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 제1회 안동 국제 탈춤 페스티벌
  • 안동·李文宰 기자 ()
  • 승인 1997.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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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안동 국제 탈춤 페스티벌/‘선유줄불놀이’ 세계적 관광 상품화 가능
부용대 위에서 작은 불꽃들이 어른거렸다. 낙동강을 가로질러 만송정 강가로 단숨에 달려 내려와 고정되어 있는 다섯 줄에는 뽕나무 숯으로 만든 줄불들이 매달리고 있었다. 하회 마을을 휘감아 내려오는 강물 위에 달걀불이 한두 개씩 떠내려오기 시작했다. 낙동강 백사장에서 한바탕 신명을 피워 올리던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연희자와 관람객이 뒤엉켜 난장을 이루었다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강가의 어둠이 한층 짙어져 있었다.

바지직, 뽕나무 숯을 가루로 빻아 전통 한지 안에 담고 매듭을 지은 막대의 한 끝에 불이 붙여졌다. 줄불은 50cm 길이에 어른 엄지손가락 굵기여서 기다란 시가처럼 보인다. 다섯 개의 줄에서 저마다 줄불들이 매달려 천천히 올라갔다. 하회 선유(船遊)줄불놀이가 시작된 것이었다.

선유줄불놀이, 상상력 탁월하고 규모 방대

6년 전 풍천종합고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복원한 줄불놀이의 유래는 4백50년 전까지 거슬러올라간다. 해마다 이맘 때면 하회의 선비들이 인근의 선비를 불러, 강 가운데에다 배를 띄워놓고 하루 저녁을 놀았다. 양반들의 한순간을 위해 쏟아부어졌을 백성들의 피와 땀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줄불놀이 그 자체만으로 보자면 그것은 오늘날의 불꽃놀이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규모와 그 상상력은 선유줄불놀이가 오히려 더 빼어나다.

선유줄불놀이는 약 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다. 한 시간 동안 일정한 속도로 타들어 가며(실제로는 흩뿌려지는) 올라가는 줄불과 물결을 따라 흘러내려가는 달걀불이 교차한다. 이 두 불은 매우 느리다. 느리게 올라가면서 바람결에 흩어지는 줄불의 불꽃은 불의 비(雨) 혹은 불의 싸락눈처럼 보였다. 달걀불이 염원의 불이라면 줄불은 한을 연소하는 불이었다.

줄불놀이의 절정은 ‘낙화(落火)’에 있다. 마른 솔잎을 가득 채운 나뭇단에 불을 붙여 약 70m 높이의 깎아지른 벼랑 아래로 내던지는 것인데, 이 낙화는 우선 불이 크고 낙하 속도가 위력적이다. 부용대 위에서 나뭇단에 불이 붙으면, 강의 반대쪽 아래 만송정에 모인 사람들은 큰 소리로 ‘낙화야’라고 제창한다. 그 소리가 부용대 절벽에 부딪혀 메아리가 되는 동안 솔잎단이 산화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수직 강하한다.
하회 선유줄불놀이는 저마다 다른 속도와 방향과 밝기를 가진 세 가지 불과, 이 불들을 즐기는 움직이지 않는 배 위의 불로 구성되어 있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불에 대한 원초적이고도 다양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 불의 이미지들은 낙동강이라는 물, 하늘의 별빛과 사방의 어둠, 부용대 위의 나무와 절벽의 바위들이라는 자연과 대비를 일으키면서 넓고 깊어진다. 낙화는 분신 혹은 투신 자살에 대한 금기나 산불에 대한 두려움을, 달걀불은 물과 불이라는 상극 관계에서 빚어지는 염원이 결국 물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운명성을, 줄불은 낙화로 내던져지는 상승 의지의 허망함을 환기하는 것이다.

지난 10월1일부터 5일까지 경북 안동시 낙동강 둔치와 하회 마을 등지에서 펼쳐진 제1회 안동 국제 탈춤 페스티벌이 하회 선유줄불놀이(10월1일)와, 이 줄불놀이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물 불 탈의 잔치’(10월2~3일)를 잔치 속의 잔치로 설정한 까닭을 현장에서 읽을 수 있었다. 93년 대전 엑스포를 준비하면서 안동 탈춤 잔치를 기획했다는 안동 탈춤 페스티벌 집행위원장 강준혁씨(스튜디오 메타 대표)는 “줄불놀이는 국제적인 관광 상품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고 말했다.

안동 탈춤 잔치는 지역 잔치가 아니다

물론 하회 선유줄불놀이가 없었다고 해도 안동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69호인 하회별신굿탈놀이(하회탈은 국보 제121호)의 본고장인데다 도산서원으로 대표되는 조선 성리학의 본향이어서 국제 탈춤 잔치 개최지로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중 문화와 선비 문화가 공존하고, 한국학 세계화의 총본산을 기치로 내건 안동대가 있다. 실제로 이번 탈춤 잔치는 안동대 국학부가 직·간접으로 지원했고, 안동대에서 열린 제2회 한국학 국제학술대회(110쪽 기사 참조)도 탈춤 잔치와 같은 기간에 열렸다.

이번 탈춤 잔치의 성과는 적지 않다. 우선 국내에서 처음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 13개 탈춤 보존 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미국과 몽골 탈춤도 소개되었다. 선유줄불놀이가 완벽에 가깝게 재현되고, 그 현대화에 대한 실험도 병행되었다. 탈과 탈춤은 지역적이고 전통적이지만, 동시에 보편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세계의 민속 문화는 저마다 탈춤을 이어오고 있는데, 탈이 갖고 있는 디자인 요소와 탈춤이 갖고 있는 퍼포먼스 요소는 언제든지 현재와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안동, 크게는 한국 문화라는 지역성이 탈춤이라는 전통 문화를 매개로 하여 세계 문화와 직접 호흡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이 이번에 첫발을 내디딘 안동 국제 탈춤 페스티벌의 가장 큰 수확으로 보인다. 그래서 지역화가 곧 세계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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