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의 연예인 출신 며느리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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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며느리 된 스타들, 숨막히는 '왕따의 삶
‘백마 탄 왕자’와 ‘유리 구두 신은 신데렐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이상적인 조합으로 꼽힌다. 왕자와 신데렐라를 현재는 재벌과 미모의 스타로 대체할 만하다. 문 희·안인숙·배인순·정윤희·황신혜·고현정·장은영…. 수많은 신데렐라가 연예계를 떠나 재벌가로 향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의 생활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이들의 결혼 생활은 쉽게 금이 갔고, 그 틈새로 일반인은 재벌가의 특이한 가정사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1995년 연예계 최고의 스타 자리를 미련 없이 박차고 삼성가로 시집간 탤런트 고현정씨(32)가 최근 이혼했다. 결혼한 지 8년 6개월 만의 일이다. 고현정씨는 뭇 여성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결혼 생활 간간이 언론에 등장한 고현정씨의 얼굴에는 그늘이 있었다.

사생활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삼성의 가풍 탓에 고현정씨는 외출도 자유롭지 못했다. 운전면허 시험을 보거나 요리학원을 다니다가도 언론에 노출되면 바로 그만두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결혼 반지 도난, 가라오케 음주, 성탄일의 교통 사고가 잇따르면서 무수한 소문이 퍼졌다. 남편 정용진씨의 사생활에 대한 소문도 무성했다. 급기야 새벽에 포르셰 도난 사건이 일어난 뒤 이혼 도장을 찍고 말았다. 고씨의 한 지인은 “고현정은 삼성가에 적응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결혼 반지 도난 사건 이후 둘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고씨는 엄격하기로 소문난 삼성가의 며느리가 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신세계의 며느리 대접도 그리 훌륭하지는 않았다. 삼성가에서는 여자에게 주식을 나누어주는 것이 관례다. 이재용씨 부인도 주식을 1백60억원어치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고씨는 단 한 주도 받지 못했다. 고씨의 어머니가 광주 신세계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한 것이 신세계와 연관된 혜택의 전부다.

다른 재벌가 며느리의 생활도 고단해 보인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전 부인인 전 펄시스터즈 멤버 배인순씨(55·본명 김인애)는 자전 소설 <30년 만에 부른 커피 한잔>을 통해 자신의 결혼 생활을 고백했다. 1976년 대기업 회장의 ‘안방 마님’으로 변신한 이른바 ‘ 1세대 신데렐라’의 생활은 호화로웠다. 그녀의 집은 4백50여 평이나 되는 정원에 수영장까지 딸려 있었다. 딸의 약혼식을 일본 최고 갑부들만 이용한다는 대국호텔에서 올렸고,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유럽 여행을 다녔다. 집에는 주치의가 상주하고, 일하는 아주머니와 유모가 5명이나 있었다.
겉은 화려했지만 속내는 어두웠다. 시부모는 결혼 생활 시작과 동시에 그녀의 존재를 부인했고, 결혼 6개월, 임신 6개월인 상태에서 나가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또 남편의 끊임없는 여성 편력에 진저리를 쳐야 했다.

결혼 전후 5년간 법도·영어·요리 등 배워

그렇다면 재벌가 며느리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우선 며느리가 되는 과정부터 살펴보자. 한 재벌 2세는 “재벌가에서 며느리를 들일 때면 바깥 세상의 물을 빼고 그 재벌가만의 옷을 하나하나씩 입혀 간다”라고 말했다. 모든 것은 개인 교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재벌가에서 유일하게 본받는 것은 영국 귀족의 생활 방식이다. 우선 가정 교사를 통해 집안의 가풍과 법도를 가르친다. 만인으로부터 추앙받던 스타가 결혼을 한 뒤 가족과 식사도 함께 못하는 처지가 된다. 매일 아침마다 시부모와 남편이 밥 먹는 것을 챙기고 또 서서 지켜보면서 시중을 든다.

각 분야 최고의 권위자에게 중식·일식·프랑스식 등 요리 강습을 받는 것도 중요한 일과다. 최근 서울 강남 청담동 등지에 있는 최고급 식당 운영을 재벌가 젊은 며느리들이 맡는 것은 다 이런 연유에서이다. 청담동 K·I·S 등이 재벌가 며느리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신혼 초 고현정은 서울 연희동의 한 중국식당 2층에서 중국 요리 강습을 받았는데, 그때 주방장과 5∼6명의 보조 요리사가 고현정 단 한 사람만을 가르쳤다.

영어를 가르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회화는 주로 대학 교수가 상류층 사교 영어를 가르친다. 재벌가의 식구 거의 대부분이 외국에 거주한 경험이 있어 영어를 일상어로 쓰기도 한다. 영어를 못하는, 외부에서 들어간 식구라면 ‘왕따’당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림 공부도 필수 과목이다. 재벌가에서는 예술품 모으기가 경쟁 분야처럼 되어 있고, 집안 자체가 잘 꾸며진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배인순, 삼성 홍라희, SK 노소영 등 재벌가 며느리들이 미술관장을 맡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런 교육은 보통 결혼하기 1∼2년 전부터 시작해 결혼식을 올린 지 2∼3년 뒤까지 계속된다. 재벌가 며느리들은 보통 부모님을 모시고 살거나 가까운 곳에 모여 산다. 최근에는 2∼3년 모시면서 시댁의 분위기를 익힌 뒤 시댁과 가까운 곳에 분가하는 경향이 굳어져 간다고 한다. 고현정은 3년간 시부모 집에서 살다가 10여 m 떨어진 곳으로 분가했다.
재벌가 결혼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조혼이 일반화했다는 것이다. 1998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씨와 결혼한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장녀 세령씨는 당시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또 혼맥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재벌들은 몇 다리 건너면 다 사돈이다. 일부 그룹이 정략적으로 당대의 명문가와 연을 맺기 때문이다. 최원석씨의 큰 딸 최선희씨의 남편이 이건희 회장의 형 창희씨의 아들이어서 배인순과 고현정은 사돈 간이다.

재벌가는 그만큼 이방인에게 배타적이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고 교육받는다. 특히 연예인은 내부에 진입하고서도 ‘이너 서클’에서 함께 어울리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고현정씨가 삼성가 며느리들과 자주 어울린 것 같지는 않다. 그녀는 2000년부터 올해 초까지 시간이 날 때면 친정집이 있는 방배동 일흥 스포타운에 들러 수영을 하거나 마사지를 받았다.

톱스타 ㅇ씨가 재벌과의 결혼 포기한 까닭

지금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톱스타 ㅇ씨는 2년 전 국내 굴지의 재벌 L사 아들과 결혼을 전제로 사귀었다. 관계가 깊어질 무렵 그 재벌가에서 ㅇ씨를 집으로 초대했다. 단지 저녁을 먹고 차를 한잔 마셨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기가 질렸다. 그녀는 가족에게 “우리 집안도 남 못지 않게 돈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수준 차이가 너무 났다. 밥 먹는 격식도 엄청나게 까다로웠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등장하는 재벌가의 모습을 몇 단계 초월하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라고 말했다. 둘 간의 관계는 그 날로 끝이었다. 이렇듯 연예인들이 재벌가로 가는 데는 장벽이 높다. 하지만 용감하게도 무수한 별들이 재벌가로 향했다.

1960년대 윤정희·남정임과 더불어 ‘트로이카 시대’를 구가하던 영화배우 문 희(57·본명 이순임)는 1971년 한국일보사 장강재 회장과 결혼한 뒤 은막을 떠났다. 결혼 후 한동안 ‘문 희 자살설’이 퍼져, 장회장은 정·관계 인사들을 총망라해 가든파티를 열고 문씨를 보여주기 바빴다. 1993년 장회장과 사별한 후 문씨는 한국종합미디어 대표이사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는 특별한 직함은 갖지 않은 채 <일간 스포츠> 장중호 사장의 후원인 노릇을 하고 있다.

영화 <별들의 고향>을 통해 1970년대 만인의 연인으로 떠올랐던 ‘경아’ 안인숙씨(52)도 인기 절정에서 대농그룹 박영일 부회장과 결혼했다. 은퇴 후 음악가인 시누이 박은희씨의 행사에는 간혹 참석했으나 다른 장소에는 일절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씨는 지난 10월 한국영상자료원이 선정한 ‘한국의 명배우 초대전’의 주인공으로 뽑혔지만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현재 1남2녀의 어머니로서 신앙 생활에 몰두하고 있다.
유지인·장미희와 함께 1970년대 신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던 정윤희씨(47)는 1984년 조규영 중앙산업 회장과 결혼했는데, 이후 공적인 무대에 나선 적이 거의 없다. 정씨는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에 거주하며 1주일에 한두 번 골프장에 나가는 것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녀에게 쏟고 있다. 현재 1남2녀를 두고 있다.

“연예인은 상품, 돈 많은 곳에 팔린다”

재벌가로 갔다가 금세 뛰쳐나와 버린 신데렐라도 적지 않다. 탤런트 황신혜씨는 1987년 제화 재벌 에스콰이어사 가문에 며느리로 들어갔다가 결혼 6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 또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 한성주씨는 1999년 애경그룹 회장 3남과 결혼했다가 10개월 만에 이혼했다. 최근 그녀는 라디오 프로를 맡고 방송 활동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재벌가와 연예인의 결합이 좋지 않은 결말을 맺는 경우가 많은데도 왜 연예인들은 재벌가와의 혼사에 매달릴까. 한 스포츠 신문의 편집국장은 그 이유를 명쾌하게 ‘돈’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예인은 얼굴과 몸으로 된 상품이다. 상품은 돈 많은 곳에 팔리게 되어 있다.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높이 대우해줄 수 있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한 연예 관계자는 “연예인들은 자신이 위치한 자리보다 화려한 것을 꿈꾼다. 돈이 많다고 해도 항상 그 이상을 원한다. 그 욕심이 재벌 가문을 두드리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화 평론가 변희재씨는 “1980년대 영화·드라마는 재벌 회장가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재벌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연예인들이 재벌가로 향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예인 자체가 권력이 되면서 연예인들의 재벌가행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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