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독도 해상 세미나 참관기
  • 독도·李文宰 기자 ()
  • 승인 1997.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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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바다의 날’ 맞아 독도 해상 세미나 열려…연구 강화·국제 홍보 촉구
제2회 ‘바다의 날’ 맞아 독도 해상 세미나 열려…연구 강화·국제 홍보 촉구

동경 131도 52분~53분, 북위 37도14분~14분45초. 독도의 위치를 이렇게 표기할 때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국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라는 행정 구역으로 표기하면 달라진다. 52년 이래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竹島)라고 주장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1월부터 배타적 경제 수역(EEZ)이 발효되면서 독도는 한·일 관계에서 ‘뜨거운 감자’의 하나로 떠올라 있다.

제2회 바다의 날(5월31일)을 앞두고 독도연구보전협회(회장 신용하 서울대 교수)가 주관한 ‘독도 해상 선상 세미나’는 독도가 왜 명명백백한 한국 영토인가를 밝히면서, 그런데도 일본이 끊임없이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논리와 배경, 그리고 앞으로의 대책 등을 끌어낸 자리였다. 역사적 진실을 통해 독도의 영유권을 새삼 확인한 이 자리는 결국 독도의 미래, 즉 바다 영토를 확보해 국익을 증대시키자고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세미나가 열리기 이틀 전, 서울에서는 제2차 한·일 배타적 경제 수역 경계 획정 회담이 열린 참이라 독도 해상의 세미나 열기는 한층 뜨거웠다.

“학자적 양심으로 보아도 독도는 한국 땅”

5월28~29일 한국해양대 실습선 한바다호(선장 정태권)에서 펼쳐진 이 세미나는 신용하 교수의 ‘독도 영유의 역사와 독도 보전 정책’, 나홍주씨(한국컨테이너 부두공단 자문·한국해양대 사회과학연구소 객원연구원)의 ‘독도 영유권과 유엔 해양법 협약’, 그리고 김흥규 교수(고려대·국문학)의 ‘우리 옛시조에 나타난 바다’ 등 세 분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한바다호에는 독도연구보전협회 회원을 비롯해 해양수산부·해양수산개발원·21세기바다연구소·해양연구소·도서학회·동해연구회·해양소년단 관계자와 바다를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해온 문인 등 백여 명이 승선했다.

신용하 교수는 인사말에서 독도를 둘러싼 최근 정세가 심상치 않다고 강조했다. 신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하시모토 정부 출범 이후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가속화하고 있는데, 올해 자민당이 발표한 외교 10대 지침 안에 독도 영유권 회복이 명시되어 있다. 96년 2월, 이케다 일본 총리는 다케시마(독도)가 국제법상 일본 고유의 영토이므로 한국은 독도에 파견한 경찰을 철수하라고 공식 발표했다. 96학년도 이후 일본의 각급 학교 교과서(지리부도)에는 일본 국경이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그려져 있다. 해군사관학교 최영호 교수(인문학·문학 평론가)는, 최근 일본이 독도 문제에 적극 대응하는 배경에는, 미국이 동북아를 주도하는 시대가 끝날 경우 일본이 동북아를 지배하겠다는 마스터 플랜이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용하 교수는 주제 발표에 앞서 “나는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강경론자도 아니다. 나는 학자적 양심을 걸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신교수는 논문에서, 서기 512년 신라에 복속되면서 한국 고유 영토가 된 독도의 역사를 한·일 양국의 각종 문헌 자료를 통해 증명하면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허구라고 밝혔다.

신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1905년 1월 일본 내각회의에서 독도가 ‘무주지(無主地)’이기 때문에 일본 영토로 편입한다는 결정이 내려지기 이전까지 일본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해 왔다. 특히 명치 정부는 <조선국교국제시말내탐서> 같은 일본 외교 문서를 필두로 <은주시청합기> <태정관결정서> 등 16종의 문서와 각종 지도에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밝혀 놓았다. “독도는 1905년 1월 이전에 명백한 한국 영토였으며, 무주지도 아니었기 때문에 1905년 일본 정부의 결정은 전적으로 불법이다”라고 신교수는 밝혔다.

현재 독도는 유엔 해양법이 규정하는 섬(island)이 아닌 암초(rocks)로 분류되고 있다. 즉 ‘인간이 거주하거나 독자적 경제 생활을 지탱할 수 있어야’ 섬이라는 것이다. 섬이 아닌 암초는 배타적 경제 수역이나 대륙붕을 가질 수 없게 되어 있다. 신교수는 독도가 암초가 아니라 분명한 섬이라고 말했다. 나홍주씨도 주제 발표에서 같은 견해를 보였다. 암초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거주하고 독자적인 경제 생활을 지탱할 수 있다면 섬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도가 한국 영토일 뿐만 아니라 섬이어야 하는 까닭은 배타적 경제 수역 때문이다. 신교수는 “만일 일본측이 주장하는 대로 배타적 경제 수역 경계를 울릉도와 일본의 은기도(독도에서 남동쪽으로 1백60㎞ 떨어져 있다) 사이로 획정할 경우 한반도의 4분의 3 면적에 해당하는 바다 영토가 일본으로 넘어간다”라고 말했다. 일본은 독도 근해를 제3 수역으로 공동 관리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신교수는 일본의 이같은 주장이 영토와 배타적 경제 수역을 분리한다는 구실로, 한국의 독도 영유권에 흠집을 내고 독도를 분쟁거리로 만들어 국제 사회로부터 일본 영토로 인정받으려는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주민 상주 허용해 유인도로 만들어야

일본의 전략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정책을 신교수는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우선 △독도가 한국 고유 영토이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근거 없는 허구라는 연구를 대폭 강화하고 그 결과를 전세계에 홍보해야 하며 △한국은 배타적 경제 수역의 기점을 반드시 독도로 잡아야 하며 △독도에 주민 3~5가구가 상주하는 것을 허용해 유인도화해야 최악의 경우 ‘실효적 영유’를 증명할 수 있고 △부두 시설을 충분히 확충해 어업 전진 기지로 만들고 △울릉도와 독도를 연계해 하나의 관광 지역으로 적극 개발해야 한다. 나홍주씨의 주제 발표도 같은 결론이었다.

위의 두 논문이 독도 및 바다를 영토와 자원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다면, 김흥규 교수는 바다를 문학의 관점에서 돌아보았다. 김교수는 컴퓨터 데이터 베이스에 저장되어 있는 옛시조 5천2백 수 가운데 바다와 관련된 작품 1백50여 수를 추출한 다음, 이 시조들을 주제 별로 나누어 분석했다. 김교수는, 시조가 지배 계급의 전유물이었고, 19세기까지 농경 문화 중심의 사고와 감성에 지배당하고 있어서 삶의 현장으로서의 바다는 시조에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각 주제 발표에 대한 토론과 질문도 치열했다. 토론자로 나선 오임상 교수(서울대·해양학)는, 30년대부터 조사를 해온 일본에 견주어 한국의 해양학 및 자연과학 분야에서 독도 연구가 매우 미미하다면서 “독도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병행하며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소설가 현길언씨(한양대 교수)와 문학 평론가 구모룡씨(해양대 교수)는 바다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정치·경제 논리에 치우쳐 있다고 말했다. 바다를 자연이 아니라 자원으로만 보는 개발론에 집착했다가는 21세기 생명의 시대에 또다시 시행 착오를 거듭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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