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해방구’ 인터넷 증권 사이트
  • 蘇成玟 기자 ()
  • 승인 2000.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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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증권 사이트, 개인 참여로 급성장… 익명 악용한 허위 정보 차단해야
요즘 인터넷 증권 전문 사이트 ‘팍스넷(paxnet.com)’의 하루 조회 수는 평균 천만 건을 웃돈다. 지난 4월 초에는 하루에 2천1백만 건을 넘긴 적도 있다. 전문 분야 사이트치고는 엄청난 조회 수이다. 단순히 계산해도 팍스넷 회원이 약 백만 명이니까 모든 회원이 하루 평균 열 번 넘게 이 증권 사이트를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팍스넷이 법인 등록과 동시에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 때가 지난해 5월이었으니 딱 1년 만에 그렇게 성장한 것이다. 5월5일 인터넷 사이트 방문자 수를 조사하는 기업인 미국의 알렉사닷컴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팍스넷 방문자 수는 한국에서 16위·세계에서 151위로 집계되었다.

팍스넷이 증권 전문 사이트로서 정상의 지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파죽지세로 팍스넷을 추격하는 증권 사이트도 있다. 바로 지난해 9월부터 인터넷 서비스를 실시한 ‘씽크풀’(thinkpool.com)이다. 씽크풀은 5월5일 알렉사닷컴의 방문자 수 발표에서 한국 71위·세계 840위 기록으로 세계 1000대 사이트에 처음으로 진입했다. 씽크풀에 따르면, 이 사이트의 하루 평균 조회 수도 7백만 건이 넘는다.

3백 개가 넘는 동호회를 운영하는 팍스넷이 커뮤니티를 중시하는 사이트라면, 씽크풀은 전문성이 돋보이는 컨텐츠 중심 사이트이다.

이 두 강자를 제외한 인터넷 증권 사이트로서 비교적 지명도가 높은 곳으로는 슈어트레이더스(suretraders.com)·이큐도스(ekudos.co.kr)·코스닥터(kosdoctor.co.kr)가 있다. 인터넷 증권 사이트가 워낙 급증하다 보니 전체 규모는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 2백∼3백 개로 추산하는 이도 있고, 6백∼7백 개에 달할 것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어쨌든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인터넷 증권 사이트가 짧은 기간에 그처럼 급팽창할 수 있었던 본질적인 이유는 한국 증시가 안고 있던 고질적 병폐에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추구하는 개방·자유·평등 정신이 정보 통제·주가 조작 등 한국 증시가 안고 있던 허점을 맹렬히 파고든 것이다.

팍스넷 김준기 웹기획운영실장은 “개인 투자자들이 기존 증권사가 제공하는 시황 분석이나 투자 의견을 접하며 늘 답답해 했던 점이 ‘그래서 뭘 어쩌란 말인가’였다. 투자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어떤 주식을 언제 사고 언제 팔아야 하느냐 하는 구체적인 것이다. 특히 기존 증권사는 팔아야 하는 종목에 관한 정보가 너무 없었다”라고 설명했다.소신파 ‘사이버 애널리스트’들 맹활약

인터넷 증권 사이트들은 달랐다. 사이트 게시판에는 늘 자유로운 의견이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 어떤 종목을 언제 매수·매도하라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상당한 주식 투자 경력과 개인 학습을 토대로 하여 시황을 분석하고 추천 종목을 제시하는 ‘사이버 애널리스트’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고 소신껏 투자 의견을 펼쳤다.

인터넷 증권 사이트들의 활동은 주식 시장이 투명해지는 데 상당히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인터넷 증권·금융 뉴스 매체인 ‘머니투데이’(moneytoday.co.kr) 박종인 정책감독팀장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한국 증시는 시장의 룰과 무관하게 기관이나 큰손이 정보를 독점해 개인 투자자들이 늘 정보에서 소외되어 왔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시장의 투명성과 소액 주주들의 권한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증권 사이트들이 급성장한 것은 주식 시장에서 ‘파워 집단’을 형성하려는 개인 투자자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코스닥 시장이 급성장한 데에는 인터넷 증권 사이트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 우선 꼽을 수 있는 요인이 ‘빠른 정보’. 지난해 상반기부터 코스닥 시장이 활황세를 보였지만, 그 무렵만 해도 코스닥 등록 기업에 관해 별로 알려진 것이 없었다. 증권사들조차 코스닥 기업 사정에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인터넷 증권 사이트에는 코스닥 등록 기업에 관한 정보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해당 회사 직원들이 직접 올리는 글도 적지 않았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얻기 힘든 중요한 정보들이었다.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요인이 ‘새로운 시각’이다. 지난해 상반기 코스닥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기존 증권업계에서는 이를 한때의 ‘거품’으로 치부하려는 시각이 우세했다. 인터넷 증권 사이트들은 달랐다. 사이트 게시판에는 연일 정보통신 혁명이 몰고온 신경제 틀을 기존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꼬리를 물고 등장했다.

이것이 거래소에서 항상 기관과 외국인에 치여온 개인 투자자들이 코스닥이라는 미지의 보물섬을 선점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기관이 개인을 뒤쫓다가 상투를 잡는 증시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곳도 바로 코스닥 시장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따르는 법. 인터넷 증권 사이트가 활성화하면서 부각된 문제점들도 만만치 않다. 가장 대표적인 병폐가 익명이라는 허점을 이용해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자기가 산 주식을 다소 ‘뻥’ 튀겨 가며 자랑하는 정도는 순진한 축에 속한다. 문제는 특정 기업에 관한 부도설을 유포한다든가 공매도·공매수 또는 작전 세력 개입 등 확인되기 힘든 정보를 퍼뜨려 시세를 조종하려는 악의적 정보들이다.

글들이 하루에도 수백∼수천 건 게시판에 오르다 보니 사이트 운영자들의 고충도 적지 않다. 한 운영자는 “가장 악질적인 것이 부도설이다. 이런 글은 대개 사실 무근인 예가 많은데, 해당 기업에 확인해 보고 사실이 아닐 경우 일단 삭제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확인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해당 글이 계속 사이트에 머무르며 불특정 다수 투자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지난 4월 동양증권이 현대투신운용에 관한 정보를 내부 핫라인에 올리려다 시황 정보 항목에 잘못 게시했는데, 이 정보가 업무 제휴 관계인 팍스넷 사이트에 자동 전달되어 6분 넘게 공지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직후 금융감독원이 ‘인터넷 상시 감시반’을 설치·운영하자, 인터넷 증권 사이트 업계에서는 조만간 된서리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금감원 인터넷상시감시반 관계자는 “감시반이 생긴 것은 동양증권 파문 때문만이 아니다. 어차피 인터넷 증권 사이트 감시 조직을 준비하고 있던 상황에서 발족 시기가 맞아떨어진 것뿐이다”라고 해명했다.

전자 우편으로 종목 추천… 시세 조작 우려도

현재 인터넷상시감시반이 모니터링하고 있는 50개 증권 사이트에 대한 기준은 대략 △증권 전문 여부 △방문자 수 △사회 인지도 △사이트 내에서 증권사 홈트레이딩으로 직접 연결되는지 여부 등으로 나뉜다. 다만 이 역시 고정된 기준이 아니며, 또 지금은 사이트 내용을 검색하고 있는 단계일 뿐 제제나 처벌 등 어떠한 조처도 결정된 바 없다는 것이 감시반측 이야기다.

최근 일부 인터넷 증권 사이트들은 익명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점을 차단하고자 정보통신진흥협회에 회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대조해 달라고 의뢰했다. 신원이 확인된 회원만 인정해 사이트를 투명하게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인터넷 증권 사이트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일부 사이버 애널리스트가 자기 팬들에게 전자 우편으로 특정 종목을 추천하는 행위다. 한 인터넷 증권 사이트에 따르면, 팬들의 전자 우편 주소를 7백여 개나 확보한 사이버 애널리스트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같은 정보 교류는 공개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칫 증권거래법이 금하고 있는 ‘통정(通情) 매매’에 해당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인터넷 증권 사이트들이 회원만 많이 끌어들이려 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책임감 있게 사이트를 관리 운영하느냐가 앞으로 이들의 운명을 가늠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 같다. 신뢰가 성공을 보장하는 충분 조건은 아니지만, 신뢰 없이 성공을 기대하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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