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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무엇이 ‘법정물 드라마 전성시대’를 이끌었나

문턱 높은 법 앞에 서민들은 여전히 억울하다

정덕현 문화 평론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10(Sun) 16:00:00 | 14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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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물 전성시대’라 불러도 될 듯하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우리는 법정이 소재인 드라마들을 만날 수 있다. 월화에 방영되는 MBC 《검법남녀》와 JTBC 《미스 함무라비》, 수목에 방영되는 KBS 《슈츠》, 주말에 방영되는 tvN 《무법변호사》가 그렇다. 법정이 등장하고 검사와 변호사 혹은 판사가 주인공이지만, 이들 드라마가 법을 다루는 방식은 다양하다. 

 

검법남녀》는 검사의 법정물에 CSI류의 장르물을 떠올리게 하는 법의학자를 더해 독특한 장르적 퓨전을 보여주는 반면, 《미스 함무라비》는 현직에 있는 문유석 판사가 쓴 작품답게 좀 더 일상과 현실에 맞닿아 있는 재판을 소재로 우리네 현실을 들여다본다. 《슈츠》는 유명 미드 원작을 리메이크해 밀도 높은 법정물과 인물의 성장드라마를 엮어놓았고, 《무법변호사》는 법으로 싸우는 변호사를 내세워 복수극에 법정물을 섞었다. 

 

이미 변호사나 검사, 형사라는 직종은 우리네 드라마에서 단골 주역을 꿰찬 지 오래다. 하지만 최근 등장하고 있는 법정물들은 훨씬 더 미드적인 장르물에 충실해져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저 법정이 등장하는 멜로나 사회극 정도가 아니라, 좀 더 디테일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내용들이 다뤄지고 있다. 《검법남녀》 같은 경우 사체 해부라는 전문적인 영역을 깊이 취재한 흔적이 역력하고, 《미스 함무라비》는 현직 판사 작가의 경험 덕분에, 우리가 막연히 봐왔던 판사라는 직업이 갖게 되는 냉정과 온정 사이의 딜레마를 진정성 있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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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다루는 방식도 여러 가지

 

물론 《무법변호사》 같은 경우 법정의 디테일보다는 복수극과 누아르에 가까운 전개를 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슈츠》는 미드 원작 자체가 본래 법조인들의 참여로 이뤄진 만큼 디테일한 법 현실의 문제가 담겨져 있다. 이처럼 디테일들이 법정물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건, 이제 우리네 시청자들도 복잡해 보일 수 있는 법정 장르물에 익숙해졌다는 걸 말해 준다. 법정물 전성시대는 그래서 멜로드라마나 가족드라마, 사극, 시대극에 머물러 있던 우리네 드라마들이 이제 본격적인 장르물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걸 말해 준다.

 

다루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이들 법정물이 담고 있는 대중정서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서민들이 갖고 있는 법에 대한 갈증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서민들에게 법이란 가진 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면이 있다. 억울하다고 해도 돈이 없으면 법으로 싸워 진실을 밝혀내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의 결핍을 담기 마련인 드라마는 그래서 서민들이 법을 통해 승리하는 모습을 담는다. 

 

모든 정황이 범인으로 지목되는 한 인물이 결국 결정적인 법의학적 증거를 통해 구제되는 방식을 《검법남녀》는 취하고 있다. 도무지 뒤집을 수 없을 것 같던 사건의 정황들이 ‘사체가 말해 주는 최후 증언’을 통해 뒤집히는 짜릿함이 이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집중하게 되는 이유다. 《미스 함무라비》는 드라마에서 그간 잘 다루지 않던 ‘민사재판’을 소재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더 친서민적인 이야기를 담는다. 분쟁이 생겨난 재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약자인 서민들이 겪는 아픔들이 느껴진다. 오해로 빚어진 분쟁을 풀어주거나, 피해자지만 권력을 가진 이들에 의해 오히려 법정에서조차 또다시 피해를 입는 약자를 일으켜 세워주는 판사의 이야기는 따뜻하면서도 강력한 판타지를 준다. 

 

《슈츠》는 미드 원작이지만 스펙 없는 가짜 청년 변호사가 서민들의 마음을 읽어냄으로써 승패에만 집착하는 베테랑 변호사의 사건 해결에 실마리를 준다는 점에서 법에 대한 대중들의 정서를 담아내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무법변호사》는 기성이라는 가상 도시를 통해 권력자들이 쥐고 칼처럼 휘두르는 법을 법으로 싸워 이겨내려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역시 힘이 없어 법에 속고 당하는 서민정서가 이 복수극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지금의 법정물 전성시대는 또한 2016년 말 터진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와 이듬해 그 결과로서 나오게 된 대통령 탄핵, 그리고 정권교체와도 무관하지 않다.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면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게 되자 대중들의 가장 큰 관심은 결국 사회 정의와 적폐청산에 쏠리게 됐기 때문이다. 《비밀의 숲》 같은 드라마가 때마침 등장해 열광적인 지지를 얻게 됐던 건 이런 사회적 분위기도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대중들은 법을 다루는 검찰 내부의 문제들을 겨냥한 이 드라마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적폐청산에 대한 갈증과 장르물에 대한 욕구

 

최근 들어 도드라져 보이는 드라마의 경향은 어떤 소재든 ‘현실 반영’을 요구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제 시청자들은 ‘현실 반영’이 되어 있지 않은 드라마를 왜 굳이 봐야 하는가 하고 묻고 있는 듯하다. 최근 사적인 멜로들이 고배를 마시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월화에 편성된 SBS 《기름진 멜로》나 수목에 편성된 SBS 《훈남정음》이 대표적이다. 《기름진 멜로》는 애초 《파스타》나 《질투의 화신》으로 기대감을 높였던 서숙향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사적 멜로에 치중하다 결국은 동시간대 법정물인 《검법남녀》에 밀려버렸다. 《훈남정음》 역시 남궁민과 황정음의 조합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시작했지만 연애 코칭이라는 사적인 소재의 한계에 머물며 동시간대 법정물인 《슈츠》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얻었다. 

 

결국 지금의 법정물 전성시대는 ‘사회 정의’ 같은 사회적 사안들에 민감해진 대중들의 갈증과 기존 드라마들의 천편일률적인 스토리가 아닌 본격 장르물에 대한 갈증이 만나면서 생겨난 현상으로 보인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한때 미국 드라마를 흉내 내는 장르물들이 갖고 있던 정서적 낯섦의 한계를 우리 식의 정서로 채워 넣음으로써 극복해 낸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법정물 전성시대는 그간 서민들이 법 앞에서 느꼈던 억울한 정서가 밑그림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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