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지독한 모순에 빠져버린 북한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7.09.15 17:56
  • 호수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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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허락한 휴대폰, 도리어 정권 옭죄는 수단 될 수도

 

2월13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씨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암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전 세계의 언론들은 김정은 위원장을 배후로 지목했다. 하지만 노동신문 등 북한 언론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배후가 김정은으로 밝혀지면 주민들 사이에서 큰 동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으로 추측되고 있다. 사건 6일 뒤인 2월19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김정남 피살 소식이 북한 내에서 어느 정도 퍼지고 있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의 전달수단으로 지목된 것은 휴대폰이었다.

 

북한 내 휴대폰 사용은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북한은 2008년 12월 이집트의 이동통신사 오라스콤(Orascom)과 손잡고 3G 네트워크망을 구축했다. 오라스콤의 사위라스 회장은 2009년 2월 NHK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휴대폰 가입자는 6000명 정도”라고 밝혔다.

 

조선중앙TV는 2016년 7월25일 북한의 자연박물관과 중앙동물원 준공소식을 전했다. 사진은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던 여학생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기념 촬영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북한 휴대폰 가입자, 8년 만에 500배 넘게 증가

 

이후 북한의 휴대폰 가입자 수는 매년 증가 추세다. 글로벌 소셜마케팅 컨설팅 업체 위아소셜은 올해 1월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휴대폰 가입자는 377만3420명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북한 주민 7명 중 1명이 휴대폰을 쓰고 있는 셈이다. 올해 7월 북한에 다녀온 한국계 네덜란드인 김영일씨(31)는 8월17일 시사저널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평양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쓰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출신의 북한 특사 알레한드로 카오 데 베노스(42)는 9월10일 시사저널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군사지역을 빼면 수년 전부터 북한의 모든 지역에서 휴대폰 사용이 가능해졌다”면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최근 모든 4인 가구가 휴대폰을 최소 2대씩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북한 정권이 최근 휴대폰 통신망을 구축하면서 북한 주민의 휴대폰 사용이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정작 당국으로선 휴대폰이 썩 달갑지 않은 존재다. 외국 문물의 유입통로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8월10일 “해외 영화나 TV쇼를 USB에 담아 북한에 보내는 남한의 비정부기구들은 북한 주민들에게서 특정 콘텐츠를 요구하는 휴대폰 메시지를 많이 받는다”며 “이런 추세는 폐쇄적으로 정권을 유지해 온 북한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상의 시청은 ‘노텔(Notels)’이란 기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텔은 중국산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다. 당초 북한 당국은 노텔의 반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2014년에 판매가 허용돼 지금은 일반 마트에서도 살 수 있게 됐다. 그 배경과 관련해 이코노미스트는 “당국이 눈감아준 암시장에서 주민들이 휴대폰으로 노텔의 가격을 비교하며 거래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텔은 한때 암시장에서 50달러(5만6000원)에 거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북한 당국은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통신망이 이미 구축된 이상 북한 당국이 모든 정보를 차단하고 주민들의 의견 공유를 막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며 “무조건 차단하는 것보다 시장을 열어주고 (주민을) 감시하는 편이 낫다고 당국이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보안 전문가 낫 크레천도 3월2일 로이터에 “북한 주민들이 휴대폰을 접하게 되면서 당국은 주민들이 모바일 기기로 뭘 하는지 원격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크레천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전 세계의 ‘인터넷 감시’를 감시하는 오픈테크놀로지펀드(OTF)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크레천은 3월1일 북한의 디지털화에 관한 보고서 ‘부끄러운 연결(Compromising Connectivity)’을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평양’ 또는 ‘아리랑’이란 이름의 스마트폰을 주민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이들 스마트폰의 운영체제(OS)는 2013년에 한 차례 업데이트됐다. 이 과정에서 ‘서명 시스템(Signature System)’이란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설치됐다. 이후 휴대폰으로 한국 영상이나 K팝 음악 파일을 클릭하면 ‘서명되지 않은 파일입니다’란 메시지가 뜨면서 재생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저절로 지워지기도 했다.

 

또 스마트폰에 기본으로 깔려있는 ‘트레이스뷰어(Trace Viewer)’는 사용자의 인터넷 접속기록을 자동으로 저장한다. 기기 화면을 주기적으로 캡처하기도 한다. 이렇게 모인 자료는 북한 보위부 조사관이 주민들의 스마트폰을 불시에 감시할 때 당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외에 특정 단어가 담긴 문서파일을 추적해 지워버리는 프로그램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4월22일 평양 시민으로 보이는 남성이 북한에서 새로 개설한 온라인 쇼핑 사이트 사용법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시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주민들이 휴대폰 쓰면서 원격 감시 가능해졌다”

 

북한 주민들은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외국 휴대폰을 밀수하기도 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3월 “중국과의 국경 근처에 사는 북한 주민들은 밀반입한 중국산 휴대폰으로 네트워크에 접속한다”고 전했다. 이를 막으려고 국경 근처에 휴대폰 신호 차단기가 설치되기도 했다. 그러자 국산 스마트폰이 유행했다. 데일리NK는 5월1일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당국의 전파방해와 탐지기에 대처하기 쉽다는 소문 때문에 한국산 타치폰(스마트폰)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카카오톡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휴대폰에 대한 북한 당국의 감시망은 더 촘촘해질 전망이다. 주민들이 휴대폰을 통해 정보를 교류할수록, 또 바깥세계를 자주 접할수록 북한 정권의 정통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낫 크레천 오픈테크놀로지펀드 부회장은 3월1일 워싱턴포스트에 “북한에서 통신망이 처음부터 제한됐더라도, 휴대폰은 판도를 바꿔 놓을 기기(game-changing device)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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