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권력을 꿈꾼 기무사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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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절대권력 절대부패 기무사, 발전적 해체만이 답이다

 

2018년 우리는 또 하나의 믿을 수 없는 뉴스에 직면하고 말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을 앞둔 상황에서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 검토 세부자료는 21개 항목에 67쪽으로 내용 자체도 방대할 뿐만 아니라 세밀한 실행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1980년 역사의 발자취에 용서받을수 없는 죄를 지었던 보안사가 38년 후 기무사로 이름만 바뀐 채 계엄이라는 망령으로 되살아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기각을 전제로 계엄 실행을 계획했다고 하지만 그 문서를 보면 대한민국 정치군인들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에서 군인들이 계엄 또는 쿠데타를 음모한 경우는 드물다. 주로 민주주의가 덜 정립되어 있고 경제적으로 성장동력이 부족한 국가들에서 군인들은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한다는 미명아래 자신들의 총칼로 국민들을 짓밟고 정권을 찬탈(簒奪)해왔다. 이번 계엄 검토 자료에서 정치군인들은 국민들의 인권을 유린하기 위해 기계화사단, 기갑여단, 특전사를 동원하고 국민들의 촛불집회를 막기 위해 전차와 장갑차를 동원하겠다는 음모를 꾸몄다. 그들에게 군인으로서의 소명의식과 임무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7월25일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국군기무사령부의 주요 부처를 압수 수색해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과천 국군기무사령부 ⓒ 연합뉴스

 

이번 계엄 실행 계획은 단순 문서라고하기엔 세 가지 차원에서 매우 중대한 그리고 묵과할 수 없는 죄를 짓고 있다. 첫째,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권한을 철저히 무력화하기 위한 실행 계획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초헌법적 계엄은 부조리한 권력자들에 의해 악용될 수 있기에 국회는 이를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번 기무사 문건을 보면 야당 의원들의 표결을 방해하기 위해 이들을 불법 구금해 표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방침이 포함돼 있다. 헌법과 정상적인 국가 체계를 모두 전복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계엄 실행 문건에 언론을 통제하고 관리하겠다는 방침이 세부적으로 담겨 있다. 언론의 사회화 기능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음모를 1980년에 이어 다시 한 번 정치군인들은 꿈꿨다. 1980년 11월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이끈 신군부 세력이 언론 통폐합이라는 미명 아래 자신들에게 저항한 언론인 700명을 해직시켰고 유력 월간지 등을 폐간 조치한 어두운 역사를 기무사는 갖고 있다. 주요 언론 매체를 통제하기 위해 보도검열단을 바탕으로 신문 가판, 방송통신 원고, 간행물 원본을 검열할 계획이었으니 북한 수령체제 못지않은 언론 및 여론 조성 탄압 음모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계엄의 공식적 부서인 합동참모본부와 계엄사령관이 돼야 할 합참의장을 건너뛰고 서열 2위인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 군인으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하극상(下剋上)을 계획했다는 점이다. 1979년 10.26 이후 신군부가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적으로 체포하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상황을 연상케 한다.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과 합동참모본부와의 상의 없이 기무사가 하극상을 토대로 계엄을 실제 실행했다면 이들의 하극상이 과연 어디까지 벌어질지 예측조차 안 되는 대목이다.

 

대한민국에서 국방부 이른바 군부대에 대한 불신은 극도로 팽배한 것이 사실이다. 군대에서 불의의 사고가 날 때마다 명확한 원인 조사 없이 유가족에게 일방적으로 사건을 통보하는 경우가 잦았고 방산비리가 터질 때마다 정치군인들의 타락은 수많은 언론을 통해 그 진상이 낱낱이 밝혀진 바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 장성들의 사고방식과 군부대 운영원리는 개선되지 않고 1980년에 머물러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향수를 꿈꾸는 정치군인들이 탄핵 기각이라는 기회를 통해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수백만 국민을 향해 총칼을 휘두를 음모를 꾸민 것이다.

 

2016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계엄령까지 준비하고 있기에 하루 빨리 퇴진시켜야 한다”고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주장했을 때만 해도 많은 국민들은 그 말을 선뜻 믿지 않았다. 군사독재시절, 국민을 탄압하고 무력으로 짓밟기 위해 사용되었던 ‘계엄’이라는 수단은 용도 폐기됐고 인터넷을 활용한 정보의 확산으로 무자비한 계엄 실행도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추미애 대표의 당시 발언에 관해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매우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곧바로 반박했으나 실제로 루머는 2년 후 결국 사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계엄을 계획한 무능하고 위험한 정치군인들을 확실히 발본색원(拔本塞源), 준엄한 단죄를 내려야 하는 이유이다. 

 

기무사로 통칭되는 국군기무사령부의 역할은 군사보안지원, 군 방첩 및 첩보수집 등에 한정돼 있다. 특히, 군내 간첩활동에 관련되지 않는 한 민간인을 사찰할 권리가 기무사에게는 없다. 보안사에서 1991년 기무사로 이름이 바뀐 이후 한동안 국민들의 뇌리에서 잊힌 기무사는 2008년 다시 민간인 사찰을 노골화하면서 어두운 그림자를 띄우기 시작했다. 최근 드러난 세월호 유가족의 성향 분류 및 사찰 그리고 극우단체 맞불집회까지 부패한 행위 뒤에는 모두 기무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민간인 사찰을 통해 권력을 꿈꾼 기무사가 급기야 계엄 실행과 동시에 민간인 탄압으로 자신들의 야욕을 드러낸 셈이다.

 

이 사실이 드러나면서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기무사 해체 청원’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국민일보의 단독 보도에 의하면,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을 기무사가 상부의 명령이나 승인 없이 독단적으로 폐기한 상황까지 밝혀졌다. 스스로 무소불위(無所不爲) 조직임을 드러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독단적 문서 폐기는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 하극상을 벌일 수 있음까지 짐작하게 한다. 국민과 국회를 탄압하고 국정원 등 정보기관과 국내 언론을 검열하겠다는 기무사의 문건은 전시에서 적국이 국가를 전복할 때 벌이는 음모와 다를 바가 없다. 

 

위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계엄 실행계획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고 한민구 전 국방부장관은 ‘큰 문제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더욱이 김관진 전 실장은 “기무사의 계엄 문건 작성 사실을 몰랐다”라고 주장하고 있고 한민구 전 장관은 “기무사의 보고서 작성에 대해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라고 답변하고 있다. 국가안보실장과 국방부장관의 발언을 그대로 신뢰한다고 해도 문제다. 국가에서 통제하고 관여할 수 없는 사령부가 기무사라면 그들이 권력을 꿈꾸지 못하도록 지금부터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타락한 권력을 경험한 조직은 언제든지 권력을 다시 꿈꿀 수 있다는 점을 이번 계엄 음모 사태를 통해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다. 기무사가 국민들을 향해 휘두르려던 총칼의 끝은 결국 부메랑이 돼 다시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 2017년 경영윤리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권력’은 안정적일수록 상대를 도구화하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감시와 규제, 투명한 정보 공유, 권력 분산을 통해 기무사 권력의 안정적 속성을 제거해야 한다. 영국의 정치인 존 달버그 액턴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경고했다. 다시는 절대 권력을 꿈꾸지 못하도록 그리고 절대 부패하지 않도록 발전적으로 해체하라는 것이 기무사에 전하는 국민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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