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이태임, 슬럼프는 끝났다
  • 이예지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2 09:56
  • 호수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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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욕설 논란’ 딛고 복귀작 《품위있는 그녀》로 돌아온 이태임의 고백

 

2년 전 ‘욕설 논란’ 이후 이태임이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은 JTBC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였다. 여기서 그녀는 밉상 불륜녀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다운 정면 돌파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됐다. 때려주고 싶을 만큼 얄미운 캐릭터를 제법 잘 소화해 내면서, 그녀를 향한 질타와 논란도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이로써 이태임의 슬럼프는 끝났다.

 

“그 일(이태임은 2015년 불거졌던 예원과의 욕설 논란을 ‘그 일’이라고 표현했다)이 있은 후 지금까지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을 보냈어요. 사람들이 볼 땐 ‘그까짓 게 뭐 그렇게 힘든 일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시간이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어요.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했죠.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존감을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거의 매일 극장에서 영화를 봤고, 연기 연습을 하면서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어요. 내 안에 독기를 갈고닦았다고 할까요.”

그러던 중 《품위있는 그녀》를 만났다. ‘그 일’이 있은 후 같은 소속사의 다른 배우에게 온 대본을 몰래 보고 감독을 직접 찾아갔다가 번번이 거절당했었던 그녀에게 온 기회였다.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2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놓치고 싶지 않았죠. 《결혼해주세요》 이후 흥행작이 없어 시청률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7년 만에 그 갈증이 모두 해소된 기분이에요. 아무도 저를 캐스팅하지 않을 때, 저를 믿어주신 김우철 감독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배우 이태임 © 사진=우먼센스제공


불륜녀에 밉상 캐릭터라서 ‘또 욕먹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있었을 게다. 지난 시간 동안 악플에 시달렸던 그녀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태임은 의외로 담담했다.

 

“‘왜 얼굴이 그 모양이냐’부터 ‘감정이입이 안 된다’까지 악플의 종류도 다양했어요. 성형 논란도 있었죠. 친구들한테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어요. ‘내가 욕먹는 거엔 해탈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하죠. 네티즌의 악성 댓글,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 이젠 신경 안 쓰여요. 비난에 대처하는 내공이 쌓였달까요(웃음). 오히려 ‘욕을 먹으면 먹을수록 내 연기는 진화하겠지’ 하는 이상한(?) 믿음 같은 것도 있고요.”

그러면서 이태임은 외모에 대한 지적은 여배우니까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숙명적인 거라고 말했다. 몸매나 외모가 부각되면서 관심을 받았던 터라 자신을 향한 대중의 잣대가 더욱 까다롭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보기 좋았다.

 

“이번 작품이 태도 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자신감을 얻었어요. 지난 2년 동안 위축돼 있었고, 자존감도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죠. 뭘 해도 재미없고, 의미 없는 기분이었거든요. 《품위있는 그녀》가 여자로서, 배우로서 제 자존감을 높여줬어요. 주위 사람들도 이런 제 모습을 좋아해 주세요. 표정이 밝아져 그런지 예전에 비해 예뻐진 것 같다는 말도 많이 듣고요. 어두운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밝은 표정이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결국 지난 시간이 그녀에게 약이 된 셈이다.

 

“스스로도 단단해졌음을 느껴요. 전에는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상처받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제 나름대로 중심을 잡으려고 하죠. 결과적으론 2년 전 그 일이, 그리고 그로 인해 혼자 있었던 시간이 저를 강하게 만들었어요. 앞으론 저답게 살고 싶어요. ‘안 되면 될 때까지!’가 가장 저다운 말이죠.”

기자는 2년 전, 그러니까 ‘그 일’이 있은 직후 만났던 이태임을 돌이켜봤다. 그때 그녀는 “연예인이 득보다 실이 많은 직업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힘들어 보였고, 지쳐 보였다. 지금은 ‘그땐 그랬었지 ’하며 웃을 수 있는 여유까지 갖게 됐다.

 

“제가 그런 말을 했었나요? 사실 그땐 멘털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시기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제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없죠. 우리나라에서 여배우로 살기가 어렵다는 생각은 여전해요. 남자 배우들의 영역이 넓고, 반면에 여배우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죠. 톱 여배우들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제 시작인 저는 오죽하겠어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 있었고, 여배우가 일하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텼다. 그녀가 힘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뭘까.

 

“연기가 재미있어요. 연예인이라서 얻는 부와 명예보다 따르는 책임감이 더 무거워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살아 있음을 느껴요. 빤한 이야기지만 나이 들수록 연기 생각뿐이에요. 어렸을 땐 연애·돈·외모를 생각하기에 바빴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더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죠. 어리고 예쁜 여배우는 많으니까 이젠 연기력으로 승부를 봐야 하잖아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이 보여요. ‘내가 왜 저렇게밖에 연기를 못했을까’ 싶은 마음에 쥐구멍으로 숨고 싶어요. 최근엔 한 아역 배우가 연기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나’ 싶어서 자극이 됐죠.”

배우 이태임 © 사진=우먼센스제공


 

“죽기 전에 ‘이태임 수고했다’는 말 듣고 싶어”

 

서른두 살, 한창 일과 미래를 걱정할 나이다. 배우로서 자리 잡은 것 같으면서도 뒤돌아보면 이룬 게 하나도 없고, 이 바닥을 잘 아는 것 같은데도 내공은 얕고,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는데 선배들에 비하면 너무 애송이인 것 같다. 이태임이 딱 그 시기에 놓여 있다. 

 

“이럴 때 주위에 친절하고 똑똑한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태임아, 여기에선 이렇게 걸어야 한다’ ‘이리로 가면 가시밭길이야’ 하고 가르쳐줄 수 있는 그런 멘토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털어놓으라고 했다. 잠시 숨을 고르던 그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믿고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기회를 주신 김우철 감독님께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 더 성숙하고 단단한 이태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죽기 전에 ‘이태임 수고했다’ ‘이태임 멋있다’는 말을 꼭 듣고 싶다는 그녀. 연애보단 연기를, 결혼보단 작품을, 가식보단 실제의 자기를 선택하고 싶다는 그녀가 오늘은 유난히 예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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