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퇴진 태풍’ 몰고오는가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7.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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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 대규모 단식·민중 집회 계획… 학생 장악력 떨어져 ‘미풍’에 그칠 수도
4월 대학가가 ‘4월 대란’의 진원지가 될까. 학생운동에서 4월은 시즌 개막을 의미한다. 각종 신입생 환영회로 3월을 보낸 대학가는 4월부터 본격적으로 대정부 투쟁을 펼치기 마련이다. 올해도 마찬가지이다. 투쟁 목표 선언은 여느 해보다 일찍 나왔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이미 신학기 벽두인 3월7일 기자회견을 통해 올 상반기 내에 김영삼 정권을 퇴진시킨다는 투쟁 목표를 분명히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학생운동의 신학기 흐름에 진작부터 초미의 관심을 기울여 왔다. 한보 사태와 김현철씨 문제로 국가위기론과 헌정 중단 우려까지 나오는 마당에 학생들이 일제히 거리로 뛰쳐나온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확산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찌감치 동맹 휴업과 정권 퇴진 투쟁을 선언하고 나선 학생 운동권의 분위기는 예년 같지 않다. 3월24일 부산·경남 지역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김영삼 정부 불신임 여부와 동맹 휴업 여부를 놓고 치른 총투표 결과부터가 그랬다. 절반을 턱없이 밑도는 투표율 때문에 한총련 지도부는 3월28일과 29일 이틀에 걸쳐 결행하려 했던 동맹 휴업을 사실상 포기했다. 지방의 부산대·동아대·전남대 등 10개 안팎의 대학이 50~60%의 투표율을 기록해, 동맹 휴업을 성사했을 뿐 서울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는 투표 자체가 무산되는 사태가 잇따랐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한총련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대학 총학생회에서는 아예 투표를 실시하지 않았다.

서울 지역 40개 대학 중 투표가 실시된 13개 대학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선거에서 서울 시내 대학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한총련 주류가 총학생회 선거에서 승리한 한양대의 경우도 투표율은 33.6%에 불과했다.

“총학생회 지도부 검거반 구성”

그러나 학생운동권의 이런 난맥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이미 지난해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8월 연세대 사태 이후 치러진 대학가 선거에서 한총련 주류라 할 수 있는 민족해방(NL) 계열 후보들이 여러 곳에서 낙선하고, 민중민주(PD)와 21세기 학생연대 등 그동안 한총련의 정책과 방향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후보들이 대거 당선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공안 당국의 움직임도 학기 초부터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명지대·덕성여대 등 서울 시내 일부 대학 총학생회장이 취임한 지 한 달도 못되어 검거되었다. 대학가에서는 이미 4월내 검거를 목표로 각 경찰서마다 총학생회 지도부 검거 전담반을 구성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학생운동 지도부가 체감하는 위기 지수도 예년과 다르다. 일부 대학의 경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관할 경찰서 형사들이 따라붙는가 하면, 보안과 형사들이 차량을 타고 학교 안에 나타나는 일까지 있다는 것이다. 한총련 대변인인 정영훈 한양대 총학생회장은 “이런 현상은 특히 충청도와 강원도 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원가 4월 태풍의 수위와 강도는 ‘전남대 집회’ 이후에나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총련은 4월4일부터 광주 전남대에서 정기 대의원대회를 갖는데, 여기에서 제 5기 의장을 선출하게 된다. 지난 3월19일 후보 등록을 마감한 5기 의장 선거에는 현재 임시의장인 전남대 강위원 총학생회장 외에도 지현찬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같은 민중민주 계열이면서도 한총련 개혁이 아니라 ‘제2 한총련’ 건설을 주장하는 부산대 백태현 총학생회장 등 3명이 입후보해 활발한 득표전을 전개하고 있다. 2차 동맹 휴업 성사될지 의문

특히 입후보 과정에서 부산대 백태현 총학생회장은 한총련 통일운동의 핵심 조직인 조국통일위원회를 해체하자고 주장하는 등 ‘급진적인’ 주장을 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게다가 전북 지역에서는 한총련의 간부 인선 방식에 반발해 후보 등록에 필요한 대의원 추천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해 한총련 주류를 곤경에 빠뜨리기까지 했다.

물론 투표권을 가진 한총련 1천7백여 대의원 분포로 보면 아직까지 주류인 민족해방 계열이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한총련의 한 핵심 관계자는, 한총련 주류인 민족해방 계열 대의원이 전체의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이어서 민중민주 계열 후보가 단일화했다면 선거 양상은 박빙의 접전이 되었으리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총련은 전국에서 단과대 학생회장 이상 모든 대의원이 집결하는 대의원대회를 계기로 정권 퇴진 투쟁을 강도 높게 전개한다는 전략을 세워놓았다. 또 대의원대회가 끝나자마자 명동성당 같은 장소에서 정권 퇴진을 목표로 하는 대규모 단식에 들어갈 계획도 갖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한보 청문회 정국이 절정에 달할 무렵에는 사회 단체와 연대해 대규모 민중 대회를 열어 열기를 고조시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한총련은 이 시기에 맞추어 2차 동맹 휴업을 벌일 계획이지만, 1차 동맹 휴업이 무산된 마당에 2차 동맹 휴업이 성사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결국 전남대 집회에서 구체적인 투쟁 방안을 어떻게 확정하느냐에 따라 한총련이 4월 정국에서 ‘태풍’이 될지 ‘미풍’에 그칠지 정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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