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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동화, 북한 축구가 변하고 있다

외국인 감독 영입 후 1년6개월, 세밀한 축구에 자유로운 팀 분위기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0(Wed) 15:30:00 | 1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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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북한 축구대표팀은 25년 만에 외국인 감독을 영입했다. 노르웨이 출신 예른 안데르센 감독이 비밀리에 평양에 입국해 계약을 마친 것이 세계에 알려지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왕 출신인 안데르센 감독은 지도자로서는 큰 명성을 떨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1991년 이후 아주 오랜만에 외국인 감독이 입성했다는 것만으로도 세계는 ‘북한의 변화’라고 표현했다.

 

북한이 외국인 감독을 영입할 거라 예상한 이는 적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유학하며 10대 시절을 보낸 김정은은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프로농구 NBA의 광팬이다. 체제 선전에서 스포츠만큼 큰 효과를 내는 것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안데르센 감독 영입은 김정은이 전면에 나선 뒤 북한 축구 유망주들이 유럽에 적극적으로 진출한 모습과 맞닿았다.

 

 

기계 같던 북한 축구에 세밀함을 입히다

 

그로부터 1년6개월이 지난 2017년 12월. 북한 축구의 변화상을 본격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에 참가한 북한은 동아시아 축구의 세 축인 한국, 일본, 중국과 차례로 맞대결을 펼쳤다.

 

첫 경기부터 북한은 화제를 모았다. 12월9일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자부 첫 경기에서 일본을 상대로 접전 끝에 0대1로 패했다. 북한의 단단한 수비와 빠르고 기술적인 역습에 고전하던 일본은 경기 종료 직전 터진 이데구치 요스케의 골로 겨우 승리했다. 슛이 문전 앞 선수를 스치며 방향이 바뀐 덕에 들어간 행운의 골이었다. 일본의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은 “운이 좋아 승리했다. 북한의 수비를 뚫기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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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 나타난 안데르센 감독은 자신들의 경기력에 고조된 표정이었다. 그는 “우리 팀에 자긍심을 느낀다”고 입을 뗀 뒤 “모든 면에서 좋았다. 골이 될 수 있는 찬스가 5~6번은 있었다. 북한은 2번 정도였다. 피니시(득점)가 안 된 것이 유일한 문제였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일본 언론들도 하나같이 신승을 거뒀다며 내용상 열세를 인정했다.

 

사흘 뒤인 12월12일 같은 장소에서 남북전이 열렸다. 한국의 신태용 감독은 “북한은 확실히 특색 있는 축구를 하고 있다. 방심하면 일본처럼 힘들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한국은 북한을 상대로 중앙 수비수를 3명 세우는 3-4-3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일본을 괴롭힌 북한의 빠른 역습에 대비한 전략이었다. 결과는 한국의 1대0 승리였다. 한국은 골을 넣지 못했지만 후반 19분 북한의 수비수 리영철의 자책골 덕에 이길 수 있었다. 안데르센 감독은 한국의 강한 수비를 인정하면서도 상대가 자신들에 맞춰 수비 전형을 바꾼 것만으로도 흡족하다는 표정이었다.

 

북한은 동아시안컵에서 아시아 축구 강국들을 잇따라 위협했다. 월드컵 예선 탈락 후 세대교체가 성공했음을 알렸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베테랑 골키퍼 리명국과 미드필더 박성철을 제외하면 30대 선수가 없다. 팀 평균 연령이 24.9세로 대회 참가국 중 가장 낮았다. 한국(26.9세)보다 2살 적었다. 북한 전력의 또 다른 축인 조총련계 자이니치(在日) 선수들도 교체됐다. 안병준(구마모토), 리영직(사누키), 김성기(마치다)는 A매치 10경기 미만의 신예였다.

 

 

스마트 기기 쓰고, 형형색색 축구화 신고

 

북한의 달라진 축구도 화제다. 과거 북한은 5명의 수비를 세우며 웅크리다가 1~2명의 빠른 공격수를 이용한 단순한 역습에 나서는 팀이었다. 하지만 안데르센 감독은 포백 수비를 중심으로 전방에서부터 체계적인 수비 대응을 시켰다. 허리와 수비에 일자 형태를 두 줄로 세운 방어는 유럽의 전술 트렌드를 활용한 모습이었다. 공격진 선수들도 투박하고 힘과 속도로만 밀어붙이지 않았다. 상대 수비수를 돌파하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세밀함이 더해진 것이다. 거기에 북한 특유의 체력과 정신력이 바탕이 되면서 한국과 일본을 위협할 수준이 됐다.

 

경기 중 벤치 앞에서 벌어지는 모습도 이전과 달랐다. 안데르센 감독은 여과 없는 감정 표현과 적극적인 지시로 눈길을 모았다. 슛이 실패하며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우리말로 “앞으로”를 외치며 선수들의 빠른 공격 전개를 지시했다. 그라운드 위 선수들도 감정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아쉬우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교체돼 나오는 선수는 안데르센 감독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남북전에서는 경기 중 서로 손을 잡고 끌어올려줬다. 과거에는 심한 파울을 하고도 철면피처럼 모른 척했지만 이제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기 후 북한의 최고참 리명국은 수차례 국제대회에서 만나 안면이 있는 장현수에게 “월드컵에서 잘하라”는 격려도 했다. 이전의 남북전이 전쟁이었다면, 이번에는 스포츠맨십이 빛났다.

 

재일교포 축구 평론가인 신무광 기자도 북한 선수들의 변화상을 인정했다. 그는 “표정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자기 생각대로 플레이를 시도하면 감독에게 혼날까봐 두려워하는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패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외국인 감독의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세대가 바뀌었다는 느낌도 받는다”고 평가했다.

 

북한 선수들은 과거와 달리 형형색색 제각기 다른 브랜드의 축구화를 신고 있었다. 과거에는 검은색의 일관된 축구화였다. 이제는 개인의 편의와 개성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분위기인 셈이다. 북한 주민이 스마트폰을 쓰는 것처럼 선수들도 스마트 기기를 자유롭게 쓰고 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이탈리아에서 맹활약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한광성(페루자)은 SNS를 능숙하게 사용해 화제가 됐다. 과거 북한 대표팀은 자이니치 선수인 정대세가 자유롭게 외국 음악을 틀고 태블릿 PC를 사용하는 데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불과 7년 사이 분위기가 확 바뀐 것이다.

 

과거 천리마 축구로 불렸던 북한 대표팀은 이제 그 표현도 만리마로 바뀌었다. 김정은은 “시대가 바뀐 만큼 우리의 속도전도 10배 이상을 내야 한다”며 교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감독 취임 후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북한 축구는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북한 사회의 내부 변화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안데르센 감독과 북한의 계약은 올해 말까지다. 북한이 외부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변화를 계속 가져갈지, 아니면 과거로 회귀할지는 안데르센 감독의 재계약 여부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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