끄는 형식이었다.

범패는 절에서 재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이다. 따로 범음(梵音), 인도(引導, 印度) 소리, 어산(魚山)이라고도 불리는데 가곡·판소리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성악곡으로 꼽힌다. 이 노래는 재를 올릴 때 쓰는 의식 음악이라는 점, 발생 연대가 8∼9세기라는 점 때문에 서양 음악의 그레고리안 성가와 비교되는데, 우리의 정악인 아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가곡·판소리와 함께 3대 성악곡

범패는 안채비 소리와 바깥채비(다른 절의 초청을 받아 가서 범패를 부르는 스님)들이 부르는 홋소리·짓소리, 축원을 하는 화청(和淸)으로 나뉜다. 안채비 소리는 요령을 흔들며 한문으로 된 산문을 촘촘히 낭송하는 것으로 흔히 염불이라 부른다.

홋소리는 7언4구·5언4구의 한문으로 된 정형시를 일정한 가락에 맞춰 부르는 노래이다. 짓소리는 한문으로 된 산문이나 범어로 된 사설을 여럿이 함께 부르는 노래이지만 독창으로 부르는 허덜품이라는 것이 있어 전주(前奏)·간주(間奏) 구실을 한다. 보통 한 곡당 30~40분 걸리는 긴 노래이다.

화청은 대중이 잘 알아듣도록 민속 음악에 우리말 사설을 붙여 재가 끝날 무렵 부르는 노래이다. 범패는 통상 작법(作法)·착복(着服)이라 부르는 나비춤·바라춤·법고춤과 같은 불교 춤과 어우러지는데, 죽은 사람을 위해 지내는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 재수 있으라고 지내는 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 생전예수재, 수중고혼을 위한 수륙재(水陸齋), 국가의 안녕과 죽은 자를 위해 지내는 영산재(靈山齋) 등에서 부른다.

태고종의 정대은 스님(동방불교대학 부학장)은 범패 소리를 ‘소박하게 흙냄새가 풍겨나고, 심산유곡에서 들려오는 범종 소리처럼 깊고 의젓하고 그윽해 소리의 맛이 구수한 살아 있는 노래’라고 극찬했다.

830년께 신라의 진감선사가 당나라에서 들여와 시작한 것으로 전해오는 범패는, 구한말까지 잘 이어져 내려오다 1911년 사찰령이 내려지자 일시 쇠락했다. 하지만 경만 읽고 범패를 부르지 않으면 재가 들어오지 않아 다시 절에서 절로 은밀히전파되기 시작했다.

그후 범패는 태고종의 서만월→이월하→나벽해의 계보를 박송암 스님이 잇고, 서만월→이범호→김보성 계보를 장벽응 스님이 이어 오늘에까지 전해온다. 하지만 한국 최대의 불교종단인 조계종에는 범패가 체계적으로 전수되어 있지 않다.

70년 11월에 범패가 중요무형문화재 50호로 지정되면서 박송암·장벽응·김운공 스님이 보유자(인간문화재)로 지정됐고, 현재는 이들의 뒤를 이어 김구해·마명찬·임명원·김형태·이원명 스님이 맥을 잇고 있다. 봉원사에서는 영산재보존회 교육기관인 범음대학을 운영해 일반 학인에게도 범패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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