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 알과 금줄
  • 이인자 일본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9 10:49
  • 호수 1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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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자연과 어우러진 사람들

 

장마가 시작된 6월 중순, 비 갠 초저녁 일입니다. 매일 산책하는 연못을 낀 공원 외솔길 가에 안 보이던 금줄이 쳐져 있습니다. 사방에 메시지를 적은 흰 종이도 보입니다. ‘출입금지!’ ‘밟지 말 것!’ ‘들어가지 말아주세요’라고 씌어 있는 종이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길가에 있기에 일부러 그런 표시를 해 놓지 않으면 들어가지도 밟지도 않고 무심히 지날 만한 곳인데 이런 팻말로 궁금증을 자아내진 않을까?’ 그러면서 지나갔습니다. 

 

약 1년 전 시사저널 1445호에 이 공원의 고양이 이야기를 했습니다.(☞'공원의 고양이를 보면 일본 사회가 보인다' 기사 참조) 소우주처럼 느껴지는 공원이고 무연(無緣)사회가 되어가는 일본 사람들이 공원의 자연과 어떻게 어우러져 사는지 전하겠다고 했는데 다른 이야기들을 하느라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그 공원에 사는 생명체와 사람들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다음 날 그 금줄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 공원에는 전에 소개한 고양이는 물론, 개구리(10년 이상 살고 있는 개구리도 있다고 합니다), 오리, 잉어, 자라(가마솥 뚜껑만 한 것도 있다는 소문입니다), 그리고 각종 새들이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뱀도 있고 가끔 밤엔 살쾡이도 어디선가 온다고 합니다. 

 

“이곳은 정글 같은 곳이야. 천적들도 공존하기에 약하면 잡아먹혀….” 항상 빵 부스러기를 들고 와 오리 먹이를 주며 산책하는 옆집 오다지마 아키라(小田島章)씨는 말합니다. “저 새끼 오리는 처음 부화해서 엄마 따라 나왔을 땐 7마리였는데 지금은 6마리야. 까마귀나 솔개 아니면 고양이가 잡아간 거야. 그것들이 천적이거든.” 

 

공원 내 자라 알을 묻어 놓은 곳에 쳐진 금줄 © 이인자 제공

 

 

공원 찾는 사람들과 다양한 생명체

 

그러자 공원 고양이에게 매일 먹이를 주며 친자식처럼 보살피는 70대 후반의 여자분이 “우리 애는 겁도 많고 항상 내가 먹이를 주기에 그런 거 못 먹어요!”라고 합니다. 

 

천적이라고 핀잔을 한 것도 아닌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오다지마씨는 멋쩍어 슬그머니 정자에서 일어나 산책길을 걷습니다. 2시간 이상 오리와 놀았다는 50대 남자가 정자로 옵니다. 평일 오후 4시면 보통은 일하는 시간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는 아티스트로 라디오 진행도 하는 방송인이라고 합니다. 오다지마씨가 말한 갓 부화한 오리와 그 어미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나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먹이를 주게 됐는지 물으니, 이 공원을 매니저에게 소개받았다고 합니다. 걸어서 20분은 와야 하는 거리에 집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뜻하지 않게 제 궁금증을 풀어주는 말을 했습니다. 

 

“여긴 정말 다양한 생명체가 있어 재밌어요. 정글 같아요. 엊그제 자라가 알을 낳았잖아요. 알을 낳아 땅에 묻었어요. 다음 날 와 보니 친절한 누군가가 그곳에 금줄을 치고 들어가지 말라고 해 놓았지 뭐예요. 이러니 이 공원을 안 좋아할 수 있겠어요?” 

 

이 말(정보)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궁금증이 풀린 건 물론이고 감동까지 받았기 때문입니다. 작은 공원에서 일어나는 생명체의 일들을 모두가 면밀히 관찰하고 서로 대화의 재료로 삼고 그리고 사람 사이를 이어가는 매개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라는 꽤 오랜 시간 알을 낳아 땅에 묻었다고 합니다.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누군가 금줄을 쳐줬는데, 누가 했는지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모릅니다. 공원 고양이에게 아침에 먹이를 주는 사람과 저녁에 먹이를 주는 사람이 서로 모르듯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깊이 서로 알려고도 안 합니다. 공원에서 만나는 걸로 서로 돈독하게 지내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또 친한 친구이기에 공원 산책을 권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각자 서로 편한 시간에 살아 있는 것들에게 먹이도 주고 감상도 하고 그걸 화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는 듯이 그렇게 지냅니다.

 

공원에서 오리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노부부 © 이인자 제공


 

무연사회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위로

 

항상 밤에 산책하던 저는 너무 흥미로워 저녁 무렵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평일 오후 5시가 안 된 시간에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와 30대로 보이는 아들이 공원을 산책합니다. 조금 걷는가 싶었는데 남편은 공원벤치에 자리 잡고 어디에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습니다. 아무래도 사업 관련 내용인 듯 심각하고 깍듯합니다. 

 

모자는 계속 산책을 합니다. 전날 저는 이 모자를 만났지요. 공원 연못에 사는 갓 태어난 오리 가족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매일 온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가족 모두 동원해 온 것입니다. 연못에는 20여 마리의 크고 작은 오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헤엄치는 작은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연못 주위를 맴돕니다. 오리를 겨우 발견해 먹이를 주려 하니 생각처럼 물가에 오지 않습니다. 다른 오리 두 마리가 물가에 있어 먹이를 주니 어미 오리가 그 모습을 보고 새끼를 거느리고 가까이 오지만 다른 오리가 있는 걸 보고 다시 멀리 헤엄쳐 갑니다.

 

이때 부인은 남편에게 휴대폰으로 연락을 합니다. “왔어요. 지금 이곳으로 오세요. 당신 있는 곳에서 오른쪽 수풀 속에 있으니.” 그러자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편이 가까이 옵니다. 상황을 보고 남편은 먹이인 빵 부스러기를 들고 약간 떨어진 곳에서 먹이를 던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모자가 주던 먹이를 차지하던 오리 두 마리가 남편이 던져주는 먹이 쪽으로 유인돼 갑니다. 겨우 안심한 듯한 새끼 오리를 거느린 엄마 오리가 먹이 쪽으로 와서 먹습니다. 가족 공동 작업으로 오늘도 새끼 오리 가족에게 먹이 주기를 성공합니다. 

 

부인은 하루 한 팀만 예약제로 받는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가정집을 개방해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지요. 독자 여러분도 예상은 하셨겠지만 30대 아들을 거느리고 부부가 평일 초저녁에 동네 공원에 사는 오리 먹이를 주는 풍경은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지요. 뚜렷한 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니지만, 취직을 했는데 적응을 못하고 칩거하게 된 아들이 공원 오리 먹이 주기만은 좋아해서 밖을 나온다고 합니다. 그게 고마워 엄마가 함께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가족이 함께 올 수 있는 날은 적지만 아주 좋은 날이라고 하더군요. 가족의 대화는 공원에서 그리고 오리를 둘러싼 이야기 외에 아직 진전이 없다고 합니다. 

 

‘동물이 상처받은 사람 마음을 치유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말은 자주 듣지요. 도시 한 공간인 공원은 일부러 치료를 하기 위한 시설로 정비한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난 1445호에 썼듯이 무연사회의 무정함이나 사람 사이에서 상처받아 고달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공간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땅에 묻힌 자라의 알은 90일 후면 부화한다고 합니다.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면 암놈으로, 그 이하면 수놈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항상 여름이면 덥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더위에만 집중했는데 올여름은 자라가 뭘로 태어날지 기대하는 호기심으로 더우면 더운 대로 선선하면 선선한 대로 새끼 자라를 생각하며 지낼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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