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향한 `질풍노도`
  • 김은남·이숙이 기자 ()
  • 승인 2004.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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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끝나자 친노 단체·노동계·방송사 노조까지 속속 ‘연합군’에 가세하면서 안티조선 운동의 불길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의 홈페이지가 쑥대밭이 된 것은 조선일보에 인터뷰 기사가 실린 바로 그날이었다. 지난 4월22일자 조선일보는 ‘추경예산 내달 편성-민생·정치 개혁안 47개 우선 처리’라는 제목 아래 정세균 의장과의 단독 인터뷰를 실었다.

기사가 나가자마자 정의장 홈페이지는 들끓었다. 22일 당일에만 정의장 홈페이지에는 항의 글이 4백 건 넘게 폭주했다. 정의장 지역구 사무실(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에도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덕분에 정의장은 사이버 세계에서 난데없이 유명 인사가 되었다. 4월23일 현재 포털 사이트 ‘야후’의 정치인 검색어 순위에서 정의장 검색 순위는 71위에서 29위로, 42계단이나 껑충 뛰어올랐다.

그렇다면 정세균 의장은 무엇 때문에 이같은 집중 포화를 맞았던 것일까? 이유는 한 가지.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당원과 네티즌 들은 ‘지지자를 물로 보나’(S) ‘제국일보(친일 행적에 빗대 조선일보를 일컫는 네티즌들의 은어)랑 인터뷰하는 인간들 손 좀 봐줘야 한다’(지존무상)고 정의장을 비난했다. 심지어 ‘읍참마속으로 정세균을 당직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강경 주장까지 등장했다.
안티조선 운동의 선구자 격인 배우 명계남씨 또한 인터넷에 글을 올려 정의장에게 사과 및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명씨는 이 글에서 ‘정 모르겠으면 24시간만 내달라. 그러면 제국일보가 어떤 신문인지 실체를 낱낱이 알도록 설명해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네티즌들의 이같은 격렬한 반응에 대해 정의장측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정현목 보좌관은 “그날 조선일보가 갑자기 연락하고 들이닥쳐서 별 의식 안하고 인터뷰를 했다”라고 밝혔다. 정보좌관은 “정책위 의장은 당의 정책을 국민에게 잘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 과정에서 특정 매체만 인터뷰를 거부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본다”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그러나 정의장의 이같은 태도는 네티즌의 반발에 불을 질렀을 뿐이다. 네티즌들이 이번 사건을 놓고 과민에 가까우리만큼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정의장이 일종의 시범 사례였기 때문이다.

4·15 총선 이후 개혁 성향의 네티즌 사이에서는 이름하여 ‘조선일보 방법하기’가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다(‘방법하기’란 ‘손봐 주기’ 내지는 ‘응징하기’로 해석될 만한 네티즌 은어이다). 실제로 총선 개표 방송이 진행되던 4월15일 대표적인 친노(親盧) 논객 사이트인 ‘서프라이즈’(www.seoprise.com) 대표 서영석씨는 ‘이젠 언론 개혁이다. 조선일보와 전면전을 선포한다’는 포고문을 서프라이즈에 올렸다.

이같은 포고문은 오프라인 진영에서도 거의 동시에 선포되었다. 2004총선미디어감시국민연대·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노련) 등 10개 시민·사회 단체는 4월21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편파·허위·왜곡 선거보도 규탄 및 언론개혁 촉구대회’를 갖고 ‘조선일보의 ‘한나라당 구하기’ 편파 왜곡 보도를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이제는 언론 개혁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이들은 총선이 끝난 직후인 4월19일부터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사 앞에서 안티조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4월23일 현재까지 시위 참가자는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 명계남씨,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등. 이 중 첫날 시위에 나선 최민희 사무총장은 “조선일보의 영향력이 조선일보에 걸맞게 축소될 때까지 1인 시위가 계속될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안티조선 운동이 벌어진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안티조선의 대오가 급속도로 확장되고, 전투력 또한 역대 최고조로 상승해 있는 것이 이번 총선을 거치며 나타난 새로운 특징이다. 64개 시민단체로 구성되어 안티조선 운동을 이끌어온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외에 친노 단체, 노동계, 방송사 노조 등 신진 세력이 대거 가세하면서 안티조선 진영은 명실상부한 연합군 대오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들이 연합할 조짐은 이미 총선 전에 포착되었다. 가장 중요한 계기는 역시 탄핵이었다. 시민단체가 <탄핵의 배후에는 조선일보가 있었다>(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가 배포한 소책자 제목)며 조선일보가 내보낸 탄핵 관련 보도를 규탄하는 동안 KBS·MBC 노조는 조선일보와 연일 국지전을 벌였다. 보도뿐 아니라 <시사매거진 2580>(MBC) 등 방송의 시사·교양 프로그램까지 조선일보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으면서 PD연합회가 안티조선 진영에 합류한 것 또한 변화라면 변화였다. 그 전만 해도 PD연합회는 안티조선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노동계 또한 민주노동당에 대한 조선일보 보도가 ‘진보 진영 흠집 내기’라며, 17대 개원 이후 언론 개혁에 적극 가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이들 안티조선 연합군의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친노 단체 및 언론 매체 들이다. 게시판 초기 화면에 ‘조선일보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노라!’는 문구를 띄워놓은 서프라이즈는 연일 조선일보를 맹공하고 있다. 이들의 기본 인식은 ‘조선일보는 상생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일간지 정치부장 출신이기도 한 서영석 대표는 이렇게 잘라말했다. “나는 조선일보를 언론으로 인정할 수 없다.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닌 정치 집단이다.”
2002년 대선 직후 이른바 살생부 파동을 일으켰던 네티즌 왕현웅씨(아이디 ‘피투성이’) 또한 “한나라당은 피상적으로 눈에 보이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중략) 진짜 벙커에 숨어서 지휘·감독하고 작전을 통제하는 수구 세력의 적장, 본체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며 ‘본체=조선일보 제거론’을 유포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 94명을 도마에 올렸던 대선 직후와 달리 이번에는 그의 살생부에 조선일보 딱 하나가 올라 있는 셈이다.

노사모에서 분화한 친노 단체인 ‘생활정치네트워크 국민의힘’(www.cybercorea.org)은 이른바 ‘조선일보 5적’ 시리즈를 사이트 전면에 게시하며 조선일보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꼽는 5적은 강천석(논설주간 겸 이사) 김대중(부사장) 양상훈(논설위원) 문갑식(사회부 차장대우) 진성호(문화부 차장대우) 등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논객 5인. 이들 5인방이 올 초부터 ‘공짜 점심은 끝났다’(양상훈) ‘체제가 탄압받는 시대’(김대중) 같은 칼럼을 게재함으로써 탄핵 분위기를 조장해 왔다고 국민의힘은 주장하고 있다.

4월24~25일 충남 조치원 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린 창립 1주년 기념대회에서 국민의힘은 안티조선을 자신들의 당면 행동 강령으로 선포했다. 행사 도중 <너흰 아니야>라는 노래가 울려퍼지는 동안, 중앙 무대에 나란히 등장한 한나라당 깃발과 조선일보 깃발은 속칭 ‘뿅 망치’ 세례를 쉴새없이 받아야 했다.

무대에 오른 초청 인사 또한 안티조선 메시지를 거침없이 유포했다. 총선 기간에 자신을 헌신적으로 도와준 국민의힘 출신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행사에 참석했다는 이 철 전 의원은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두 가지 약속을 드리겠다. 첫째, 조선일보에 빌붙지 않겠다. 둘째, 조선일보를 활용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해 열광적인 박수 갈채를 받았다. 부산 연제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시인 노혜경씨는 “앞으로도 모든 ‘조선일보적’인 것들과 싸워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행사에서는 조선일보 광고주 불매 운동, 조선일보 기고자 신상 공개 등 조선일보를 ‘방법’하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 운동’이라고도 불리는 ‘조선일보 영향력 축소 운동’은 요즘 다른 안티조선 진영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dismalist’라는 아이디를 쓰는 서프라이즈의 한 독자는 ‘조선일보 독자 망신주기’라는 기발한 운동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가게 주인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직도 조선일보 보세요?”라고 망신을 주는 식으로, 생활 주변에서 ‘보병전’을 벌이면 1년 안에 조선일보를 ‘퇴치’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나 안티조선 연합군의 이런 충천한 의지에 비추어 열린우리당의 대응은 상대적으로 미온적인 편이다. 지난 4월21일 신기남 의원이 17대 국회 개원 직후 언론개혁특위(가칭)를 구성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당 지도부 사이에서는 아직 소수 의견이다. 그보다는 일단 민생 안정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동영 의장은 4월23일 기자 간담회에서 “(모든 일에) 우선 순위가 있다. 정간법·국가보안법 개정 문제 등은 차차 논의하자”라는 입장을 밝혔다.

당내 일각에서는 신의원이 ‘혼자 튀려고 언론 개혁을 치고 나왔다’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신의원의 한 측근은 “그간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이 문제를 몇 번 제기했는데도 다들 ‘경제가 먼저다’라는 식으로 회피하려 들었다. 그래서 언론을 상대로 치고 나가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흥미있는 것은, 당내에서 언론 개혁을 두고 이런 상반된 흐름이 형성되면서 조선일보와 안티조선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감지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23일자 조선일보는 이른바 ‘정동영 사단’을 우호적으로 해부하는 기사를 정치면 전면에 배치했다. 반면 서프라이즈는 ‘조선일보와 대결하는 사람이 차기 주자’라는 식으로 정의장을 압박하고 나섰다. 정의장의 유화적인 언론관이야말로 ‘정의장에게 부족한 2%’라고 비판하는 이들 중 일부는 ‘오는 전당대회에서 신기남을 화끈하게 밀어주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정세균 파동’은 이와 같은 여당 기류에 대한 안티조선 진영의 불만이 폭발한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총선 직후 조선일보에 여권 고위 관계자 발(發)로 ‘1당에 총리·각료 추천권 준다’는 보도가 실리면서 이들의 심기는 가뜩이나 불편해 있던 차였다. “안티조선 성향의 네티즌들에게 조선일보와 인터뷰하거나 정보를 흘리는 행위는 ‘적을 이롭게 하는’ 스파이 짓으로 간주된다. 조선일보에 습관적으로 ‘부역’하는 인사들 때문에 조선일보의 영향력이 과다 평가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서영석 대표는 설명했다.

한 네티즌(아자)이 표현한 대로 정세균 의장을 ‘일벌백계로 눈물이 쏙 빠지게 방법한’ 이들은 내친 김에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조선일보 상대하지 않기 운동’을 벌일 계획도 세우고 있다. 조만간 ‘라디오21’을 안티조선 전진 기지로 재편할 계획이라는 김갑수씨(‘라디오21’ 설립자, 정동영 의장 비서실 차장)는 “이쪽 의원들이 정보를 주지 않으면 조선일보는 결국 한나라당 기관지로 전락하지 않겠느냐”라며, 이 운동을 적극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마녀사냥식 몰이는 안된다” 비판도

당선자들이 이같은 움직임에 어느 정도 응할지는 알 수 없다. 국민의힘 초대 대표인 정청래 당선자(서울 마포 을)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등원 이후에도 안티조선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왼쪽 상자 기사 참조). 반면 안티조선을 표방해 온 김재홍 당선자(비례대표, 경기대 교수)는 “안티조선의 기조를 지키되 취재 현장에 나선 조·중·동 기자를 차별하지는 않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총선 이후 안티조선 진영의 운동 방식을 놓고 일각에서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17대 국회에서 정기간행물법 개정 등을 다시금 논의하게 될 텐데 미리부터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로 특정 언론을 고립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제도 개혁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최민희 사무총장은 지적한다. 일반의 의식 개혁을 위해서도 안티조선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점하고 있을 때 개혁 입법을 해치우도록 여당을 압박해야 한다는 계산 또한 이들을 분주하게 만들고 있다.

조희연 교수(성공회대·정치학)는 “한때 보수 세력의 전면에 나와 있던 군부를 대체해 현재는 미디어가 보수 세력의 전면에 나서 있는 상황이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그것이 언론의 본령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같은 현실에서 안티조선 운동은 언론의 본령을 되찾기 위한 각성제가 될 수도 있지만,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오발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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