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혜택' 아쉬운 사회복지사들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7.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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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낮은 처우·몰이해 등으로 사기 꺾여
사회복지사 류응모씨(31)는 잘 때도 호출기를 머리맡에 두어야만 마음이 놓인다. 그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이 갑자기 응급실로 실려 가거나 밖에서‘사고’라도 치면 바로 달려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류씨는 그와 한 아파트에 사는 83가구의 소년소녀 가장들을 책임진 가장 중의 가장이다. 청주시 봉명동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리잡은 아파트의 관리사무소가 그의 직장이다.

대우재단이 기금을 출연해 92년에 건립한 이 아파트의 이름은 대우 꿈동산. 이 아파트에는 돌보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소년소녀 가장들이 모여 산다. 물론 전세금이나 관리비는 없고 오히려 등록금과 수업료까지 대준다. 덕분에 보호를 필요로 하는 청주시 소년소녀 가장들이 모두 이 곳에 모여들었다.

전국에서 2만여 명 활동

류씨는 여기서 다른 사회복지사 두 사람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는 책임을 맡고 있다. “사회 복지를 가장 필요로 하는 미래의 꿈나무들과 함께 생활하는 데서 사회복지사의 보람을 느낀다”라고 류씨는 말한다.

현재 전국에는 류씨와 같이 사회복지 관련 학과를 나와‘1급 사회복지사’자격증을 가진 사회복지사가 2만명이나 된다. 그러나 자격증을 갖고 실제로 사회복지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력 중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들은 각 읍·면·동 사무소에서 일하는 사회복지 전문 요원 3천여 명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별도의 채용 시험을 거쳐 뽑힌 별정 7급 공무원이다.

87년부터 생겨난 사회복지 전문 요원 제도는 올해로 꼭 시행 10주년을 맞는다. 사회복지 전문 요원은 사회복지 전달 체계의 살과 피를 이룬다.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혼자 사는 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을 돌보고, 장애인들을 취업시키기 위해 관내 기업들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이들을‘달동네의 파수꾼’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6년째 사회복지 전문 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경숙씨(32)의 직장은 마포구 창전동 사무소. 그러나 실제 그가 일하는 곳은 생활보호대상자와 장애인 백여 세대가 사는 월셋방이나 동네 골목길일 경우가 더 많다. 지난 2월에는 주말에 잠시 찾아보지 않았다가 월요일 아침에 들른 한 독거 노인의 전세방에서 눈동자가 풀어지다시피 한 채 누워 있는 할머니를 보고 기겁을 해 병원 응급실로 업고 뛴 적도 있다. 이처럼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사회복지 전문 요원들은 좀체로‘비상 대기’를 풀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전문요원, 별정직 신분에 묶여 승진 기회 전무

공무원 신분을 가진 전문 요원 외에도 사회복지사들이 활동하는 곳은 다양하다. 국민 소득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복지를 필요로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사회복지사가 근무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서울 강북삼성병원에 근무하는 홍지영씨(27) 명함에도‘사회복지사’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병원내 그의 공식 명칭은‘의료 사회사업가’이다.

병원을 찾는 환자나 보호자 들은 사회사업가라는 직함을 보고, 홍씨가 기껏해야 병원비가 모자라는 저소득층 환자에게 진료비 감면 혜택을 주거나 독지가를 연결시켜 주는 정도의 일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뜻밖에 홍씨는 요즈음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위한 사회 적응 훈련을 지도한다. 약물 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 사회 적응 능력을 갖춘 정신 질환자들에게, 정상적인 대인 관계를 위한 의사 표현 훈련을 시키는 것이 홍지영씨의 몫이다.
물론 의료 사회사업가가 이런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의 치료 외에 가족의 세심한 관찰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정신과나 재활의학과 환자의 가족을 상대로 전문적인 상담을 해 주기도 하고, 장기 기증자와 수혜자를 상대로 매매 목적의 거래가 아닌지 상담을 통해 가려내는 일도 맡는다.

이밖에도 사회복지사들을 주로 볼 수 있는 곳이 시·군·구마다 있는 지역 사회복지관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자폐아나 노인을 돌본다. 또 청소년 캠프를 지도하기도 하고, 크게 늘고 있는 어린이 보육 시설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물론 이들이 담당하는 일은 보육 교사나 레크리에이션 지도자와는 조금씩 다르다. 청소년 캠프를 지도하는 사회복지사들은 캠핑의 모든 과정을 통해, 참여한 청소년들이 집단 생활에 임하는 태도를 면밀히 관찰한 뒤 그 자료를 부모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이처럼 복지를 필요로 하는 일반 국민들조차 알아주지 않는 그늘에서 사회복지사들은 각 분야에 복지를 배달한다. 그 중에서도 행정기관의 최일선에 근무하는 사회복지 전문 요원은, 공무원이라는 안정성과 함께 복지 정책 수립에 직접 참여한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 사회복지사들에게 큰 인기를 누려 왔다.

그런데 사회복지 전문 요원들이 최근 들어 서서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별정직으로 묶여 있어 승진할 기회가 전혀 없다 보니, 전문 요원으로서 정책 수립에 참가하기보다는 생계비 심부름이나 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업무중 30% 복지와 무관”

마포구 창전동 사무소 사회복지 전문 요원인 김경숙씨는 요즘 들어 문득 자신이 전문 요원이 된 것이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는지 후회할 때가 많다.

그는 청각 장애인 복지 시설인 청음회관에서 2년간 일하다가 일선에서 장애자들을 돌보는 일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정책 수립에 직접 참여하려고 91년 공개 채용 시험을 거쳐 전문 요원으로 임용되었다. 그러나 동사무소에 배치된 뒤 김씨에게 주어진 업무는 정책이나 행정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전문 요원’이라는 호칭이 무색하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 7월12일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와 한국사회복지사협회가 사회복지 전문 요원 제도 시행 10년을 맞아 개최한 토론회에서 김종해 교수(가톨릭대·사회복지학과)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사회복지 전문 요원이 담당하는 업무 중 30% 가량이 복지와 무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일선에서 사회복지 전문 요원이 느끼는 체감 지수는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게다가 복지 분야에 대한 일선 행정기관장들의 관심 부족도 이들의 사기를 꺾는 요인이다. 사회복지 전문 요원 동우회장인 김진학씨(강서구청 근무)는, 일선 행정기관장들이 사회 복지를 노인 잔치나 벌여 주는 1회성 행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전문 요원들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사회복지 전문 요원의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승진이 불가능한‘별정직’으로 묶여 있는 전문 요원을 일반직으로 전환해 처우를 개선하고, 이들이 정책 담당자로 기용될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쇄신위원회도 95년 이런 의견을 받아들여 내무부와 보건복지부로 하여금 일반직 전환을 추진하도록 의결한 바 있다. 그러나 내무부와 재정경제원의 반대로 일반직 전환 문제는 현재 암초에 부딪혀 있다.

내무부는 원칙적으로 일반직 전환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도, 다른 별정직 공무원과의 형평 문제와 일반직으로 전환했을 때 국비 지원이 어렵다는 점을 들어 유보하고 있다.

재경원의 입장은 더욱 완강하다. 일반직으로 전환하면 지방직 공무원이 되기 때문에, 현재 사회복지 전문 요원 인건비의 50∼80%를 차지하는 국비 지원이 단절되어 복지 사업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런 부처간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묵은 현안이기도 한 일반직 전환 문제의 매듭이 쉽게 풀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일반직 전환 문제는 오히려 지엽적인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사회복지사를 보는 주변의 시선이다. 일반인들이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 전문 요원을 단순한 말단 공무원 정도로, 병원이나 복지관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를 의사나 전문가를 보조하는 직원 정도로 보는 것이다.

사회복지가 사회적 보호를 필요로 하는 주민들로 하여금 최소한의 생존을 위협하는 빈곤과 싸워 나가도록 돕는 일이라고 할 때 사회복지사는 그 전투의 최일선에 배치된 야전군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국민소득 만 달러 시대에 국민 복지를 위해 돌진해야 할 야전군의 사기는, 낮은 처우와 사회적 무관심 등으로 인해 형편없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정작 복지가 필요한 사람은 사회복지사’라는 역설이 성립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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