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박봉은 못 믿을 거짓말?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8.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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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임금’ 민간 노동자보다 2억9천만원 더 많아
공무원은 박봉 노동자인가? 지난 3월 노동부가 실업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공무원 봉급을 10% 깎자고 제안했을 때 공무원 사회의 반응은 차가웠다. 지금 봉급도 생계를 위협할 정도로 쥐꼬리만한데 여기에서 더 깎는 것은 해도 너무하다는 반응이었다. 공무원은 봉이냐는 자조 섞인 불만도 튀어나왔다. 일반인들도 대체로 ‘공무원=박봉’이라는 등식에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는다.

공무원 봉급에 관한 사람들의 고정 관념은 진실인가. 최근 이같은 통념을 깨뜨린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종훈 교수(명지대·노동경제학)는 한국개발연구원이 펴낸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 개혁〉이라는 연구서에서, 일생 동안 받는 소득, 이른바 ‘생애 보수’라는 틀로 분석해 보면 오히려 공무원의 소득이 민간 기업 노동자보다 24%나 많은 14억9천만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공무원의 임금이 박봉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은 이미 지난해 나왔다. 조우현 교수(숭실대·노동경제학)가 대우경제연구소의 ‘한국 가구 패널 조사’를 이용해 공무원과 민간 노동자 간의 순임금 격차를 분석했던 것이다. ‘공무원과 민간 부문 간의 근로 소득 비교 분석’이라는 이 연구에 의하면, 공무원은 같은 학력·경력을 지닌 민간 노동자에 비해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는 0.6%, 월급 기준으로는 3.1%를 덜 받는다.
행정자치부는 즉각 부인

이같은 결과는 공무원 월급이 민간 노동자에 비해 낮다는 통상 인식과 일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도 동시에 보여주었다. 조교수는 이 연구에서, 이미 민간에 비해 월등히 유리한 연금 제도와 고용 안정성같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편익을 감안한 총보수(금전적인 보수와 비금전적 편익의 화폐적 가치를 합친 것)라는 관점에서 공무원이 민간 노동자보다 나은 대접을 받고 있다고 ‘성급한’판단을 내린 바 있다. 조교수의 이런 예단은 이교수의 최근 연구로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이 연구가 ‘공무원=박봉’이라는 고정 관념을 깰 수 있었던 변수는 두 가지다. 우선 공무원의 정년이 민간 기업 노동자보다 6년이 길며,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수혜 폭이 크게 다르다는, 이전의 연구에서 들여다보지 않았던 요소를 끌어들인 덕분이다(공무원 정년은 5급 이상 61세, 민간 기업은 55세, 단 올해부터 공무원 정년이 60세로 조정됨).

이 연구는 군대를 다녀온 대졸 남성 사무직(행정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했다. 취직 시점부터 평균 수명인 75세까지의, 계산해낼 수 있는 모든 생애 소득을 저울에 올렸다. 기초 자료는 공무원 쪽은 행정자치부의 급여표이고, 민간 노동자의 경우는 노동부의 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였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26세에 취직한 민간 기업 노동자가 정년인 55세까지 29년간 받을 수 있는 임금은 9억4천만원이다. 마찬가지로 26세에 7급 3호봉으로 시작한 공무원은 정년인 61세까지 35년간 10억7천만원을 받는다. 정년이 같을 때는 8억2천만원밖에 손에 쥐지 못한다. 이로써 월급이 적다는 점은 분명해진다. 퇴직금 또한 민간이 훨씬 많다. 공무원은 민간의 절반(52.4%) 수준이다.

그러나 연금은 공무원 쪽이 훨씬 많이 받는다. 민간을 100으로 했을 때 공무원의 연금 수령액은 237.2나 된다. 공무원의 생애 소득을 민간보다 2억9천만원이나 많게 하는 마술이 가능한 이유는 정년이 길다는 점보다 연금 혜택에서 비교가 안되기 때문이다. 정년이 같을 때에도 생애 소득은 공무원 쪽이 6천만원이나 더 많다. 공무원의 임금과 퇴직 수당이 민간보다 훨씬 적은 불리함을 연금이 한꺼번에 상쇄할 뿐더러 생애 소득이 많게 하는 마술을 부리는 셈이다(오른쪽 도표 참조).

이 연구 결과가 알려지자 행정자치부와 기획예산위원회에는 공무원과 그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로부터 항의성 전화가 빗발쳤다. 공무원 급여를 담당하는 행정자치부 인사복무국은 즉각 이 연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요지의 반박 자료를 냈다. 이에 따라 공무원과 노동경제학자들 간에 미묘한 갈등마저 빚어졌다.

정부측이 낸 반박의 근거는 △7급으로 들어온 공무원이 정년 때까지 근무하며, 그것도 3급에서 퇴직한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이다 △공무원을 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체와 대비한 것은 너무 낮은 쪽과 비교한 것이다 △공무원연금은 역사가 30년이나 되며, 연금 기여금이 국민연금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간과했다 △민간이 높은 퇴직금으로 얻을 수 있는 금융 소득과, 퇴직 후 재취업해 벌 수 있는 추가 소득을 완전 무시했다는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회적 존경·고용 안정성도 매우 좋아

이런 반박에 대해 민간 전문가들은 설득력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우선 비현실적 가정이라는 점에 대해 이종훈 교수는 “총무처의 직급별 승진 소요 연수 자료를 통해 연령별 임금을 추정했다. 7급으로 들어와 3급으로 승진하는 시점을 59세로 보았다. 그래서 대체로 4급까지는 간다고 본 것이다. 정년까지 못가는 사람이 많다는 점은 민간 기업도 다르지 않다”라고 반박했다.

이교수는 또 설령 정부의 말대로 4∼5급에서 머무르다가 퇴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도 근속 연수에 따라 호봉 승급은 계속 이루어지므로 승진 여부가 최종 결과를 다르게 할 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공무원 연금 지급 기준이 최종 소득이므로 연금 수령액이 다소 높게 잡혔을 여지는 있다고 보지만, 이것 역시 민·관의 연금 격차가 매우 크므로 결과를 역전시킨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공무원 집단을 10인 사업체 조사와 비교했다는 반박에 대해서도 비판이 많다. 조우현 교수는 “학력·경력 같은 인적 속성이 같기 때문에 공무원 집단을 민간의 전산업 평균 노동자와 비교한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오히려 공무원을 공기업이나 재벌 그룹 근로자와 비교하는 것이 잘못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이종훈 교수는 백번 양보하고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고임금 지대인 3백인 이상 대기업과 비교하더라도 공무원의 생애 소득이 더 많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 경우도 놀랍게도 공무원이 민간보다 1억8천7백만원이나 많은 14억9천만원의 생애 소득을 얻는다는 것이다(정년이 같을 때도 민간의 96.8%를 받는다).

연금과 관련된 반박에도 일리가 없다는 의견이 주류다. 연금 전문가인 한국개발연구원 문형표 연구위원은 “공무원 연금은 급여 산정 기준이 최종 소득이며, 퇴직 직후부터 주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에 비해 설계 자체가 훨씬 유리하게 되어 있다. 가입 기간·기여금 등 모든 조건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근거 없는 주장이다”라고 일축했다.
문연구위원은 도리어 이 연구가 민간 기업 노동자가 받게 되는 국민연금 수령액을 지나치게 높게 잡고 있어 실제로 민·관의 연금 수령액 차이가 더 크다고 보아야 한다며, 그 근거로 올해 초 국민연금 수령액이 재직시 평균 소득의 70%에서 55%로 낮아진 점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퇴직금에 대한 금융 소득이나 재취업 소득 부분에 대해서도 이 점은 공무원이나 민간이나 모두 마찬가지여서 반박의 근거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종훈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과연 공무원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자 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며, 나아가 공무원 인건비의 효율화 혹은 합리화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공무원 임금 체계는 누더기 같다. 편법으로 임금을 인상하려다 보니 기본급이 지나치게 낮고 성격이 같은 수당이 여러 개 있으며, 수당과 복리 후생비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이 연구는 공무원 임금과 연금 체계를 뜯어고치고, 나아가 정부 생산성을 높이고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과 그렇지 않은 공무원을 달리 대접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공무원은 부도도 없고, 일부 예외를 빼면 정리 해고(직권 면직)도 없는 독점 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이므로 고용 안정성이 매우 높다. ‘IMF 시대’를 힘겹게 견디고 있는 민간 노동자 처지에 비추면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없다. 게다가 민간에 비해 평균적인 노동 강도가 약하며, 공무원이기에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존경 같은 이익도 적지 않다. 7급 공무원 채용 시험의 경쟁률이 200 대 1을 넘는 것은 이런 장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공무원에게 제공되는 비금전적 보상이 크고 금전적 보상마저 더 많다는 사실은, 국민들로 하여금 자연스레‘공무원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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