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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 드라마 제작 관행이 ‘스타 갑질’ 키웠다

《리턴》 하차한 고현정을 시청자들이 두둔하는 이유

하재근 문화 평론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10(Sat) 18:01:00 | 1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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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BS 드라마 《리턴》에서 등장인물이 다른 배우로 바뀌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극 중 최자혜 변호사 역할을 하던 배우가 고현정에서 박진희로 바뀐 것이다. 출연 배우의 교체는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지만, 이렇게 한 회에 바뀐 적은 없었다. 내막을 모르는 시청자는 드라마 시청 중에 사람이 바뀌어 황당해했다. 이렇게 교체 과정이 매끄럽지 않은 것은 그만큼 고현정의 하차가 급작스러웠기 때문이다.

 

발단은 담당 PD와 고현정의 다툼이었다. 고현정이 촬영장에 나오지 않아 제작에 차질이 생기면서 PD와 고현정이 크게 다퉜다는 보도가 나왔다. 심지어 폭행설까지 보도됐다. 고현정이 갑질을 거듭하다 PD에게 욕설과 폭행까지 했다는 것이다. 고현정 측에선 폭행 등을 부인했지만, 어쨌든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방송사는 결국 고현정의 하차를 결정했다.

 

보통 이런 내용의 보도가 나오면 연예인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는다. 대중이 연예인의 태도, 갑질 등의 문제에 대단히 민감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배우가 촬영장에 지각한다든가,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소식엔 유난히 공분이 폭발하는 경향이 있다. 여배우의 태도에 대중이 더 엄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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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서 박진희로 여주인공 교체되면서 논란

 

그런데 이 사건에선 거꾸로 고현정을 응원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원래 《리턴》이 시작된 이래 고현정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주류였는데, 정작 고현정에게 아주 부정적일 수 있는 이 사건이 터진 후 여론이 고현정 쪽으로 반전됐다. 매체들이 연일 고현정의 불성실, 고압적인 자세 등을 기사화했는데도 네티즌의 고현정 지지는 견고했다. 대신 방송사 측에 질타가 쏟아졌다. 심지어 이 사건 직후 고현정이 대학 강의 중에 담배를 피웠다는 주장이 나왔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고현정을 두둔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여배우에게 질타가 쏟아질 사안인데도 말이다. 이 사건이 고현정에게 강력한 ‘쉴드’(보호막)로 작용한 것이다.

 

곤란해진 건 고현정의 후임을 맡은 박진희다. 박진희는 단순히 위기에 처한 방송사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인데도, 사람들은 박진희가 마치 방송사의 고현정 쳐내기 음모에 ‘앞잡이’로 나선 것처럼 여겼다. 박진희 등장 이후 사람들은 박진희의 일거수일투족을 고현정과 비교하며 적대적으로 분석했다. 박진희는 가시방석에 앉아 드라마를 이끌어갈 판이다.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일차적으로 고현정의 분량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리턴》은 악행을 저지르는 4명의 금수저 악당과 그를 쫓는 형사, 그리고 최자혜 변호사의 이야기인데, 초반부터 금수저 악당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악당이 극을 끌고 가면서 ‘악벤져스’라는 애칭까지 생겼다. 이들을 형사가 쫓는 가운데, 고현정이 맡은 최자혜 변호사의 역할이 애매해졌다. 분량이 적은 것에 더해 캐릭터의 존재 의미까지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고현정 정도 위상의 배우가 이런 무의미한 역할을 수락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처음엔 변호사 역할이 중요했는데 극을 시작하고 보니 악당들에게 관심이 집중되자 제작진이 악당 중심 스토리로 바꿨고 고현정 역할이 피해를 보게 됐다’고 여기게 됐다. 그로 인해 고현정은 불만을 가졌고, PD와 다툼이 생겼으며 결국 하차당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없었지만 사람들은 기정사실화했고 그래서 고현정에겐 응원이, 방송사엔 질타가 쏟아졌던 것이다. 사람들은 ‘고현정 갑질’ 보도도 모두 방송사의 ‘비겁한 언플’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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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드라마 제작 풍토가 정상이었다면 여론이 이렇게 흘러가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방송을 시작해 놓고 시청자 반응을 봐가며 작품을 수정했던 것이 그동안의 드라마 제작 관행이었다. 대본이 초치기로 나오기 때문에 ‘쪽대본 생방송’ 드라마라는 말까지 생겼다. 이로 인해 후반부로 갈수록 드라마 완성도가 떨어지기 일쑤였고, 심지어 tvN 《화유기》는 방영 초반부터 방송사고가 터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방송사들이 쪽대본 생방송 드라마를 고집하는 것은 시청률 때문이다. 시청자의 반응을 보면서 바로바로 대응해야 시청률을 올릴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사람들은 바로 그래서 《리턴》도 방영 이후에 스토리가 바뀌었다고 믿었다. 이렇게 스토리를 자의적으로 바꾸는 행태가 방송사의 갑질이라고 여겼다. ‘고현정은 방송사 갑질의 피해자’라는 프레임이 생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방송사만을 비난했다. 방송사의 시청률 지상주의가 시청자들의 질타를 자초한 것이다.

 

‘스타 갑질’도 방송사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지상파 방송사들은 출연료 상한제에 합의했었다. 아무리 스타라 해도 회당 200만원을 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걸 바로 SBS가 깼다. 2001년 《여인천하》에 강수연을 캐스팅하면서 회당 500만원을 지급한 것이다. 2002년 《별을 쏘다》의 전도연 600만원, 2004년 《토지》의 김현주 1000만원, 2004년 《봄날》의 고현정 1800만원, 2006년 《연애시대》의 손예진 2500만원+러닝개런티, 2010년 《대물》의 고현정 5000만원. 그리고 2012년 《신사의 품격》 땐 장동건에게 회당 1억원이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톱스타 의존하는 드라마 제작관행 깨야

 

SBS가 스타들의 가치를 올리면 MBC와 KBS가 이에 부응하는 구도였다. 요즘도 외주제작사에서 톱스타를 캐스팅해 드라마 기획안을 짜면 1차적으로 SBS에 제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방송사보다 SBS가 톱스타에 더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스타의 위상이 점점 상승해 왔던 것이다.

 

방송사의 편성 관행도 문제다. 오직 스타만 보고 편성을 내주는 경향이 있다. 작품성이나 기획의 참신성이 아닌, ‘어떤 스타가 나오느냐’가 절대적 기준인 것이다. 편성을 받지 못한 작품은 사장된다. 그런 의미에서 편성은 작품의 생명줄이고, 스타가 편성을 좌우한다면 결국 스타가 작품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말이 된다. 결국 스타는 절대갑이 될 수밖에 없고 절대권력은 자연스럽게 갑질로 이어지게 됐다.

 

그러니 방송사가 스타 갑질을 자초한 셈이다. 방송사가 스타를 떠받드는 것도 시청률 지상주의 때문이다. 방송사는 스타가 시청률의 보증수표라고 생각해 받들었고, 위에서 그러니 현장 제작진도 ‘알아서 기었다’. 그러다 보니 배우가 PD와 대놓고 싸우다 방영 중인 드라마를 그만두는 사태까지 터진 것이다. 《리턴》 현장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당사자들만 알겠지만, 그 문제와 별개로 방송사의 과도한 스타 모시기와 비정상적인 드라마 제작 관행이 사라져야 ‘리턴 사태’처럼 시청자가 방송사에 공분하는 일이 예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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