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작품으로 돌아보는 ‘한국 영화 에로티시즘’
  • 김형석 (월간 <스크린> 기자) ()
  • 승인 2004.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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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속의 에로티시즘/1960년대 이후 대표적 에로무비 열세 편 상영
1980년대 한국 에로티시즘 영화를 회상할 때면 연상되는 표정 하나가 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 남녀 주인공은 유곽에 처박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쾌락 속에서 현실과 서서히 멀어진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이 딱 한 번 현실과 대면하는 순간이 있다. 일본이 한창 군국주의로 치닫던 시기, 유곽 밖으로 잠깐 나온 남자는 만주 전선으로 떠나는 황군의 행렬을 본다. 그때 그의 무표정은 묘한 느낌을 준다. 도피처에서 적을 만났을 때의 황망함 같은 것이 그의 얼굴을 스쳐가고, 그는 다시 침실로 들어가 육체의 향연에 빠진다.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1980년대의 에로 영화들은 군사 독재의 산물이었다. 3S 정책의 두 요소인 섹스와 스크린의 결합. 당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나는 정책의 의도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던 청소년이었지만, 어느 대학교 앞 동시상영관 문을 나섰을 때 만났던 매캐한 최루탄 냄새와 꽃잎처럼 흩어져 있는 보도블록 조각들은 잠시나마 나의 표정을 굳게 했다. 그건 모순이었다.

스크린 속에서는 세상과 담 쌓은 열락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지만, 영화관 밖은 치열한 현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그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던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가 한 마리 바퀴벌레처럼 좌석에 처박혔다. 한참 발정기를 지나고 있던 터라 이미 ‘에로 여신’들의 몸사위에 휘감겨 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임성민이나 이대근 혹은 마흥식 같은 남자 배우들도 있지만, 1980년대 에로 영화의 이야기는 여배우에서 시작해서 여배우로 끝난다. 그들은 숱한 에로 영화에 정말 끊임없이 등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박통 시대 영화의 주인공들과는 달랐다. 정윤희-유지인-장미희 트로이카로 요약되던 1970년대 여배우들에게는 청순미가 강조되곤 했다. 새마을운동 시대의 여배우 상과 달리 1980년대의 에로 영화 여배우들은 도발적이었다.

노출 수위 높지 않은데도 도발적 매력

그것은 노출 수위와는 무관한 카리스마였다. 그들은 지그시 두 눈을 감고 한쪽 팔로 머리를 넘기는 슬로 모션 속의 여인들이었다. 특히 심야 영화 붐을 조성한 <애마 부인>은 사이즈 논쟁에 불을 당기며 36인치 가슴 신화를 구현했다. 큰 눈과 작은 얼굴, 뽀얀 피부와 가느다란 목선, 여기서 쇄골로 이어지는 라인의 처연함이 마무리되는 풍만한 가슴은 수많은 남성 관객의 목젖을 타오르게 했다.

안소영을 필두로 2대 애마 오수비와 <빨간 앵두> 시리즈의 이수진, 원미경과 이보희, 선우일란과 김문희와 오혜림 등 관상학적 유사성을 띠는 그들의 육탄 공격은 정말이지 거부할 수 없었다. 팜므 파탈 오수미와 안티 글래머 여전사 나영희, 코믹 에로의 선구자 강리나와 <애란>의 재일동포 배우 김구미자 등은 에로 영화의 스펙트럼을 서너 뼘은 넓혀 놓았다. 하지만 그들은 요즘 누드집 주인공들처럼 훌러덩 벗어서 어필하는 배우가 아니었다.
사실 1980년대 에로 영화의 노출 수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올림픽 전후 잠깐 검열이 느슨해졌을 때 나왔던 <매춘>이나 <빨간 앵두 4>에 살짝 음모가 나온다는 정보가 입수되어 수많은 고등학생들이 거의 단체 관람 수준으로 극장을 찾기도 했지만 허사가 되기 일쑤였다. 대부분의 에로 영화들은 칙칙한 멜로 드라마의 스토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여주인공들은 항상 운명의 사슬 속에서 불타오르는 육체를 부여잡으며 신음하는 수준이었다.

사극의 경우 그 건전함은 더했다. 방사 장면에선 남정네의 널찍한 등짝이 화면의 팔 할 이상을 차지했고, 힘차게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섹스를 비유하며, 목욕을 해도 꼭 폭포수 밑에서 옷 입고 하는 것이 에로 사극의 전형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그 영화들을 사랑했다. 비디오테이프레코더의 급격한 보급으로 웬만한 도시 가정에서는 암시장의 ‘삐짜 뽀르노’들을 쉽게 수급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지만, 우리는 ‘극장판 에로 무비’를 외면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영화들에는 진정성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프랑수아 트뤼포라는 프랑스 감독이 동료들과 수많은 할리우드 고전 영화를 분석한 후에 내린 결론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분석의 막바지에 이르게 되었을 때, 우리는 미국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영화들은 모두 서로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영화들이 돌아왔다

그때 그 영화들에 대한 우리들의 애정도 별 차이 없었다. ‘닮아 있는 영화들’이 만들어낸 울림은 만만치 않았다. 이후 에로 비디오의 범람과 기획 영화 중심으로 재편되는 충무로 상황에서 1980년대의 에로티시즘 영화들은 공룡처럼 소멸했다. 하지만 그 영화들은 한국 영화가 그나마 순진했던 때의 마지막 낭만이다.

그 떨림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고? 5월18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좋은(!) 영화 보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960년대부터 면면히 내려오던 한국 에로 영화 열세 편을 엮어서 상영한다(‘한국 영화 속의 에로티시즘’ www.koreafilm.or.kr). 입장료는 그 시절 그 가격 2천원이며, 경로우대증을 가져가면 천원 할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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