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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동아시아 판세를 바꾸다

[이진아의 지구 위에서 보는 인류사]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10(Wed) 08: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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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기 이후 1만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가장 풍요롭고 선진적이며, 당연히 가장 파워도 컸던 인간 집단이 살던 곳이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신석기 시대 토기도 철기시대 도구도 세계 다른 지역에 비해 몇 천 년 이상 앞서가는 선진지역이었다. 그러다가 서기 600년대 후반부터 약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해서 1000년 무렵에는 그 이전시대 내내 훨씬 후진된 지역이었던 중국에도 눌리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도대체 한반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가장 크고 직접적인 계기가 백두산 폭발이라는 거대 환경재앙이었다고 본다. 이건 새로운 견해는 아니다. 서기 800~900년대에 있었던 백두산 폭발은 발해의 멸망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은 심심치 않게 나왔었다. 

 

이 글에서는 여기에 몇 가지 요인을 더 고려해서,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좀 더 명확한 그림을 그려보려 한다. 또 백두산 폭발이 발해를 멸망시키는 것 외에도 동아시아에 어떤 변화를 초래했는지 짐작해볼 것이다.

 

이 시기의 백두산 폭발은 ‘백운봉기 폭발’이라고 하는데, 역사시대, 즉 지난 5000년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화산 폭발이었다.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를 화산재에 묻었던 베수비오 산 폭발의 수십 배 규모에 달하며, 유럽의 공항들을 한 달 이상 마비시켰던 2010년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 폭발의 10배 이상 되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백두산 부근의 탄화목을 탄소동위원소 측정법으로 분석해본 결과 이 분화활동은 적어도 서기 600년 무렵부터 960년까지, 약 360년간 지속되었다고 한다. (앞서 흑요석을 형성해주었던 기원전 9만 년의 제6기 활동은 거의 1만년 가까이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백운봉기 폭발에서는 주로 화산재와 화산쇄석, 즉 잔 돌멩이들이 뿜어져 나왔다. 화산재는 활성화된 화산이라면 본격적인 폭발이 있기 몇 십 년, 몇 백 년 전에도 뿜어져 나온다. 이것은 바람에 실려 꽤 멀리 퍼진다. 그 낙진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호흡을 곤란하게 만들고, 면역체계를 엉망으로 만들며, 햇볕을 가려 농작물 생육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공격적이고 근시안적인 행동을 하기 쉽다. 잘 먹지 못하고 늘 신경이 곤두서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이지 않다보니 체력이 쉬 고갈될 거고, 정작 큰 전쟁이 터졌을 때는 맥을 못 추기 십상이다.

 

아마 백운봉기 폭발은 발해가 들어서기 전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고구려가 백두산 일대를 점유하고 있었던 국가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리 없고, 백제의 영토가 어디였느냐 하는 데 대해선 최근 논란이 일고 있다. 아직 주류학계의 의견은 아니지만, 지금의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요하 유역에서 한반도 서해안 전체에 걸쳐 형성된 국가라는, 소위 ‘대륙백제설’이 꽤 활발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 글에서는 앞에 나온 박창범 교수의 천문관측지 지도가 시사하는 대로 백제가 요하유역에 중심지를 두고 있었다고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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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래프는 기원전 2500년부터 기후변화와 화산폭발의 윤곽을 보여준다. 백제와 고구려가 비슷한 시점에 멸망했는데, 이 시기는 한랭기였으며 화산폭발이 잦았던 시기였다. 

 

만일 백제가 요하 유역을 중심으로 한반도 서해안과 중국 동해안을 무대로 활동했던 해상국가였다면 이런 시기에는 3중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일단 큰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는 시기여서 해상활동이 힘들어졌을 것이고, 요하가 위도가 높은 지역이어서 한랭기에는 생산성이 떨어져 또 힘들었을 것이다. 여기에 백두산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주로 바람 부는 방향은 아니지만 거리가 가까운 지역이어서 받는 피해가 더해졌을 것이다. 즉 식량사정이 악화되고 사람들의 체력이 고갈되며 사회분위기가 흉흉해졌을 것이다.

 

만일 고구려가 박창범 교수의 지도가 보여주는 대로, 좀 더 서쪽, 바이칼 호수 쪽과 연동되어 있는 나라였다면 이런 시기에 역시 3중의 악조건에 놓이게 된다. 위도가 높은 지역이어서 식량 생산성이 떨어졌을 것이고, 헤이룽 강이 부분적으로 얼어있는 시기가 길어졌을 것이므로 두 중심지의 소통이 잘 안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백두산 화산재의 영향으로 식량생산성이 더 떨어지게 되면 국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고구려가 사라진 자리에 소수민족들이 다시 세를 키웠고, 또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를 세웠다. 앞서 보았듯이 발해의 영토는 넓이라는 측면에서는 참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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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넓이가 모든 것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위도가 높은 지역이 한랭기를 맞은 데 더해 백두산까지 폭발해버리면, 발해의 영토는 오히려 넓어서 더 슬플 수 있다. 지리적으로, 그리고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698년에서 926년까지 버틴 발해는 정북쪽으로 떨어져 있어 백두산 폭발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을 거란족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그 역사 노정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의 연속이었을지, 생태학적 조건이 인간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백운봉기 폭발의 주산물이었던 화산재는 바람을 타고 주로 동쪽으로 많이 갔을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연중 여름 한 철만 빼고 주로 서풍이 불기 때문이다. 일본의 한 지질학자는 그 양상을 다음과 같은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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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까지 백두산 폭발의 영향을 확실히 받았음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백두산에서 정동쪽으로 간 화산재의 양상만 보여준다. 과거 5000년간, 그러니까 관행 역사학에서 ‘역사시기’(historical times)라고 부르는 기간 중에서 최대 규모의 화산 폭발로 수백 년 간 지속된 화산활동 과정이었던 백운봉기 백두산 폭발이 이렇게 얌전히 정동으로만 향했을 리 없다. 더욱 남쪽이나 북쪽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본도 서기 600년 무렵부터 한반도 및 중국과의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 이전까지 일본은, 박창범 교수의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거의 한반도 국가의 일부나 다름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600년대 중반, 한반도에서 온 도래인, 특히 국가가 무너졌던 백제 출신들의 세력을 몰아내고 독립적인 율령국가를 세운다. 예전처럼 한반도와의 왕래가 원활하지 못했을 것이고 한반도의 본토 자체가 약해지는데다가, 마음이 다급해진 도래인 중에는 소가씨(蘇我氏)처럼 세력기반을 강화하려 무리수를 두다가 몰락한 사람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는 중에도 화산 폭발의 영향은 계속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엔 지구 전체적으로 화산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기다. 일본에서도 하루나(550년 경), 나루고(837년), 토와다(915년) 등 대규모 화산폭발 및 지진, 해일이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불안정한 환경에서는 ‘공포’가 지배하게 되기 쉽다. 지방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는 중앙집권적 권력구조가 굳어지고 칼잡이들이 공동체의 통제를 넘어서 설치고 다니는 일본 중세의 모습은 이런 과정을 거쳐 자리잡아갔을 것이다.

 

반면 방향으로 보아 백두산 폭발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을 중국 대륙에서는 당나라가 이제까지 없었던 기세로 일어나고 있었다. 앞서 보았듯이, 아마도 가야의 영토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양쯔 강 이남 지역의 해상세력들이 한랭기를 맞아 약해진 틈을 타서, 육지세력들은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전지구적으로 한랭기를 맞아 해상교류가 활기를 잃고 대신 육상의 실크로드를 이용한 교류가 활발해졌는데, 당나라는 이 루트를 이용, 유럽과 중동지역과도 교역을 해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만일 지금까지 우리가 이 글을 통해 추정한 게 맞는다면, 이 한랭기 이전까지 중국은 항상 한반도에 밀리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라는, 감히 넘보지 못할 대제국들이 한랭기라는 악조건에 백두산 폭발의 영향까지 더해져 흔들리게 되자, 당나라는 한반도에서 가장 약체였던 신라의 내응에 힘입어 드디어 한반도에 진출한 것이다. 

 

이후 400년 가까웠던 백두산 활성기/한랭기 동안 동아시아의 판세는 점점 더 중국을 권력의 중심에 두는 방향으로 변해왔을 것이다. 이 정도의 화산재가 날렸는데 (백두산 인근에는 75미터 두께로 화산재가 쌓인 층이 발견되기도 한다) 온난기가 됐다 해서 금방 생태계가 회복되거나 사람들의 체력 수준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또 발해 멸망 이후 한반도의 국가는 중국 대륙 북쪽으로부터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게 된다. 아마 막강했던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갖고 있었을 고려, 마음과는 달리 거란에 시달리고 몽골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어 조선시대는 빙하기 이후 가장 심한 한랭기였다. 한반도를 거점으로 한 원거리 해상활동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만년 이상 한참 후진국이었던 중국의 신하 나라 정도로 격하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렇게 몇 백 년 살다 보면, 강제로 지워지고 조작된 역사가 실제로 우리의 집단기억인 것처럼 되어버린다는 것,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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