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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잠재적 가해자 탈출하기

노혜경 시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14(Sat) 18:00:00 | 14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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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이 우리 사회에 유행시킨 언어를 셋만 꼽자면 ‘여성 혐오’ ‘메갈’ ‘잠재적 가해자’가 아닐까 한다. 이 말들은 묘하게도 구체적 정황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그 정황을 추상화하고 집단화해 낙인을 찍는 경향을 지닌다. 예컨대 여성 혐오란 특정한 발화이자 그 발화를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시선이며, 메갈이란 메갈리아 사용자를 지칭하는 말이자 동시에 페미니스트를 낙인찍어 배제하기 위한 집합명사가 된다. 이 세 가지 어휘는 서로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이 중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아마 강남역 살인 사건 당시 남성들이 여성들의 이야기에 가장 반발했던 대목이 이 말이 아닐까 싶다. 강남역 살인 사건이 여혐범죄라는 여성들의 주장에 많은 남성들이 “왜 모든 남자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모느냐”고 맞섰다. 이어 ‘자신들을 가해자로 모는 가해’를 했다는 논리로, 다른 말로 ‘남혐’을 했다는 논리로, 여성 혐오를 미러링한 메갈리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흡사, 우리 사회의 청년 세대는 ‘메갈’과 ‘잠재적 가해자’로 나뉜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이 대립은 패싸움의 성격을 띠고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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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드러나는 성차별적 사고

 

문화 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성차별적 사고방식, 그 사고가 드러나는 언어표현과, 그 표현에 의해 강화되는 혐오 표현을 여성 혐오라 부르는 것에 논리적 하자는 없다. 여성 혐오라는 말이 혐오를 말하는 사람을 남성이라고 특정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모든 남성은 다 여혐종자라는 말을 포함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왜 많은 남성들은, 여성이 여성 혐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것을 ‘모든’ 남성에 대한 공격이고 따라서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남성을 대표하여’ ‘개인적’으로 분노를 할까. 이 분노의 연쇄는 논리적 근거가 없다. 집단정체성과 자기 자신의 특수한 개인적 정체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러한 사고가 유독 차별의 문제에서 드러난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실제로 성차별뿐 아니라 지역차별, 인종차별, 빈부차별 등의 모든 국면에서, 차별하는 쪽은 차별당하는 쪽의 비난에 대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로, ‘모두’를 비난하지 말라는 말로, 비난 자체를 봉쇄하면서 동시에 그 ‘모두’의 일원으로 스스로를 위치시키곤 한다. 여성 혐오라는 말에 퍼부어지는 남성들의 반격 역시 똑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봉쇄에 대한 반격으로서 상당히 강력한 파장을 일으킨 말이, 바로 저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이었다. 나는 잠재적 가해자라는 어휘가 남성 개개인이 매우 공격적으로 느끼기 쉬운 말이라는 것에 동감한다. 성폭력이나 여혐범죄에 관하여 생각해 보면, 남성이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는 모두들 동의하리라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성들이 실제로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여성 차별적 사회에서 남성들이 잠재적 수혜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을 따름이다. 잠재적 가해자란, 잠재적 수혜자라는 말의 다소 강한 표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미투의 이름으로 성폭력 고발이 전면화되면서, 필자는 상당히 논쟁적인 저 어휘들이 어딘가 아픈 데를 제대로 찌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이야기는 다음 주에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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