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의 '북한 투자 비공개 세미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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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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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북한 당국자 ‘대북 투자 비공개 세미나’ 내용 발췌
지난 8월3일부터 4일간 로스앤젤레스에서 북한 투자 자문 회사인 ‘LA 국제 경영연구원’과 ‘오 앤드 해싱 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북한 투자 세미나가 열렸다.

이 세미나에서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한성렬 공사는 “미국 정부는 미국 기업의 대북 직접 투자와 직접 무역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측 참가자인 데이비드 브라운 국무부 한국과장은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 및 실종자 처리, 테러 방지 확약, 남북 대화, 북한내 인권 문제’ 등을 미·북한간 경제 협력의 선결 과제로 제시했다.

이 세미나에는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현학봉 일등 서기관, 북한 경제 전문가 앤드류 린턴 벨재단 연구위원, 고든 플레이그 워싱턴 한국경제연구소 연구위원도 참석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 날 토론의 주요 발제 내용과 질의 응답을 발췌해 소개한다. <편집자>

한성렬 공사 : 백여 개의 외국 투자 대표단이 나진·선봉 지대를 참관하고 있는데, 참관 인원은 천여 명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10여 부문에 2억달러어치의 계약이 성사됐다. 92년 스칼라피노 교수가 미국 아시아협회 대표단을 이끌고 이곳을 처음 방문한 이래 미국의 니코회사·스탠턴그룹·머피그룹이 이 지역을 방문했다. 그밖에 제너럴모터스·포드 등 많은 미국 회사가 북한을 방문해 투자 의향을 밝혔다. 91년 이후 정무원 결정을 통해 나진·선봉 시를 자유무역 지대로 정한 이후 92년 개정 헌법 및 외국인기업법·합작법·투자법이 제정되었고, 93년 외국인투자기업 및 외국인 세금법, 자유무역지대법 등을 제정했다. 특히 미주 동포 기업들의 북한 투자는 미·북한 경제 관계뿐만 아니라 정치·외교 관계 수립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주고, 나아가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긴장 완화 및 동북아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 조처를 조속히 전면 철폐해야 한다. 미국은 지난 1월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완화한 뒤에도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고 있다. 미국은 1천4백만달러 상당의 미국내 북한 재산 동결과, 북한에 대한 제3국 은행에서의 달러 결재를 여전히 허용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상호 신뢰 구축을 촉구하는 제네바 합의에 따라 미국 기업인들의 대북 직접 투자와 직접 무역을 허용해야 한다. 그러나 현 상태에서도 미국 기업들은 사안 별로 미국 정부의 허락을 받아 대북 무역 교류를 촉진할 수 있다.

데이비드 브라운 : 미국은 조심스럽게 대북 경협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양국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할 정치적 문제가 많다. 지난해 10월 제네바 협상 타결 이후 무역 장벽을 제거하기 위한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했지만 외교·정치 문제에 걸려 완전한 무역 개방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다. 현재는 여행·정보 교환 같은 기초 분야에만 제한 조처를 풀어놓고 있는 상태이고 물품의 수출입 분야는 해외자산통제국이 모든 업무를 관리하고 있다. 완전한 미·북한간 경제 협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선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첫째, 한국전 참전 미군의 유해 및 실종자 처리 문제를 조사하기 위한 조사단의 방문과 관련해 협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북한은 대량 학살 무기류의 수출 중지를 포함한 국제 테러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미국 의회는 이 문제에 관한 한 북한에 대해 상당히 강경한 입장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미 의회의 북한 정책에 관련한 부정적 시각들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이같은 정책 표명이 필요하다.

셋째, 남북한 평화 정착을 위한 대화 채널을 열어야 한다. 북한은 한국 정부를 따돌리고 모든 것을 미국과 직접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반도에서 긴장 완화를 위한 남북 대화에 참여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서는 미·북한간 경제 교류 진전에는 문제가 많다.

넷째, 비록 북한의 내부 문제이기는 하지만 인권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개별적인 북한 투자 및 무역은 미 재무부 및 상무부에 문의하고 진행시켜야 한다.
앤드류 린턴 : 북한 경공업 분야의 경우, 나진·선봉 지대에 외국 투자가에게 혜택이 많고 자유스런 기업 활동과 이윤을 보장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고 하지만, 북한의 다른 지역에서도 국제적인 무역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봉제 분야의 경우는 가공 무역 형태로 합작·합영이 많이 진행되고 있고, 한국·유럽에 대한 수출이 나진·선봉 지대 외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공예품의 경우 상당히 우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좋은 제품이 생산되기 때문에 앞으로 투자 가치가 높은 분야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의 무역상사들은 산업 분화가 잘돼 있고 무역 업무에 대한 이해 수준도 과거 일본·동유럽·서유럽 국가와 무역한 경험이 있어 높은 편이다.

농업 분야에서는 한국이 20년 전에 경제 효율화와 생산성 증대를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경작지를 효율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내가 보기로는 미국이 작물류 경작에 탁월하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는 협력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중공업 분야는 북한이 중공업 중심 발전을 경제발전 전략으로 채택했기 때문에 상당히 발전된 상태다.

정보산업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장비를 가지고 있었고,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추고 있어 소프트웨어 생산 및 훈련이 가능해 보였다. 소매업 분야의 경우 미국의 월마트 같은 대형 체인점은 없지만 각종 백화점에서는 제한된 물량이나마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각종 과자류·중국산 제품·일본산 전자제품, 심지어 미국산 선키스트·워싱턴산 사과 및 주류가 눈에 띄었다. 제3국을 통해 반입된 것으로 보였다.

운송 분야는, 기초적인 도로망은 갖추고 있고, 초현대식은 아니더라도 일반적 운송은 어느 정도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전화 통신도 기본적인 전화 통신, 팩스 교신이 평양과 주요 도시에서는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금융 분야의 경우 생산 업무 및 감독을 맡은 중앙 은행이 있고, 이 은행 산하에 외국 화폐 환전을 맡은 외국인 무역은행과 준사립 은행들이 있다. 네덜란드도 ING가 지점을 개설했다. 북한은 이처럼 외국 금융기관 설립을 허용하고 있다. 중앙 은행과 관리 및 무역부 직원, 무역촉진위 간부 등 이 분야에서 일하는 인력들은 서방 의 비즈니스 문화 및 자신들의 경제에 대해 이해 정도가 높았다.

신용카드의 경우 유럽 은행들이 발행한 신용카드는 사용할 수 있었으나 미국 은행이 발급한 신용카드는 사용할 수 없었다. 미국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미국 은행과 북한 은행 간에 업무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스터 카드나 비자 카드는 원래 미국을 포함한 유럽 각국의 신디케이트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데 비해 북한과 같은 나라에서의 실제 사용은 국가간·양국 은행간 공조 체제가 확립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공조 체제가 확립되면 미국이 발행한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다음은 대북 투자 세미나에서 미국측 참석자들의 질문에 북한측 참석자들이 답한 내용이다.

왜 나진·선봉만 개방하려 하는가?

나진·선봉을 자유무역지구로 개발하려는 것은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이고, 경제 개발을 위해 전략 거점 지역을 먼저 개발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한국도 한때 울산만 중점 개발하지 않았는가.

북한내 투자에 대해, 혹은 무역 거래에서 중국처럼 중앙 은행이 보증하는 제도를 만들 의도는 없는가?

지금 현재로서는 없다. 보증하는 방안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측도 이에 상응하는 보증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에 정말로 소매 시장이 있는가?

북한 거리에서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주민들은 거의 볼 수 없다. 하지만 소매시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풍부한 자본주의 국가가 누리는 정도는 아니지만 균등한 범위 내에서 필수품을 공급해 주고, 각 지방에 있는 소매점을 통해 소매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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