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의 북한 진출 5대 전략
  • 정리·南文熙 기자 ()
  • 승인 1995.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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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국제경영연구원 ‘분석 보고서’/점진적으로 접근하며 본격 투자 준비
북한 시장에 대한 미국 기업의 관심은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국 기업에 북한은 검증되지 않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기업들의 움직임을 보면 북한 진출이 상당히 현실감을 띠고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움직임을 분석한다.

1. 자원 개발 차원의 접근

북한은 설비·기술·자금 부족으로 말미암아 자원을 백%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기업은 자원 개발 방법론을 모색하는 일에서부터 판매망 구축에까지 관심을 쏟고 있다. 관건은 투입 대 산출을 대비한 사업 타당성 여부이다. 판로 면에서는 미국 기업이 절대 유리하다.

1차 자원 개발과 관련해서는 코메탈사와 미네랄테크놀로지사가 대표적이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1월20일 제네바 합의 후속 조처로 경제 제재를 완화한 적이 있는데, 그때 북한산 마그네사이트에 대한 수입 규제가 풀렸다. 이후 코메탈사는 지난 2월 초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해 마그네사이트 수입과 관련한 1차 협상을 했다. 4월17일 미국 재무부는 코메탈사에 대해 북한산 마그네사이트를 수입할 수 있는 사업허가서를 내주었다. 이후 코메탈사 관계자들이 다시 북한을 방문해 수입에 필요한 후속 조처를 취한 바 있다.

미네랄테크놀로지사는 지난 6월10일 조선무역촉진위원회 오태복 서기장 일행을 미국으로 초청해 마그네사이트 천만t을 북한으로부터 수입하기로 했다. 이 물량은 미국이 해외로부터 수입하는 양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앞으로 마그네사이트 수입 문제는 양국 간에 협상할 여지가 계속 남아 있는 분야이다. 마그네사이트는 북한이 전세계에서 매장량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의 마그네사이트 매장량은 65억t 정도로 추정되며, 함경남도 단천군과 양강도의 백암·운흥 지역에 집중 매장돼 있다.

북한이 외국 기업과 합작 투자해 개발하기를 원하는 대표적 광물질 가운데 하나가 이산화티탄이다. 현재 남포시에 있는 강서 수산광산의 이산화티탄 매장량은 3억3천만t인데, 이산화티탄 정광을 매년 5천t씩 생산하고 있다. 수산광산 외에도 평강광산에 2억t 가량 매장돼 있고, 강령 앞바다 해변에는 이산화티탄이 1% 이상 함유된 모래가 상당량 깔려 있다. 강서 수산광산의 수송 조건이 좋기 때문에 북한 당국은 수산광산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투자를 유치하려 한다.

이밖에도 투자보다는 보상 무역 등 교역에 치중하는 ‘월드 스페셜 서비스사’도 개발 교역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월드 스페셜 서비스사는 포클랜드에서 운송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텍사스 어빙에 본부가 있는 ‘월드 웨이사’의 자사로서 미국 10개 주에 지사가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월28일 북한 국제문제연구소 김충걸 부소장과 대성총국 전일춘 제1부회장을 초청하여 미국 곡물 회사인 바틀렛사로부터 미국산 옥수수 5만4천t을 북한이 수입할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이 곡물은 3월17일 카길사의 곡물 선적 터미널에서 선적돼 3월20일 그리스 선박 메트로폴리스호에 실려 북한으로 출발했다. 북한은 생산업자나 가공 회사와의 직접 협상 방식보다는 중개인을 통해 미국 곡물시장에 접근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 곡물시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하여 수입선을 찾고 있는 것이다.

2. 점진적 접근 위한 거점 확보

평양사무소 개설은 북한 시장에 접근하기 위한 거점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기업이나 기관이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사, 언론 쪽에서는 CNN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밖에도 상당수 기업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경영연구원은 머니그램사로부터 위탁 받아 머니그램사의 평양사무소 개설을 북한측에 타진한 바 있다.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가 완화될 때를 대비해 평양을 방문하는 미국인들의 현금 수송 및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를 사용하는 데 편의를 주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신용카드에 대해서는 예상보다 빨리 사용 제한이 해제됐기 때문에 현재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 사용 쪽에 초점을 맞춰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북한은 국제 카드 회사들로부터 리스크가 높은 국가로 분류돼 있어 카드 발급은 허용하지 않고 사용만 허락한 상태다. 이에 따라 비자카드사는 프랑스의 BFCE 은행 싱가포르 지점을, 마스타카드사는 말레이시아의 MBF 은행을 내세워 북한의 대외무역은행과 업무 제휴를 통해 신용카드 소지자들이 북한내 호텔·백화점·음식점 등 30여 가맹점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북한내 신용카드 거래 규모는 작년 초까지만 해도 월 평균 4만달러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월 평균 거래가 10만달러를 넘는 등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비자카드사나 마스타카드사는 특히 나진·선봉 지대 등 개방 지역의 외국 업체 근무자나 북한 고위층 중 신용카드 사용자 수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카드 발급 업무도 취급할 수 있도록 북한 당국과 접촉하고 있다.

조르단 국제 담당 부사장을 포함한 CNN 방송 간부들이 지난 5월 평양을 방문했다. CNN 측은 이번 방문에서 북한 당국과 평양지국 개설을 협의했다. 미국 언론 가운데 유독 CNN이 북한 당국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는 것은, CNN측이 김주석 사망에 조의를 표했고 북한에 대해 다른 미국 언론사보다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3. 본격 투자 준비

앞으로 북한의 경제 개발 최우선 과제는 사회 기반 시설을 확충하는 문제이다. 통신 분야의 AT&T사나 MCI사, 에너지 분야의 스탠턴 그룹 등이 사회 기반 시설 분야에 깊이 참여하고 있다. AT&T사의 북한 접촉 창구 및 프로젝트 추진 상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AT&T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그룹’이다. 지난번 직통 전화 개설도 이 그룹이 추진했다. 직통 전화 개설은 현재 북한과 추진 중인 30여 개발 계획 중 초보적인 것이다. AT&T사는 애초 경수로 협상 등 미·북한 관계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5월 초에나 직통 전화를 개통한다는 계획으로 북한측과 협상해 왔다. 이 과정에는 일본의 국제전신전화 회사인 ‘KDD사’가 AT&T사와 북한측 계약사인 파이컴퓨트사 간에 중개 역할을 맡았다. 지난 2월18일부터 북한과 수 차례 전문을 교환하던 AT&T사는 3월15일 평양으로부터 중요한 전문을 받았다. 그 내용은 ‘귀사는 5월1일부터 우리측과 직통 전화를 개시하기를 원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4월10일께부터 서비스가 개시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는 바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통화 개설 시간이 앞당겨지게 됐다.

두 번째 그룹으로는 ‘AT&T 네트워크 시스템즈 그룹’이다. 이 그룹은 통신 기자재 및 장비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데, 앞으로 북한과의 협상에서 중요한 협상 파트너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북한이 주로 사용하는 통신 장비는 일본제 구형 아날로그 방식인데, 이를 미국식 통신체계로 바꾸지 않고서는 선진국과의 통신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따라서 북한은 이 통신 체계를 바꾸는 데 필요한 상당량의 통신 장비를 구입할 것이다.

MCI사측은 2월14일 미국 기업인 방북단에 참여해 북한에 들어갔다. MCI측은 그때 북한측에 나진·선봉 지대에 위성 텔레커뮤니케이션 시설을 세우겠다고 제안했다. 또 직통 전화 및 팩스 서비스를 개설하는 데 필요한 업무 협의도 마쳤다. 방북단에 같이 참여한 통신 장비 회사인 ‘컬럼비아 커뮤니케이션사’는 텔레커뮤니케이션 장비 및 시설 설비 부문에 참여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AT&T사와 MCI사의 북한 프로젝트 담당자들이 지난 5월13일부터 19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북한 당국자와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즉 ‘통신 서비스는 AT&T와 MCI 양사로부터 공동으로 받으나 통신 장비는 AT&T사 제품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핵발전 부문의 경우 미국 정부는 이미 한국의 원전 사업에 참여한 경험을 갖고 있는 웨스팅하우스사 및 관련 업체들을 북한 핵문제 해결 과정에 감독 회사로 참여시키려 하고 있다. 또 이와 함께 비핵 발전 시설을 북한에 확충시켜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에너지 부문의 스탠턴사는 북한에 진출한 최초의 미국 기업이다. 지난 1월19일 미국 상원 에너지위원회에서 행한 스탠턴그룹 브라운 사장의 증언에 따르면, 스탠턴그룹은 지난해 10월 제네바 합의서에 서명한 직후 북한의 요청에 따라 고위 경제 인사 및 기술자 팀을 북한에 파견했다. 당시 스탠턴팀은 북한의 전력 산업과 항만 시설에 대한 현장 조사를 2주일에 걸쳐 했고, 전력 생산 분야에 참여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 미국 정부로부터 승인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스탠턴그룹이 당시 세운 계획은 전력 생산, 정유, 산업 발전·개발 등 세 가지 분야이다.

당시 브라운 사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발전 부문에서는 스탠턴사가 나진·선봉 지대에 있는 가동 중지된 2백MW급 화력발전소를 인수해 우선적으로 이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고, 차후 다른 발전소는 북한에서 생산하는 연료를 이용해 발전하도록 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런 방식을 통해 유엔개발계획(UNDP)이 두만강 개발 계획에 제시한 두만강 지역 전력 공급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발전 설비를 가동할 자금은 스탠턴사가 정유시설들을 재정비해 정제한 석유를 세계 시장에 판매해 확보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원래 계획상으로는 5월 중에 유럽에서 원유를 처음으로 도입해 이를 정제한 뒤 석유 메이저들에게 전량 수출할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조처는 모두 끝낸 상태다. 앞으로 추가되는 발전 설비 자금은 정유공장을 확대해 마련하려고 한다. 또한 스탠턴사는 북한과 협의해 나진·선봉 지대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고, 이런 계획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미국 해외자산통제국의 규제 법안들을 철폐해 달라고 미국 상원에 요청했다. 나진·선봉의 정유·발전 개발 사업을 담당하는 주체는 북한의 조선설비회사와 스탠턴그룹이 합작한 ‘설비-스탠턴 개발회사’가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탠턴그룹과 북한의 인연은 92년 유엔이 주최한 두만강 개발 모임에서 스탠턴그룹이 두만강 개발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부터이다. 그러던 중 지난해 제네바 합의 이후 양측의 관계가 급진전돼 스탠턴그룹 전문가들이 나진·선봉 지대의 발전·정유·경공업 개발 등 3대 종합계획을 수립하게 된 것이다.

현재 북한에는 정유공장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중국의 원유를 들여와 정제하는 신의주 인근의 봉화정유공장이고, 다른 하나는 스탠턴그룹이 재가동을 시도하고 있는 나진·선봉 지대의 승리화학정유공장이다. 스탠턴그룹의 진단에 따르면, 승리화학정유공장이 휴업한 이유는 기술적 문제보다는 경화가 부족해 정유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기업과 연계해 북한에 진출하려는 미국 기업도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민간 기업의 북한 진출에 대해 정치적 선행 조건을 계속 내세우는 한 돌파구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4. 조사 활동 강화

미국 기업들 중에는 단기적으로는 북한 시장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장기적 전망에서 시장 구조 변화 예측 및 진출 시기를 놓고 활발히 조사 활동을 벌이고 있는 기업이 많다. 현재는 단순한 관심 차원을 넘어 사업 초기 단계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띠고 있기도 하다. 주먹구구 식의 조사가 가진 위험성을 탈피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런 활동이 바람직한 점도 있다. 북한도 지금까지 결벽증에 걸린 것처럼 대외 공개를 꺼려 오던 전례를 깨고 자료 제공과 실지 조사 기회를 기업들에게 줄 필요가 있다.

5. 지역 협력 구도 고려

미국 기업 가운데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부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대체로 지난해 이후 미국 본사의 지시에 따라 북한 시장 진출을 정책 과제로 설정해 두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은 사업 진행을 위한 인맥 연결, 사업성 검증 같은 실질적 활동은 많지 않았다.

최근 북한에 대한 이들 지역 본부들의 관심이 점증하고 있다. 분야도 다양하다. 농업 등 1차 산업에서부터 금융·제조업·통신·전자부품·에너지·광고, 그밖에 하이테크 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대북 사업이 미국 본사의 정책 지시 차원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사 차원의 사업으로 이전하고 있다는 점은 미국 기업의 북한 진출이 한 단계 격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미국 기업들은 북한의 개방 정책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행보 역시 매우 조심스럽다. 그러면서도 미국 기업들의 속성 가운데 하나인 장기적 안목에 입각한 투자는 지금 미·북한 관계에서 새로운 이슈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정부 차원의 접근이 일단락되면 첨예한 경쟁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다. 이때쯤이면 미국 기업의 북한 시장 진출이 본격화할 것임이 분명하다.
북한의 현직 외교관과 미국 정부의 고위 관리가 연사로 참석하는 북한 투자 전략 세미나가 지난 8월2일과 3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렸다. 북한 투자 전문 컨설팅 회사인 ‘LA 국제경영연구원’(대표 제임스 W. 유)과 ‘오 앤드 해싱 연구소’(대표 오공단)가 공동 주최한 이번 세미나에는 북한 측에서 한성렬 유엔 주재 북한공사와 리성일 이등서기관이 연사로 참석했고, 미국측에서는 데이비드 브라운 국무부 한국과장이 참석했다. 미국과 북한의 고위 관리가 한반도와 관련한 세미나에 함께 연사로 참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성렬 공사는 이 자리에서 북한의 대외 개방 정책에 대해, 그리고 리성일 이등서기관은 나진·선봉 지대의 투자 전망에 대해 발표했다. 데이비드 브라운 한국과장은 미국의 북한 정책을 설명했다. 이밖에도 벨연구소 앤드류 린턴 박사, ‘미국·한국 경제연구소’ 고든 프레이크 박사, 국제경영연구원 제임스 W. 유 대표, 오 앤드 해싱 연구소 오공단 박사가 미·북한 경협의 현안에 대한 발표자로 참석했다.

이번 세미나는 북한과 미국의 정부 당국자들이 대북 투자의 실질적인 가이드 라인을 제시할 것이라는 점에서 관련 업계의 깊은 관심을 끌었다. 북한측은 한성렬 공사의 연설문 초고를 통해, 북한의 대외 개방 정책에 대해 처음으로 ‘open door policy’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로써 북한의 대외 개방이 임기응변적이고 단기적인 정책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방향으로 추구되고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

민간 기업으로서 이번 세미나를 공동 주최한 LA 국제경영연구원은 지난해 7월 창립된 북한 투자 컨설팅 회사로, 그동안 거대 금융 그룹인 머니그램사의 북한 진출을 자문하는 등 굵직한 성과를 올려 실력을 인정 받고 있는 기업이다.

LA 국제경영연구원은 컨설팅 사업과 병행해 미국 기업의 북한 진출 현황에 대해서도 치밀하게 조사해 왔는데, 그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이번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시사저널>은 LA 국제경영연구원이 작성한 이 보고서를 입수해 싣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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