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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독립운동가 도운 후세 다쓰지 변호사 추모제

“약한 자 도우려 했던 후세의 정신 다시 한번”

이인자 일본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24(Mon) 10:01:00 | 15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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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9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변호사로 유명한 후세 다쓰지(布施辰治)의 사후 65년을 추모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후세 변호사는 1880년에 이시노마키(石卷)에서 중농 정도의 집안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장남이 아니기에 일찍이 도쿄로 나가 공부를 해 법조인이 됐습니다. 제가 몇 차례 소개했지만 이시노마키는 동일본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고 아직도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요. 8년이나 이 지역을 조사하고 있는 저는 그에 대한 추모행사가 있다니 반가운 마음으로 참석했습니다.


이날 이루어진 추모행사로는 비전제(碑前祭)와 ‘후세 다쓰지-향토의 위인 이시노마키 출신의 인권변호사’라는 제목의 연극공연이 있었습니다. 저는 두 행사 모두 참석했습니다. 또한 며칠 후 두 행사 때 알게 된 후손 두 분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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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


후세 변호사의 행적에 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분도 많을 것 같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주로 약한 자를 구하는 인권변호사로 지칭되고 있는 그의 활동은 활발했고 인물을 짐작할 만한 일화도 많습니다. 저는 그가 태어난 지 138년이 지나고 죽은 지 65년이 지난 지금, 그의 고향에서 그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후손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기념비는 생가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에 설치돼 있었습니다. 그 규모가 커서 놀랐습니다. 작은 공원 위쪽에 정확한 크기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가로 2m, 세로 1m 남짓의 검은 석판에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生きべくんば民衆とともに、死すべくんば民衆のために)’라는 말이 박력 있는 필치로 새겨져 있습니다. 크기도 내용도 그리고 석판 위쪽에 그려진 후세의 법복 모습도 기념비의 힘을 더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념비 앞에서 이루어진 제사는 조촐했습니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려 보통 때도 한적할 것 같은 공원이 더 가라앉아 보였습니다. 일찍부터 비석 초석 부분에 ‘후세 다쓰지 사후 65년 비전제’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화이트보드에 식순을 인쇄해 붙여 놨습니다. 준비위원은 미야기(宮城)현 공산당 의원이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센다이 총영사관에서 부총영사가 참석해 추도사를 읽었습니다. 미야기현 지사, 이시노마키시 시장은 대리인에게 추도문을 전달했습니다. 참석한 사람은 대부분 65세 이상이 많았고 후세의 고향 자손이 두 분 보였습니다. 제사를 위해 모인 30여 명은 조촐한 식을 마치고 바로 흩어졌습니다. 


후에 자료를 찾아보니 기념비가 세워진 1991년 11월에는 만찬에 초대된 사람만 200여 명이나 됐다고 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기념비는 이들의 기부금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정당과 상관없이 시의원 전원이 참석했습니다. 1991년이면 일본은 버블경제가 아직 이어지고 있었고, 이런 호경기 시절에 기부금이 모인 것입니다.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돼서인지 정치적으로 좌우를 가르며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후세를 높이 평가하고 지원했던 재일동포들도 후원하고 자리를 함께했음이 확인됐습니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2018년, 그를 기리고 추모하는 자리는 세월의 흐름과 시절의 변화를 느끼게 했습니다. 지금의 사회를 걱정스럽게 보고 후세의 정신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싶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들의 추모사가 그러했습니다. 


“약한 자를 도우려 했던 후세의 정신을 다시 한번.”(사회운동가)


“후세 다쓰지의 숭고한 정신을 이정표로 삼아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 나아갈 것을 약속합니다.”(센다이 총영사관 대표) 


“후세 다쓰지 자료관을 이시노마키 문화센터에 설치할 수 있길 바랍니다.”(인권변호사 대표)


오전 행사를 마치고 오후에 있을 연극공연도 관객이 적겠다고 예상했습니다. 이번 연극은 저에게도 좀 특별한 공연이었기에 걱정이 됐습니다. 아마추어 연극인들이 1시간30분 동안 후세 다쓰지의 행적을 그려 무대에 올린 것입니다. 저는 후세 다쓰지 역을 맡은 산조 노부유키(三條信幸·67)씨를 통해 이날의 모든 행사를 알았지요. 그는 제가 재해지 연구로 8년간 다니고 있는 이시노마키 오카와(大川) 주민이었습니다. 조사협조자로도 도움을 받았는데 한국과 인연이 깊은 후세 다쓰지를 기리는 연극의 주인공을 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작 시간보다 1시간 남짓 일찍 공연장에 도착했습니다. 300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시설인데 차가 많아 주차하는 데 고생할 정도였습니다. 


“다른 행사가 겹쳐 있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홀에 들어선 저는 놀랐습니다. 오전의 행사와 대조적으로 정원 400명의 홀이 빈자리가 듬성듬성 보일 뿐입니다. 또 한 가지 놀란 것은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손을 들어 인사를 나누게 된 점입니다. 오카와 출신 마을 분들입니다. 


오전에 기념비 앞에서 행사를 주도했던 분들은 대부분 공연실행위원으로 분주하게 손님맞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념비 앞에서보다 눈에 보일 정도로 활기 있는 모습입니다. 1시간30분 동안 제국주의적 사회 분위기 안에서 약한 사람(조선인, 노동자, 공산당원 등)을 위해 투쟁하듯 살아온 후세 다쓰지의 모습이 전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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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소신 달라도 선조 추모 행사 참석


행사 후 며칠 지나 후세의 생가를 찾아 후손인 후세 도키치(布施東吉·71)씨와 오타 다쿠오(太田卓勇·75)씨를 만났습니다. 비교적 넓고 큰 농가 저택이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 정치가의 간판이 크게 걸려 있었습니다. 공산당 의원일 거라 생각했는데 제 예상과 달리 자민당 의원 두 명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70세가 넘은 그들은 족보로 따지면 직계 방계로 후세 변호사가 4대 위의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렇게 아랫세대가 되니 후세에 관한 기억도 부모에게 들은 이야기뿐이었습니다. 후세는 도쿄에서 이시노마키 본가에 돌아오면 지역 특산물인 참마를 갈아 만든 덮밥을 열 사발 정도 먹었다고 합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많은 인사들이 밤늦게까지 모여들었고 마을 잔치가 치러지듯이 환영했다는 말을 부모님께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그가 씨름을 좋아하기에 흙을 모아 도효(土俵·씨름판)를 만들어 마을에서 씨름 대회가 시작되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또한 후세가 마을 초등학교에 가서 후배 모두에게 연필을 나눠 줬다는 기억을 아직 갖고 있는 80대 주민이 있다고 합니다. 4대나 떨어진 후손들에게는 군국주의 일본과 맞서 목숨 걸고 투쟁했던 그의 모습은 희미해지고 도시에서 성공한 변호사가 고향을 찾았을 때의 풋풋한 모습이 확연하게 남아 있는 듯 보였습니다. 


“나는 자민당 의원을 후원하지만 후세를 가장 열심히 받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공산당 의원들이지요. 그들이 나쁜 뜻으로 그를 추모하는 것이 아니니 그들이 하는 행사에 저를 부르면 참석해요. 선조를 기려주니 좋은 일이지요.”


우리가 위인이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위업은 살아 있을 때의 행적들입니다. 위인이 사라진 후의 위업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한·일 관계가 녹록지 못한 이 시절에는 그의 업적을 돌파구로 삼으려는 모색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9월9일의 두 행사로 여실히 드러난 것은, 그런 사상이나 계몽적인 의식으로 사람들은 모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삶은 리얼하기에 내가 아끼고 싶은 사람, 그리고 관계가 있는 사람이 행하는 일을 응원하기 위해 움직이는 듯합니다. 위인은 그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소재거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다른 사람들이 선조를 추모하는 행사를 해도 말리는 일도 없고 오히려 함께 참석해 자리를 채웁니다. 이런 몇 가지를 들어 일본 풍토를 논하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만, 그들은 다양한 생각들을 장면에 따라 의미를 바꿔가면서 자신들 안에 집어넣는 게 익숙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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