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남성끼리 연애 그린 지상파 드라마 인기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2.10 15:37
  • 호수 15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BL 드라마? No! 아재들의 로맨스!…유행어 대상 후보에도 올라

11월7일 일본에선 ‘2018년 신조어·유행어 대상’ 후보 30개가 발표됐다. 1984년 창설된 ‘신조어·유행어 대상’은 1년 동안 생겨난 말들 중에서 빈번하게 대중의 입에 오르내린 신조어나 유행어에 주는 상이다. 대한민국의 2018년을 뜨겁게 달궜던 미투 운동(#MeToo)도 후보에 올랐으며,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인기를 끈 일본 여자 컬링팀의 간식시간을 표현하는 ‘모구모구타임’도 후보에 포함됐다.

드라마 한 편의 제목도 후보에 올랐다.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TV아사히에서 방영된 7부작 드라마 《아재’s 러브(おっさんずラブ)》가 그 주인공이다. 제목만 놓고 보면 ‘아재 개그’를 늘어놓는 중년남성의 사랑 이야기일 것만 같다. 부동산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33살의 남성 회사원 하루타 소이치가 주인공이니 제목에서 유추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예상을 벗어난 무언가가 있다. 이 드라마는 그가 회사 상사와 후배로부터 동시에 사랑 고백을 받으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려낸다. 회사 상사와 후배는 모두 ‘남자’다.  

 

지난 4월 일본에서 방영된 TV아사히 드라마 《아재’s 러브(おっさんずラブ)》는 SNS 등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 《おっさんずラブ》 트위터

 

주인공 하루타는 부동산회사에서 일하며 고객들이 만족할 만한 집을 찾아주는 데 열심인, 모두에게 ‘사람 좋다’는 평가를 받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하지만 이성에게는 인기가 없다. 미팅에도 참여하는 등 운명적인 사랑을 찾기 위해 노력해 보지만 최근 5년 동안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하우스셰어를 하고 있던 회사 후배와 유부남 상사가 고백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코믹하게 그려낸 드라마가 《아재’s 러브》다.

토요일 심야시간대에 방영돼 평균 4%로,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드라마에 비해서는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SNS 등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주인공에게 고백한 상사, 구로사와 무사시 부장이라는 극 중 인물이 운영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는 44만 명이 넘을 정도다. 또 지난 10월말 열린 ‘도쿄 드라마 어워즈 2018’에서는 연속드라마 부문 그랑프리와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이 드라마를 주제로 한 전시회가 9월에 도쿄에서 열렸고 오사카와 나고야에서도 연이어 개최됐다. 11월16일부터 다시 도쿄에서 개최돼 그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드라마를 이끈 세 명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인 기지마 사리(貴島彩理)는 “보고 난 뒤 연애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한다. 세탁·요리 등 가사에는 소질이 전혀 없던 그녀가 하루는 ‘여자’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갈아입을 옷에 밥까지 준비해 주는 것은 물론 아침에 깨워주기까지 했단다. 그 순간 그녀에게 든 생각은 ‘이 친구와 결혼하면 왜 안 되는 걸까. 동성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멋진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드라마 기획의 출발점이었다. 어디까지나 동성의 사랑이 아니라 ‘일하는 요즘 남녀의 연애관’ ‘좋아한다는 감정, 결혼하고 싶다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그리는 것이 목표였다.

각본을 담당한 도쿠오 고지도 이와 같은 기획 의도에 따라 시나리오를 썼다. 남성끼리의 동성애를 그리기보다 남녀 연애와 다르지 않은 연애드라마를 목표로 했다. 흔히 동성애를 그린 드라마에서 다뤄지는 성 소수자의 고민과 갈등을 이 드라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데 이는 의도한 것과 달리 시청자를 상처 입힐 수 있는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동성 커플’이라서 생기는 코믹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순정만화 같은 설정 속에서 현실감 넘치는 ‘아재’의 사랑을 웃음 포인트로 잡았다.

 

성 소수자 문제는 일본 사회에서도 민감한 사안이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성 소수자 퍼레이드 ⓒ EPA 연합


日, 성 소수자 문제 여전히 민감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성적 소수자)는 일본 사회에서도 민감한 문제다. 7월18일 발간된 월간지 ‘신초(新潮)45’ 8월호에는 ‘LGBT 지원, 그 정도가 심하다’라는 제목의 스기타 미오 중의원(자민당) 기고문이 실렸다. 이 기고문 속에서 스기타 의원은 “동성 커플은 아이를 만들지 않는다. 따라서 ‘생산성’이 없다. 여기에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가”라고 주장했다. 스기타 의원이 말하는 ‘세금 투입’은 성 소수자를 위한 사회적 제도를 정비하는 데 드는 비용을 의미한다. 차별을 조장하고 인권을 무시한 이 기고문은 거센 비판을 받았다. 7월27일에는 이례적으로 스기타 의원에 항의하며 사퇴를 요구하는 5000명 규모의 집회도 열렸다.

차별과 편견 가득한 혐오적 발언에 사회적 연대로 맞서는 분위기도 조성돼 있지만, 여전히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일본 내에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재’s 러브》에는 차별이 없다. 스기타 의원이나 그 옹호자들과 같은 차별과 편견의 차가운 눈을 가진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기획 의도대로 남자들끼리의 사랑을 여느 연애드라마와 다르지 않게 그린 것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이라 하겠다.

또 BL(Boys Love·남자와 남자의 사랑을 소재로 한 만화·소설 등) 팬 등 특정 집단을 염두에 두지 않고 요즘의 결혼하기 어려워진 일하는 남녀라는 큰 테마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감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인기의 한 요인이다. 그동안 BL이 여성 팬 중심으로 인기를 얻은 데 비해 《아재’s 사랑》은 남성 잡지에서도 화제가 됐다. 일을 하면서 여자친구, 남자친구를 사귀고 결혼까지 하는 것이 어려워진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주인공 하루타가 맞닥뜨린 상황은 자신이 고민하고 있던 현실이기도 하고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오는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화제의 드라마니만큼 속편 제작을 희망하는 목소리도 높다.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차별과 편견 없는 따뜻한 시선으로 가득 찬 사회를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