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위기 딛고 문학의 귀환 길 찾기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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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30명 ‘자선 대표작’ 모은 공동 평론집 눈길
지난 10여 년 동안 국내에서 문학의 위상은 계속 추락했다. 밖으로는 영상 매체의 급성장에 눌렸고, 안에서는 문학 권력 논쟁 등 잦은 구설로 진을 뺐다. 이런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문학의 귀환’을 조심스레 타진하는 작업이 시도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국내의 대표적인 문학 평론가들이 한데 모여 ‘엔솔로지’(대표작) 형식의 공동 평론집 <우리 시대의 문학과 비평>(가제)을 준비 중이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염무웅)가 지난해 평론분과위원회 사업으로 기획한 것으로, 문학 평론가 황현산·서경석·최성실 씨가 편집위원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문학과 비평>은 한국 문학의 현재를 진단하는 총론(1부)과 개별 작품론이나 작가론(2, 3부)으로 나뉘어 있다. 따라서 국내의 대표적인 문학 평론가들이 한국 문학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으며, 어떤 작가와 작품이 이들의 눈에 띄었는지, 또한 이들은 무슨 잣대로 작품을 평가하고 있는지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 책의 필진으로는 백낙청 김병익 김윤식 최원식 오생근 염무웅 황현산 황광수 정과리 등 국내의 대표적인 중견 평론가로부터, 서영채 우찬제 정남영 손정수 이광호 최성실 권명아 황종연 정호웅 류보선 임규찬 방민호 양진오 서경석 최현식 김춘식 고영직 박수연 권혁웅 신형기 김재용 등 소장 평론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30명이 동참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1990년대 이후에 쓴 글 중에서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부를 만한 평론을 스스로 골라 묶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창작과 비평> 편집인으로서 1980년대 민족문학론을 사실상 대표했던 백낙청씨(서울대 명예교수)는 분단체제론이나 민족문학론 등 자신을 대표하는 글 대신 계간지<문학과 사회>에 투고했던 <비평과 비평가에 관한 단상>이라는 에세이를 자천하면서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백교수의 글은, ‘창비는 왜 매번 고 은과 신경림과 현기영을 말하며 문지는 왜 한결같이 황동규와 이청준과 이인성을 옹호하는가’라며 한국 문단의 편향성을 지적한 후배 평론가 손경목씨의 지적에 대한 답변 형식을 띠고 있다. 백교수는 이 글에서 ‘비평가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 이야기를 진솔하고 구체적으로 하는 자세이다’라며 손씨의 지적을 수용하면서도, 공정성 못지 않게 문학관의 투철함과 판단 기준의 확고함(당파성)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창비’와 함께 국내 문단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던 ‘문지’파의 수장 격인 김병익씨는 <자본-과학 복합체 시대에서의 문학의 운명>(<문학과 사회> 1997년 여름호)이라는 글을 자신의 1990년대 대표 평론으로 내놓았다. 김씨는 이 글에서 자본과 과학이 대세를 점령한 시대에 문학은 어떻게 존속할 수 있는지를, 4·19 세대의 감각으로, 약간 침통한 뉘앙스로 탐사했다. 그는 ‘이런 세계에도 과연 문학은 가능할까’라고 자문한 뒤, ‘삶의 의미와 세계의 허위에 대한 각성이 어느 시대에든 있어왔고 기능해왔기 때문에, …(이런 시대에도 허위와의) 싸움이 문학의 진정성이란 이름으로 수행되기를 나는 기대한다’고 썼다.

문학의 위상에 대한 비탄조 목소리는 다른 평론가들의 글에서도 공통으로 읽을 수 있다. 현재도 왕성한 비평 활동을 펼치고 있는 원로 평론가 김윤식씨(명지대 석좌교수)는, 아기장수 설화를 소재로 한 소설들을 통해 소설의 운명과 형식을 진단하는 글을 내놓았고, 황광수씨는 시뮬라르크적인 세계관을 담은 작품들을 예로 들면서 소설이라는 장르가 21세기 벽두부터 거세게 지형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원식 교수(인하대·국문학)는 아예 <문학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글에서 1980년대 문학을 반성적으로 돌아보면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으로 나뉘어 있는 국내 소설의 이분법적 구도가 서로 회통(會通)하고 수렴되어야 문학이 살아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과리 교수(연세대·국문과)도 ‘문학의 죽음은 영상 매체 때문이라고 하지만, 디지털에는 꿈이 없다’고 전제한 뒤, ‘문학은 꿈이다’라는 김 현의 유명한 명제를 떠올리면서 문학의 자기 반성을 촉구했다.

이처럼 원로·중견 평론가들의 글은 대부분 1980~1990년대를 정리하고 새로운 문학 비평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회고나 성찰을 담고 있다. 반면, 젊은 비평가들의 글에서는 치열한 자의식으로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징후’를 포착하고자 하는 노력이 역력했다. 편집위원장을 맡은 황현산 교수(고려대·불문학)는 “비평은 이제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론적 고민의 ‘치열성’과 시대적 맥락과 소통하는 ‘감수성’의 문제라는 시각이 정립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기획했다”라고 밝혔다. 책은 강출판사에서 내년 초에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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