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수호신, ‘열두 번째 선수’들
  • 대구·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2.06.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 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 한국 축구는 세계에 내세울 것이 정말 없었다. ‘월드컵 사상 최대 골 차(9골) 패배’ ‘월드컵 14전 무승’ 같은 치욕스러운 기록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난 6월4일 이후 한국 축구에게도 보여줄 거리가 생겼다. 폴란드전의 극적인 승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열광적이면서 질서 정연하고, 평화적이면서 천둥 같은 응원을 말한다.


천둥 같은 응원은 6월10일 미국전에서 한껏 빛을 발했다. 미군기지 반환 문제와 겨울 올림픽 편파 판정으로 반미 감정이 고조되어 있어, 자칫하면 한국과 미국 경기 응원에서 반미 구호가 판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구의 6만여 관중과 대도시 거리 관중 100만여 명은 그 부분에 대해 냉정했다.


관중들은 욕설 대신 선수들과 함께 뛰고 넘어지며 열띤 응원으로 승리를 염원했다. 비록 승리를 낚는 데 실패해 16강 전선에 먹구름이 끼었지만 응원은 4강, 아니 우승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패색이 짙던 후반 33분께 선수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주문을 걸어 극적인 무승부를 이루도록 도왔다. ‘미국-한국 전의 복병은 열두 번째 선수인 응원이 될지도 모른다’는 의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6월10일 오후 3시10분. 대구경기장에 들어서자 눈앞이 환했다. 관중석이 마치 거대한 딸기밭처럼 새빨갰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6월4일 부산 월드컵경기장 이상이었다. ‘대∼한민국 짜작 짝, 짝짝, 대∼한민국 짜작 짝, 짝짝!’이 본부석 왼쪽 골대 뒤에서 터져 나오자, 갑자기 거대한 북 속에 들어와 있는 듯 온몸이 쿵쿵 울려왔다.


본부석 왼쪽 골대 뒤에 자리 잡은 2천여 ‘붉은 악마’와, 그들 뒤에 걸린 ‘이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숨을 쉰다’ ‘우리는 축구로 하나가 된다’는 현수막이 보인다. 문득 로마 시대 검투장에 들어와 있는 듯, 비장함이 전해진다. 검투사(한국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지축을 울리는 함성이 폭발한다. ‘Be the reds’라고 쓰인 붉은 티셔츠를 입은 이상옥씨(60·안양)는 한국팀을 응원하기 위해 아들(31)과 함께 6월4일에 이어 또다시 휴가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홈 어드밴티지 덕에 “한국팀이 2-1로 이길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상대팀 흐름 끊는 고도 응원 전술도


3시30분. 드디어 우르스 마이어(43·스위스) 주심이 길게 호각을 불었다. 선수들이 탄탄한 몸을 빠르게 움직이며 여기저기에서 부딪치기 시작한다. 응원가 ‘오 필승 코리아’가 경기장을 덮는다. 설기현의 첫 슈팅이 빗나가자 비명 같은 탄성이 울려 퍼진다. 곧이어 선수들의 장딴지에 힘을 실어주는 응원가 ‘오∼ 오∼ 코리아’가 물결친다. 한국 선수들이 힘을 얻었는지 몸놀림이 민첩해진다.


전반 23분. 미국이 첫 골을 넣자, 조는 듯 앉아 있던 미국 응원단 ‘샘스 아미’가 잠에서 깨어나 열광한다. 붉은악마가 ‘괜찮아! 괜찮아!’를 연발한다. 미국 선수들이 공을 돌리자 야유가 터져 나온다. 관중들은 미국 선수들의 움직임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야유와 함성을 질렀다. 전반 38분 마침내 한국팀이 절호의 찬스를 맞았다. 페널티킥을 얻어낸 것이다. 화산이 터지듯 환호성이 솟구친다. 아, 아, 그러나 이을용 선수의 실축. 관중들의 함성이 거품처럼 사그라들었다.


후반전. 붉은악마가 고도의 응원 전술을 폈다. 한국팀이 공을 잡으면 생동감을 주기 위해 빠른 템포로 응원을 하고, 미국 팀이 공을 잡으면 속도감을 떨어뜨리기 위해 야유와 함께 느슨한 응원을 펼친다. ‘대∼한민국, 쿵짜작, 쿵짝!, 대∼한민국 쿵짜작, 쿵짝!’


그 시각 서울 시청앞과 대학로·여의도·잠실 경기장, 그리고 대구경기장 밖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100만이 넘는 인파가 한꺼번에 거리로 나온 것은 1987년 6·10 민중 항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안에 섞여 있는 30∼40대들은 아마 기억 속의 ‘독재 타도’ 호헌 철폐’ 같은 그 날의 함성과 웅성거림을 들었을 것이다. 언뜻언뜻 전광판 화면을 스치는 응원단의 모습에서 광기가 느껴진다. 폴란드 예지 엥겔 감독이 “가장 두려운 존재는 열두 번째 선수였다”라고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닌 듯싶다.


고동우 교수(경주대·여가 심리학)에 따르면, 사람들이 여가를 통해 얻는 즐거움은 몰입 수준에 따라 네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보기·가지기·하기·되기 단계가 그것이다(<중앙일보> 5월28일자). 고교수에 따르면, 그동안 한국 축구 관중은 단순히 보는 수준(보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이 그 수준을 두세 단계 상승시켰다. 가지기(축구공·축구화 같은 축구 용품을 갖고 싶어하고, 좋아하는 선수나 팀이 생기는 단계)를 거쳐, 하기(취미로 직접 축구를 하거나, 응원을 통해 재미를 맛보는 단계)나 되기(자신을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팀원으로 여기는 단계. 경기에 지면 마치 자기가 진 것처럼 느껴진다)에 접근했다는 것이다.





“선수들 투혼 보며 카타르시스 느꼈다”


후반 33분 드디어 기회가 왔다. 안정환의 헤딩슛이 미국 골네트를 흔들었다. 6만여 관중이 불에 덴 듯 일제히 퉁겨 오른다. 소낙비 같은 함성이 쏟아지고, 경기장 안에 흥분과 감격이 물결친다. 안정환 선수가 쇼트 트랙 선수 포즈로 세리머니를 취해 웃음을 자아낸다. 관중석에 모처럼 웃음이 번진다. 한데 엉킨 선수들이 제 위치로 돌아갈 때까지 박수 세례가 이어진다.


신이 나서 붉은악마를 따라서 팔을 흔들고, 검지를 펴고 공중을 찔러 본다. 반복해 호흡을 맞추자 어깨가 절로 들썩인다. 발도 구른다. 돌아보니 모두가 그렇게 신이 났다. 한민족처럼 집단으로 응원하는 민족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학자들은 그 원인을 ‘방어적 애국심’에서 찾는다. 어려운 일을 많이 겪으면서 단결하는 법이 몸에 배었다는 것이다. 함인희 교수(이화여대·사회학)는 이웃과 협동하고 여러 가지를 나누던 농경 문화 때문으로 돌린다. 문화 평론가 이영미씨는 학교 조회나 군대 같은 집단 교육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고리타분한 한국의 응원 문화를 바꾼 것은 1997년 여름에 출범한 붉은악마였다. 붉은악마는 즐기는 응원 문화를 통해 민족·국가 이데올로기가 강한 군가나 치어리더 같은 문화를 축구장에서 추방했다(23쪽 상자 기사 참조). 그 전에 한국인에게 축구는 골을 넣고 이길 때에만 재미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승패와 상관없이 경기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장영 교수(국민대·사회학과)에 따르면, 한 개인은 집단 행동에 참여하면 대규모 군중의 웅성거림, 시끄러운 음악 등의 주변 환경에 의해 마음이 고조되어, 어떤 주장이나 제안에 쉽게 반응한다(<월드컵 신화와 현실>). 즉 누구나 적극 나서면 얼마든지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박빙의 90분 경기가 끝났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무승부를 아쉬워하는 선수들에게 두 손을 쳐들고 박수, 박수를 보낸다. 기쁨에 눈물짓는 사람도 보이고, 태극기를 거듭 좌우로 흔드는 사람도 보인다. 아쉬움에 두 손을 늘어뜨린 채 뿌연 허공을 올려다보는 사람도 보인다. 비록 무승부였지만 오늘 달구벌에 모인 관중은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과 승부의 세계를 통해 천국과 지옥을 경험했다. 심리학자들은 축구장을 찾은 사람들은 가정이나 직장에서 도무지 맛보지 못하는 짜릿한 유대감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서울에서 온 유승완씨(21·휴학생)는 “정말 맘껏 응원했다. 그리고 여러 사람과 모처럼 연대감을 느끼며 즐거웠다. 선수들의 땀과 투혼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천둥 같은 응원은 오늘로 끝난 것이 아니다. 6월14일 포르투갈전이 열리는 인천 월드컵경기장에서 좀더 빛을 발할 것이다. 그리고 화산 같은 함성과 폭풍 같은 성원은 그 이상의 염원도 이루어낼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