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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북에선 군 열병식, 남에선 악단 공연?

‘평양올림픽’ 논란에 고민 깊어진 문재인 정부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30(Tue) 13:00:00 | 1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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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이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북한의 대표단 파견 결정으로 달아오른 분위기에 ‘북한 열병식’이란 돌출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사태는 북한이 올림픽 개막 하루 전인 2월8일 평양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개최하려는 징후가 감지되면서 불거졌다. 남북 공동 입장과 단일팀 구성 등으로 모처럼 남북관계에 해빙 분위기가 감돌았는데 행사 전야에 대규모 병력과 군사 장비를 동원한 열병 행사가 열린다면 의미가 크게 퇴색될 수 있다. 북한의 평창행 진의가 의심받고 우리 국민들의 대북 여론이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부정적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북한의 열병식 행사를 막기 쉽지 않아 보인다. 평양 미림비행장에서는 혹한의 날씨 속에서도 1만3000여 명의 병력과 200여 대의 트럭·전차·야포 등 장비를 동원한 예행연습이 한창이라는 게 한·미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위성사진에는 줄지어 행진하고 장비가 기동하는 장면이 드러난다. 특히 수호이(SU)-25 전투기와 대남 침투용 AN-2기가 식별되고 있어 축하비행을 겸한 에어쇼까지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12월말부터 포착된 이런 움직임은 시간이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게 대북 정보 관계자의 귀띔이다.

 

북한의 이번 열병식 준비는 인민군 창건일인 2·8절을 겨냥해 진행되고 있다. 북한은 1월23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이라며 “2월8일을 조선인민군 창건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매년 4월25일을 군 창건일로 기념해 왔는데 올해부터는 2월8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본래 북한은 정권 수립 7개월 전인 1948년 2월8일 인민군이 만들어진 걸 건군절로 기념해 왔다. 그런데 1978년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를 조직한 시점으로 선전해 온 1932년 4월25일로 건군절의 역사를 당겼다. 이른바 ‘항일 혁명’에 뿌리를 두고 있는 북한 체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보다 유서 깊은 무력조직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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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송월의 삼지연관현악단 2월8일 서울 공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집권 이후 인민군 창건과 관련해 다시 손질을 가해 왔다. 집권 4년 차인 2015년엔 정규군 창건일인 2·8절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노동신문 등 관영 매체를 동원한 축하 분위기 띄우기도 이뤄졌다. 당시 군 핵심 관계자들을 동원해 공식적인 기념행사도 치렀다. 2016년에도 이런 분위기는 이어졌고, 지난해에는 인민무력성이 주도하는 보고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런 정지작업을 거쳐 올해는 아예 건군절 변경을 공식화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이런 결정은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결정 이후 북측 대표단의 남한 체류 일정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상황에서 불거져 논란을 빚고 있다. 무엇보다 평창에서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기 하루 전 평양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열린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현송월 단장이 이끌 삼지연관현악단의 강릉 공연 날짜가 2월8일로 잡힌 점도 찜찜한 대목이다. 평창올림픽 개막으로 한반도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북에선 열병식이, 남에선 북한 악단의 공연이 펼쳐지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일각에서 “평창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이다”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 주최 측이나 우리 정부 입장에선 무척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열병식 문제로 북한을 지나치게 압박하다간 올림픽 불참 결정 등으로 이어져 판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청와대는 “인민군 창건일과 올림픽 개막 전야 행사 등이 겹치는 건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북한이 건군절을 바꾼 건 이미 3년 전의 일이란 설명도 내놓고 있다. 북한의 열병식 때문에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른다는 청와대와 정부의 계획에도 차질을 빚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상황은 심상치 않다. 청와대의 설명과 달리 북한이 올림픽 개막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건군절까지 바꿔가며 퍼레이드 카드를 꺼내든 대목을 가볍게 봐선 안 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특히 정부가 평창올림픽에 북한을 끌어들이기 위해 연례적인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미룬 국면에서 북한의 열병식은 도발적 행위로 간주돼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군사연습 연기를 수용토록 했던 것처럼 북한에도 열병식 취소나 연기를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평창올림픽과 관련한 청와대와 정부 내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상황이나 여론 관리를 잘못하다간 ‘북한’ 변수에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특히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자 올림픽과의 상관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내부에서 제기된다고 한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1월22~24일 전국 유권자 1509명을 상대로 진행한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조사에서 ‘잘하고 있다’는 평가는 59.8%를 기록했다. 한 주 전보다 6.2%포인트 하락한 수치로, 처음으로 문 대통령 지지율이 50%대로 떨어졌다는 점에서 청와대는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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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여론 커지는 ‘평양 손님’ 맞이 축제

 

여기에는 비트코인 사태나 최저임금 인상 등의 요인이 반영됐을 수 있지만 북한의 올림픽 참가 국면에서 불거진 요인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북한 점검단장 현송월에 대한 과잉 의전이나 여자 하키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독단적 태도 등에 우리 국민들, 특히 2030세대가 실망감을 보였기 때문이란 얘기다.

 

북한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대남 선동 공세의 수위를 높이며 청와대와 정부의 골머리를 아프게 만들고 있다. 1월24일 평양에서는 정당단체연합회의라는 걸 열어 “남조선 당국이 미국과의 전쟁연습을 영원히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북핵을 ‘핵 보검’으로 표현하며 자신들이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지키고 있다는 선전을 펼쳤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을 ‘동족의 경사’로 평가하며 “서로 도와주는 건 응당한 일”이라고 말한 게 무색해질 정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내 비판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진보·보수로 나뉘어 ‘평화올림픽’이냐 ‘평양올림픽’이냐를 두고 갈등의 골이 커졌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로 ‘평화올림픽’ 열기가 고조되고 향후 대북정책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아졌다. 참 어려운 ‘평양 손님’ 맞이 숙제가 정부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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