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비장의 게임’ 시작되었나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5.02.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 ‘핵 보유’ 공식 선언…대미 직접 협상 등 노린 ‘광폭 외교’ 포석
설연휴 마지막 날인 2월10일 북한 외무성이 사고를 쳤다. 북한이 핵 보유국이며 미국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이상 6자 회담에 무기한 불참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한 것이다. 부시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 사회에서 조성되던 낙관론을 잠재운 충격의 일격이었다.

‘외무성 성명’은 북한 외무성의 의사 표현 방식 중 가장 격이 높다. 김정일 위원장의 재가를 얻어야 한다는 점에서 김위원장이 직접 주관하는 ‘비장의 핵게임’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김위원장은 왜 이 시기에 이같이 위험한 도발을 했을까.

올해가 2005년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김위원장이 국제 무대에 공식 데뷔한 2000년 이후 그는 해를 건너뛰며 ‘광폭 외교’를 선보였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한 시기가 그랬다. 그 다음해 1년은 침묵했고 2002년에 다시 7·1 조치와 신의주 개방, 북·일 정상회담으로 숨가쁘게 몰아붙였다. 제2차 핵 위기로 다시 지난해까지 2년 연거푸 침묵. 이제 다시 움직일 때가 되었다.

올해가 분단 60주년, 노동당 창건 60주년, 6·15 5주년 등 북한이 중요시하는 각종 경축일이 겹친 절목(꺾어지는 해)이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2005년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이야말로 광폭 외교를 위한 불가분한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핵 카드를 통해 김위원장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북한은 최근 몇 년간 ‘당 창건 60주년이 되는 2005년을 성대히 맞이하자’는 기치를 높이 세워왔다. 당 창건 60주년이 되는 올해를 기해 대내외 정책 목표에서 일대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워 온 것이다.

우선 대외 정책을 보자. 최근 북한의 선전 매체에 2005년을 ‘통일의 원년’ 또는 ‘주한미군 주둔 문제를 종식하는 해’로 만들자는 구호가 자주 등장해 왔다. ‘통일 원년’과 ‘주한미군 주둔 종식’은 북한의 논리로 보면 동전의 양면이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한 사정에 밝은 재일동포 전문가는 김위원장의 생애 최종 목표가 자신이 조선 민족 5천년 역사상 외세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 위인으로 기억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외세 문제만 해결되면 통일을 어떤 방식으로, 또 누가 주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외세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결국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뜻한다. 그동안 북한의 선전 매체들이 주장해온 주한미군 철수 역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이 스스로 명예롭게 철수하게 하겠다는 것’이었으니, 논리에 어긋남이 없다.

2005년은 7·1 조치가 3년차에 들어서는 해이며 중간 결산을 하는 해이기도 하다. 북한이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한 해인 것이다. 북한의 경제 회생에는 일정 정도 외부 지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북한은 남한 및 중국과의 경협을 중시한다. 일본에 대해서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보고, 미국에 대해서도 ‘도와주지 않아도 좋으니 방해만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여기서 걸리는 것이 바로 미국의 ‘테러 지원국 고깔’이다. 미국의 테러 지원국 고깔이 상존하는 한 북한은 미국의 방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북·미 관계 개선과 북한의 경제 회생 및 테러 지원국 고깔 문제야말로 김위원장이 해결해야 할 3대 목표이다. 김위원장은 이번의 핵 카드를 통해 ‘일석삼조’를 노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대내 정책 현안이 겹쳐 있다. 북한 소식에 정통한 한 대북 전문가는 “김위원장이 주도한 선군정치 10년사에서 지난해처럼 내부가 복잡하고 어려운 때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국내외 일부 언론이 간헐적으로 보도해온 후계 문제 때문이다. 김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중심으로 한 그룹과 김위원장의 차남 김정철을 옹위하는 그룹 간에 치열한 권력 다툼이 폭풍의 핵이었다.

두 그룹 간의 갈등은 지난해 9월 김위원장이 장성택 부부장을 지방으로 격리하고 당과 군에 포진해 있는 그의 인맥을 정리하면서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현재 북한 내 세력 분포는 김정철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힘을 받은 상황이다. 최근 북한 주변에서 제 7차 당대회를 올해 하반기 개최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도 이 기회에 김정철의 후계 구도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목적에서 그 주변 세력이 의도적으로 흘리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위원장은 대세를 관망할 뿐 가타부타 일절 언급이 없다고 알려진다. 김위원장이 아직 때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당대에 북·미 관계를 비롯한 주변 환경이 정리되기 전에는 후계 구도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것이 김위원장의 일관된 원칙이다. 2000년에도 김정철을 중심으로 후계 구도를 모색하다가 북·미 관계 정상화가 불발로 그치면서 유야무야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위원장이 일단 북한 권력의 한 축인 장성택 그룹에 손을 댄 상황인 만큼 후계 구도 정립을 위해서라도 환경을 정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핵 카드’, 선군정치 이벤트일 수도

베이징의 한 대북 소식통은 김위원장의 핵게임에는 북한 군부를 겨냥한 ‘군심 잡기’ 측면이 포함되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지난해 국유 기업 구조 조정을 필두로 전반적인 경제 개혁 작업에 착수하면서 내각의 위상을 과거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화시켜 왔다. 북한 정보 소식통들에 의하면 김정일 위원장 생일인 2월16일 이후 북한 내각의 위상 강화에 따라 내각에 무게 중심이 주어질 경우 북한 내부적으로는 지난 10년 동안의 선군정치 기간에 북한 사회의 주축 역할을 해온 군의 불만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2·16 직전에 한번쯤 군심을 다독이기 위한 ‘이벤트’가 내부적으로 필요했는데, 이번의 핵 카드가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북한이 이런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일본의 한 대북 전문가는 “부시 2기 정부 사람들을 만나보니 1기 때와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하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북한은 그동안 평양을 방문한 커트 웰던 의원이나 렌토스 의원 등 미국 의원들에게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인준 청문회와 부시 대통령 취임식 및 국정연설 발언 내용을 보고 6자 회담 참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이런 마당에 라이스 국무장관의 ‘폭정의 전초기지’나 부시 대통령의 ‘자유의 확산’이라는 발언이 아무리 미국 내부를 겨냥한 것이라 해도 못들은 것으로 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 외무성 성명에서는 폭정의 전초기지 같은 발언 내용을 문제 삼았지만, 실제로는 부시 2기 정부가 시간 끌기 전략으로 나올 것을 김위원장이 특히 우려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현재 부시 2기 정부의 대외관계 최대 현안은 이라크 문제를 비롯한 중동 정세 안정화와 유럽연합과의 관계 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라이스 국무장관이 취임과 함께 한·중·일 3국 방문은 자기 측근인 마이클 그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국장에게 일임하고 자신은 중동과 유럽 순방에 나선 데서도 드러난다.
워싱턴에서는 미국이 앞으로도 1년 간은 중동 문제 때문에 정신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북한 핵 문제는 내년이나 되어야 본격적으로 해결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다. 모든 대내외 현안을 2005년으로 몰아온 김위원장 처지로서는 충격 요법이 필요했을 법하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교환 가치라고 할 핵 문제를 긴박한 현안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미국의 시간 끌기를 차단하고 국내외 정책 목표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김위원장의 광폭 외교를 분석해 보면 대담한 외양과 더불어 그 이면에 치밀한 수 읽기를 동반해왔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 외무성의 갑작스런 성명 발표 직전 북한과 중국 및 미국 3자 간에 묘한 움직임이 전개되어 왔다. 지난 2월1~2일 마이클 그린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선임국장이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하고 베이징으로 날아가 후진타오 주석과 독대했다.

당시 국내외 언론들은 미국의 갑작스런 움직임이 2월2일 부시 대통령 연두교서의 전주곡이 아니냐고 주목했으나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갑자기 수선을 떨었을까. 마이클 그린 국장이 베이징을 다녀간 며칠 뒤 이번에는 베이징에서 의미 있는 정보가 흘러나왔다.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춘절 직후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는 정보와 함께 북한의 박봉주 총리가 2월 말 베이징을 방문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국내외 정보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중국·미국 3국간 최근 전개된 이 일련의 외교 게임에서 백미는 바로 박봉주 총리의 베이징 방문이다. 워싱턴 소식통은 “박봉주 총리 방중은 북한·중국 사이에서 지난해 12월에 결정됐고, 미국도 이미 그때부터 주목해 왔다”라며, 뉴욕 타임스 보도와 마이클 그린 국장의 최근 중국 방문은 박총리의 방중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자 탐색 성격이 짙다고 밝혔다.

미국이 박총리 방중에 대해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까닭은 그의 방중이 지난해 9월 이후 형성되어온 북·중 밀월의 핵심 내용인 북·중간 핵-경협 빅딜 안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중국은 지난해 리장춘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임위원의 방북과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의 상호 교차 방문을 통해, 유사시 북한은 핵문제에 대한 대담한 해법을 제시하고 중국은 그 대가로 최소 3억 달러 이상의 대북 경협에 나선다는 이면 합의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그동안 북한 내부의 권력관계 조정 과정에서 내각의 위상이 강화되면서 내각이 경제와 외교를 통할하게 되었고, 박봉주 총리가 중국과의 핵-경협 빅딜 안을 마무리할 다음 주자로 결정되어 베이징을 방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중 양국이 빅딜을 통해 핵 문제의 돌파구를 연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악몽의 시나리오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미국의 주도권에 치명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미국이 그동안 염두에 두어온 일본의 대북 수교 카드 역시 빛이 바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뉴욕 타임스를 동원해 북한의 핵물질 수출을 이슈화하고, 마이클 그린이 부시 대통령의 친서까지 들고 들어가 중국으로 하여금 6자 회담 틀 안에서 움직여달라고 ‘특별 당부’ 내지는 압박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단기적 국면을 보자면 북한 외무성 성명은 최근 북·중·미 3국의 외교 게임과 직접적으로 닿아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북·중 양국간 빅딜을 방해하지 말라는 경고이자, 미국이 협상할 생각이 있다면 우회하지 말고 직접, 그리고 당장 하자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한편으로는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평양 방문 직전을 택함으로써 중국의 외교 중재력을 극대화한 것이다. 중국에 대한 배려와 함께 대중국 교섭을 앞두고 몸값을 한껏 올려놓는 실리까지 노린 듯하다. 북한은 미국이 대북 직접 협상을 골간으로 북핵 문제 해법을 재정립하지 않을 경우 마땅한 대응 수단을 찾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