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림 북경행?…허튼소리 말라
  • 북경·李興煥 특파원 ()
  • 승인 1996.11.2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분 노출 쉬워 은신처로 부적합…신병 치료 중 거주지 옮길 이유 없어
김정일의 전 동거녀 成惠琳(59)이 모스크바와 스위스에 이어 이번에는 북경에 나타났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서방에 망명했다는 보도의 파문이 잠잠해진 지 3개월 만의 일이다. 성씨의 북경 존재설은 이번에도 양극단을 오간다. ‘이미 6개월째 북경에서 살고 있다’는 체류설과 ‘북경에는 나타난 적도 없다’는 체류 부인설이다.

북경 체류설은 온갖 설이 난무했던 그간의 성씨 행적에 의문점을 하나 더 추가시켰다. 체류설에 따르면, 성씨가 북경 외곽의 외국인 고급 별장에서 중국 당국과 주중 북한대사관의 적극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고 되어 있다. 성씨가 모스크바에서 서방으로 망명을 시도했다는 망명 기도설과 북경 체류설은 전혀 다른 상황에서 전개되고 있는 셈이므로, 체류설이 사실이라면 성씨는 망명 기도 여부와 전혀 상관 없이 거주지를 모스크바에서 북경으로 옮겼을 뿐이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은 성씨가 북경에 체류할 가능성을 부인한다. 신병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이 섣불리 거주지를 옮길 리가 없으며, 거주지를 옮긴다 하더라도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북경을 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성씨가 북경에서 6개월째 살고 있었다면 중국 당국이나 우리가 모를 리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북경에 상주하는 북한 외교관이나 기업인들의 거주 형태를 감안하더라도 성씨가 북경에 체류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지적도 있다. 북경 인근에는 외국인을 위한 빌라 형태의 고급 별장이 수없이 널려 있다. 성씨가 체류한다고 보도된 빌라도 그 가운데 하나이며, 규모나 시설 면에서 다른 별장에 비해 조금 낫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주중 북한대사관은 북경 인근에 별장을 최소 3~4채 소유하고 있다. 이 별장들은 평양에서 북경을 방문하는 고위급 인사 외에도 북경에 사업 기반을 둔 북한 기업인들이 집단으로 숙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북경 시내에서 가깝게는 20㎞, 멀게는 40㎞씩 떨어져 있고, 대부분이 승용차로 출퇴근한다.

성씨가 체류했다는 북경 인근 순의현(順義縣) 별장에도 평양에서 오가는 북한의 거물급 기업인들이 가끔씩 머무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별장 거주자들은 북경 시내에서 영업하고 있는 한 북한 식당에 김치 등 부식을 요청하곤 했으며, 식당에서도 김치를 50㎏ 단위로 판매하는 등 순의현 소재 별장과의 ‘거래’는 이미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서방 망명설과 신병 치료 등으로 이미 외부에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행적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성씨가 북경을 장기 거주지로 택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성씨 북경 체류설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의문점은 여전히 남는다. 성씨 자신이 망명 의사를 가지고 있든, 아니면 북한 당국의 극비 보호를 받고 있든, 성씨는 은신처를 필요로 한다. 그런 상황에 처한 성씨가 모스크바나 제3국을 마다하고 굳이 북경을 은신처로 택한 배경과 과정이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북경은 사실 보도의 ‘블랙홀’이 되곤 한다. 남북 밀사 접촉설은 여전히 ‘說’로 남아 있는 상태고, 이양호 전 국방부장관 수뢰건에 관련된 권병호씨도 이곳에 나타났다가 잠적했다. 북한과 관련된 사건일수록 평양이나 서울보다는 북경이 뉴스의 초점으로 떠오른다. 성씨의 북경 체류설 역시 북경에서 나온, 북한 관련 보도라는 두 가지 점에서 진위 여부를 단정하기 힘든 전형적인 북경발 뉴스 형태를 띠고 있다. 확인하기 힘든 얘깃거리가 양산되는 만큼 북경의 중요성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