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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Insight] 유엔 디딤돌 삼아 대화 물꼬 트나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 방북…北 인도적 지원 받으려는 의도 강해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14(Thu) 14:30:02 | 1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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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유엔(UN)과의 고위급 대화채널 복원에 나섬으로써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엔 고위 인사의 방북을 초청하고 북·유엔 간 협력과 북한 내 유엔기구와의 사업협조 등에 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는 점에서다. 뉴욕 유엔대표부를 무대로 한 북한 외교관들의 활동과 물밑 탐색전도 본격화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게 우리 정부 당국자의 귀띔이다. 제프리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의 평양 방문은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펠트먼 사무차장의 방북은 12월5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유엔은 출발  하루 전 스테판 두자릭 대변인을 통해 평양 방문 계획을 공개했다. 펠트먼의 방북이 정책적 대화를 희망하는 북한 측의 오랜 요청에 의한 것이란 입장이다. 베이징을 거쳐 방북 길에 오른 펠트먼은 나흘간 북한에 체류하며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박명국 부상 등을 만났다. 겉으로만 보면 유엔 고위 관리의 의례적인 방문인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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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오랫동안 펠트먼 평양 방문 희망

 

하지만 펠트먼의 방북은 눈여겨볼 몇 대목이 있다. 우선 북한이 그를 초청한 시점이다. 유엔 측은 북한이 오랫동안 그의 평양 방문을 희망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북한은 지난 9월 유엔 총회 기간 중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유엔본부 연설 등을 계기로 펠트먼 사무차장에게 방북 의사를 타진했다. 그렇지만 이후 별다른 구체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이 펠트먼 차장에게 방북 초청장을 내준 건 11월30일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급 ‘화성-15형’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고 김정일 노동당 위원장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튿날이다.

 

이 대목에서 유엔 고위 관리를 평양에 불러들인 북한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도발 수위를 극대화한 시점에서 대북제재 사령탑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유엔 측과의 대화 테이블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다.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유엔 측에 유화 메시지를 던져 대북 압박 공세를 누그러뜨리고 한국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공조를 흐트러뜨리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한다. 유엔과 사사건건 대립하며 날을 세우던 노선에서 벗어나 유엔을 활용한 제재 회피와 평화공세 쪽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란 얘기다.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뿐 아니라 인권문제 등 북한 관련 사안을 둘러싼 유엔 조치와 결정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반감을 드러내 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정에 대해선 “미국 주도의 대북 압살책에 유엔이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비난의 화살을 쏴댔다. 특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시절에 비난공세는 극에 달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대남 선전매체를 동원해 “유엔 사무총장직도 얼마 남지 않은 반기문이 미국과 박근혜 패당에게 추종해 반공화국 제재와 북 인권 나발을 계속 불어대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 전 총장에 대해 “일찍부터 미국에 대한 환상이 골수에 들어찬 친미분자이고 미국이 품을 들여 키운 앞잡이”라는 식의 인신공격까지 퍼부었다.

 

하지만 반 총장의 임기가 만료되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유엔 수뇌부를 향한 비난 공세는 수위가 낮아졌다. 유엔의 대북제재에 대해 극렬하게 반응하던 북한은 최근 들어 유엔 무대를 자신들의 입장을 호소하는 공간으로 삼기 시작했다. 북한은 11월13일에는 구테흐스 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이 핵추진 항공모함까지 동원해 동해상에서 연합훈련을 벌이고 있다며 “미국이 우리 공화국의 숨통을 죄기 위해 1년 연중 쉼 없이 핵전쟁 연습과 협박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북제재와 관련해 어린이와 임산부 등 취약계층이 고통받고 있다는 호소를 유엔 회의장에서 쏟아내고 있는 것도 최근 주목되는 움직임이다. 어떤 제재를 가해도 꿈쩍 않을 것이란 입장을 내며 버티는 모습에서 ‘피해자’임을 호소하는 쪽으로 전술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다. 리용호 외무상은 지난 9월말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응해 ‘피해조사위’를 구성했다며 대북 압박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이번 펠트먼 차장의 방북 목적과 관련해 “조선(북)에 대한 유엔 기구들의 협조 등 호상관심사”라고 표현한 것도 제재에 따른 북한 주민들의 피해를 부각시켜 압박 수위를 누그러뜨리고 인도적 대북 지원을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韓·中은 ‘환영’, 美는 ‘경계’

 

펠트먼 차장의 방북활동을 두고 미국과 중국 등의 입장은 미묘한 차이를 드러냈다. 미국은 명확한 입장 표명을 자제했지만 국무부 관리 출신인 펠트먼의 평양 방문이 유엔과 미국이 주도해 온 압박과 공조에 균열을 가져오지 않을까 주시하는 분위기다. 중국은 “유엔이 한반도 핵 문제의 적절한 해결을 추진하는 데 있어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히는 등 반색했다. 

한국 정부는 방북 결과와 이후 북한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대화의 길로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길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의 해결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한국과 중국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미국은 이를 경계하고 있는 듯하다.

 

펠트먼 사무차장의 방북으로 유엔 고위 관리의 방북은 6년 만에 재개됐다. 유엔은 2011년 10월 발레리 아모스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국장을 평양에 파견했고, 앞서 2010년 6월에는 린 파스코 사무차장이 방북했다. 관심은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방북 문제다. 역대 유엔 사무총장의 북한 방문은 1979년 쿠르트 발트하임, 1993년 부트로스 갈리 총장 등 2차례에 불과하다. 유엔은 “구테흐스 총장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중재 역할을 맡을 준비를 해 왔다”며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입장이다.

 

관건은 북한의 태도 변화다. 김정은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마감단계에서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뒤 쉴 틈 없이 도발 노선을 달려왔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설득과 압박에 아랑곳 않는 모습을 보였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결의안도 종잇조각처럼 여겼다. 이런 상황에서 펠트먼 차장의 전격적 방북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물꼬가 트이거나 유화국면으로 전환될 것을 기대하는 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려면 핵과 미사일 도발로 제재를 자초하고 유엔과 국제사회를 우롱한 김정은의 결단이 선결과제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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