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은 세상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에서 출발”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7 11:09
  • 호수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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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대학》 펴낸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

 

‘통섭’(統攝)이라는 개념을 한국에 널리 퍼뜨린 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최근 어린이 책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그동안 60여 권의 책을 번역하고 집필한 그가 처음으로 어린이 책에 도전한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어린이에게 학문의 세계를 소개하는 《어린이 대학》 시리즈인데, 최 교수가 담당한 분야는 당연히 생물 분야다. 하지만 ‘통섭의 교수’니만큼 생물학 지식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학문을 넘나드는 통합적 이해를 할 수 있게 한다.

 

“기초 학문에 대한 탄탄한 이해가 창조적 인재를 키운다. 각 학문들이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고 하루가 다르게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이때, 사람들이 세계를 인식하고 이용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어린이들이 꼭 배워야 할 지식이란 무엇일까? 스스로 정보를 학습하는 인공지능 기술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떤 첨단 과학이 발달할지, 그 과학기술이 우리를 어떤 세상으로 데려갈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강조되는 것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되는 기초 학문이다. 기초 학문에 대한 탄탄한 이해가 바탕이 될 때, 자기 분야밖에 모르는 ‘전문 바보’가 아닌 다양한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창조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 © 사진=뉴시스


 

“이 세상에 어리석은 질문이란 없어”

 

《어린이 대학》 기획위원회는 초등학교 5, 6학년 어린이 150명에게 생물·역사·물리·경제학에 대해 무엇이 궁금한지 설문조사를 했다. 엉뚱한 호기심이 느껴지는 질문, 소박해 보이지만 핵심을 꿰뚫는 질문 등 다채로운 질문이 모였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어린이들이 각 학문과 관련된 현상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400여 개의 질문 중 높은 순위를 기록한 질문, 각 학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주효한 질문 등을 추려 석학에게 물었다. 생물학자 최재천, 역사학자 이만열, 물리학자 오세정, 경제학자 이정전 등 네 명의 석학이 질문을 꼼꼼히 살펴보고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답했다. 최 교수는 어린이들의 소박하지만 매우 현실적인 질문을 들으며, 생명을 사랑하는 따뜻한 생물학자의 탄생을 기대했다.

 

“아이들을 상대로 특강을 하면 완전히 차원이 다른 질문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 세상에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 아이들은 때때로 답하기 민망한 질문도 하지만 묘하게 정곡을 찌르는 질문도 한다. ‘최초의 생명체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라는 질문에는 나는 답을 못한다. 사실 모를 수밖에 없다. 내가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어린이들은 ‘동물도 말을 하나요?’ ‘동물에게도 지능과 감정이 있을까요?’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최 교수는 자신이 생명의 기원을 특별히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라 동물행동학자니까 이런 질문들이 가장 재미있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동물이 말을 하진 않지만 분명 서로 의사를 전달하면서 삶을 영위한다. 정말 신기하고 정교한 방법을 이용해 의사소통을 하는 생물들도 많다. 특히 곤충은 냄새, 즉 화학물질을 이용해 의사소통을 한다. 암컷 누에나방은 짝짓기 철이 되면 ‘봄비콜’이라는 화학물질을 분비하는데, 수컷 누에나방들 사이에서 사랑의 신호로 통한다.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봄비콜의 냄새를 맡고 날아올 정도니까. 또 개미가 의사소통하는 방식도 유명하다. 외분비샘이라는 곳에서 나오는 화학물질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섞어서 신호를 보내는데, 여러 물질을 어떤 비율로 섞느냐에 따라 최종 혼합물의 종류는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개미 입장에서 본다면 오히려 인간의 언어가 답답할지도 모른다.”

최재천, 이은희 지음 창비 펴냄 148쪽 1만2000원


 

“부모가 그런 질문 안 해 봐 아이들 질문에 당황하는 것”

 

최 교수는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생태학 석사학위를,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0여 년간 중남미의 열대를 누비며 동물들의 생태를 탐구한 뒤, 국내로 돌아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명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널리 나누고 실천해 왔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한국생태학회장, 국립생태원 초대원장 등을 지냈고, 현재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대부분의 어린이에게 학문은 막연하고 어렵고 심각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사실 학문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했다.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옛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지금의 사회는 왜 이런 모습인지 등 다양한 궁금증으로부터 학문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질문에 대해 누구나 납득할 만한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하고자 한 노력과 탐구가 쌓여 학문의 체계를 이루었다.”

 

최 교수는 최근 신문 칼럼에 질문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그는 부모들이 질문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질문을 하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당신이 그런 질문을 못했으니 대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랑 책을 읽다 보면 아이가 반드시 질문한다. 부모는 답해 줘야 하는데 그게 꼭 정답이 아니어도 된다. ‘글쎄, 이건 왜 이럴까?’하고 같이 고민해 보는 거다. 아이의 질문에 겁먹을 필요가 없다.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칠 수도 있으니까. 앞서 설명했듯이 나도 최초의 생명체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같이 질문하고 같이 답을 찾아가는 사실이 중요하다. 부모는 아이들이 끊임없이 질문하면, 나를 괴롭히려고 얘가 그러나 하고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다. 내가 정답을 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버려야 대화가 진전된다. 이 질문을 아이들만 하게 하지 말고, 어른들도 늘 하자고 말해 주고 싶다. 왜 이래야 하는지, 세상에 의문을 갖고,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질문하라는 거다. 사람이 살면서 질문을 잘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New Book

 

카테 잉글리시 총론: 16주의 혁명

안정호 지음│좋은땅 펴냄│415쪽│1만8500원

 

2100년까지 국민 75% 이상이 영어로 유창하게 말하도록 하는 저자의 바람은 실현 불가능한 게 아니다. 저자는 지금과 같은 ‘말하기’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쓰기’가 중심이 된 영어 교육을 강조한다. 논리로 무장한 회화가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실전 영어다.​ 

 

 

하루 3분 세계사

김동섭 지음│시공사 펴냄│284쪽│1만4000원

 

 

매일 한 단어로 대화의 품격을 높이는 방법을 설명하는 책이다. 단어의 뿌리를 찾아 역사를 여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대 그리스, 로마, 북유럽 신화나 설화까지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일반적인 역사서와는 다르게 3분 안에 짧은 호흡의 주제 1개를 완독하는 형식을 택했다. 책은 역사뿐 아니라 신화까지 다루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이외수 지음│정태련 그림│해냄 펴냄│240쪽│1만5000원

 

 

30년이 넘도록 나이를 초월해 우정을 나누고 있는 두 작가가 여덟 번째로 함께 만든 이 책에는, ‘치열한 인생, 사랑 하나면 두려울 것 없네’라는 말처럼 험난한 인생을 사랑으로 버텨내리라는 다부진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외수 작가가 매일의 일과를 보내며 집필한 원고는 정태련 화백이 1년여 동안 그려낸 그림 73점과 어우러졌다.​ 

 

 

손으로, 생각하기

매튜 B. 크로포드 지음│사이 펴냄│288쪽│1만4500원

 

 

오늘도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모든 일을 처리했다. 모니터 너머에 실체가 있기는 할까? 그렇게 생각한 한 지식노동자는 모든 지위와 혜택을 포기하고 오토바이 정비공이 되기로 했다. 손으로 실현하는 가치, 육체적 몰입을 통해 얻는 쾌감! 손노동으로 세상과 직접 부딪힐 때, 공허한 삶이 다시금 깨어났다. 저자는 진정한 노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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