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버린 관정 = 물 오염 고속도로
  • 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2001.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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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때마다 앞다투어 개발, 전국 90만개…
해갈 뒤 방치, 농약에 무방비


가뭄 때문에 국토가 몸살을 앓자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관정(管井) 개발이 줄을 잇고 있다. 농민들이 양수기로 하천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고된 작업보다는 3∼4일이면 물을 끌어올릴 수 있는 관정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대목을 맞은 관정 개발 업체들은 물 관리에 대한 인식 없이 가뭄을 이용해 끼리끼리 장삿속을 챙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상자 기사 참조).




해마다 가뭄에 시달리는 전남 보성군 율어면 장동리의 한 산기슭에서도 지난 6월12일 수맥 찾기가 한창이었다. 대형 암반에 관정을 뚫는 작업 현장은 거대한 시추기가 뿜어내는 굉음과 흙먼지로 가득했다. 장동리 출신 박동균 군의원은 "극심한 가뭄 때문에 산자락의 밭작물과 논에 물을 댈 수 없을 지경이어서 군에 요청해 암반 관정을 뚫게 됐다"라고 말했다.


관정 파는 일만 20년째 하고 있다는 개발업자 김웅택씨(42)는 "너도나도 관정을 개발해 산기슭에서는 지하 60∼80m를 파내려가도 물을 만나기 어렵다. 몇 군데를 옮겨가며 깊이 100m 이상 파내려가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장동면 인근 칠음리의 경우, 1996년에 개발한 중형 관정을 사용하고 있지만 물이 부족해 대형 관정을 설치해 달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칠음리 문수식 이장(53)은 "해마다 가뭄 때문에 난리다. 간이 상수도까지 말라버려 대형 암반 관정을 하나 더 파야 물걱정 없이 농사 지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가뭄이 극심하다 보니 면사무소는 마을마다 중·대형 암반 관정을 파달라는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율어면 관계자는 "올해 암반 관정을 요청한 지역이 열두 군데나 됐다. 그러나 비용 때문에 두 곳 정도만 계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상습 한해 지역인 율어면에는 현재 크고 작은 관정이 3백17개가 있지만 올해 17개를 더 뚫을 예정이다. 보성군만 해도 올해 12개 읍면 지역에 대형 9공과 중형 30공, 소형 3백공이나 되는 관정을 개발할 계획이다.


농민들이 대형 암반 관정을 선호하는 까닭은 물 공급이 안정적인 데다 주민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현재 대형 암반 관정의 경우 평균 4천만원의 비용이 들지만 80%가 국비 지원이다. 하지만 대형 암반 관정이 매년 시추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처럼 가뭄이 극심할 때만 국고에서 지원해 준다. 중·소형 관정은 각각 6백만원과 100여만원이 소요되는데 자치단체와 개발 주민이 각각 40∼50%를 부담해야 한다. 지하수 개발업자들도 대형 관정을 선호한다. 소형 관정은 물을 찾기 어렵고 대형 관정이 이익을 더 많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심한 가뭄 때마다 안정적인 물 공급을 목적으로 설치된 관정은 정작 개발 뒤에는 관리 소홀로 방치되기 일쑤이다. 가뭄이 해소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의 소중함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관정 관리는 대형의 경우 이용 농가들이 자체 수리계를 조직해 전기료와 수리 비용을 부담하지만 중·소형의 경우 설치한 개인이 전기료를 부담하고 관리해야 한다.


전기료를 아끼려고 아예 사용하지 않는 관정도 많다. 영암군 시종면의 한 마을은 매달 3만∼4만 원 하는 전기료를 제때 내지 못해 단전되기도 했다. 관정 개발이 가뭄 극복을 위한 고육책이지만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뒤따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관정 관리 부실의 가장 큰 폐해는 지하수 오염이다. 물의 양이 줄어들면 농가에서 관을 뽑아버리거나 부실하게 막아놓는 소형 관정이 많아 농약이 스며드는 등 오염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농업용수 개발은 환경영향평가에서도 제외


도로가 개설되거나 경지정리지구에 편입되면 아무리 비싼 돈을 들여 만든 대형 관정이라도 바로 폐공 처리를 해야 하는데, 형식적으로 되는 경우가 많다. 폐공 처리 비용을 관정을 개발한 업체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온천과 달리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지하수 개발은 환경영향평가에서도 제외되고 있다. 하지만 온천수 깊이에 육박하는 지하 200m까지 파고 내려가는 대형 관정도 허다하다. 이성기 교수(조선대·환경공학과)는 "관정 관리를 잘못할 경우 관정은 오염물질이 들어갈 수 있는 고속도로로 전락한다"라고 경고했다. 환경단체들은 과도한 암반 관정 개발이 장기적으로는 지하수 고갈을 불러 지반층 붕괴 사고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농림부 농업용수과 관계자는 "환경단체들의 지하수 고갈 우려에 공감한다. 지나친 관정 개발을 지양해야 하지만 가뭄이 닥치면 농민들의 요구 때문에 매년 관정 개발에 예산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전국에 있는 관정은 모두 90여만개. 이 가운데 농업용 대형 관정은 2만3천개, 중·소형은 36만개에 이른다. 특히 대형 암반 관정은 먹는 샘물에 버금가는 양질의 지하수가 많다. 이 때문에 가뭄 때마다 암반 관정 개발에 의존하기보다는 안정적으로 하천물을 공급할 관로를 매설하거나 작은 저수지를 다수 확보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물 부족 국가'에 속하는 나라에서 농업용수로만 사용하기에는 암반 관정에서 쏟아져나오는 지하수가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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