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죽음 타살 가능성 크다”
  • 안성모 기자 (asm@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5 14:06
  • 호수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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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사 요청하며 1인 시위 중인 이채윤씨…“부검 결과 시기도 내용도 의심스럽다”

 

충남 홍성에 사는 이채윤씨(여·54)는 8월23일 아침 일찍부터 대전지방검찰청 홍성지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소복을 입은 이씨의 목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큼지막한 푯말이 걸려 있었다. 시위는 다음 날인 8월24일에도 계속됐다. 이날 시위를 마친 이씨는 홍성지청 민원실에 들러 지청장 면담을 요청했다. ‘목숨 걸고 이 시간까지 왔다’며 ‘면담신청을 허락해 주시길 간청드린다’는 손글씨가 담긴 면담신청서를 접수했다.

 

하얀 소복을 입은 중년 여성의 1인 시위. 과연 이씨에게는 어떤 억울한 사연이 있는 것일까. 8월24일 시사저널 기자와 만난 이씨는 수십 건에 이르는 서류 뭉치부터 건넸다. 이씨는 “오빠의 억울한 죽음이 은폐되고 있다”며 “부검 결과를 믿을 수 없고 조작됐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2016년 4월 경찰 입회하에 고 이두열씨를 부검하기 위한 파묘가 진행됐다(왼쪽). 8월24일 대전지방경찰청 홍성지청 정문에서 1인 시위 중인 이채윤씨 © 사진=이채윤씨 제공

 

사망진단서 死因 ‘상세불명의 쇼크’

 

이채윤씨의 둘째 오빠 이아무개씨(사망 당시 62세)는 2015년 12월7일 충남 천안의 한 종합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병원 응급실로 실려온 지 사흘 만에 별다른 조처도 취하지 못한 채 숨졌다. 이씨의 증언과 그가 청와대 및 검찰에 제출한 진정서에 따르면, 당시 담당의사는 “환자의 장기가 다 타서 살아도 살 수가 없다”고 진단했다. 몸에서 독소가 나와 계속 약을 투입하다 보니 장기가 타서 살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평소 지병이랄 게 없었던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80대 후반의 노모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아픈 오빠를 이끌고 병원을 쫓아다녔던 이채윤씨의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나흘 전인 12월3일 저녁 전화상으로 들려오는 오빠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다음 날인 12월4일 오후에 전화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혀가 말린 듯한 소리를 내 무슨 말인지 좀처럼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이씨는 오빠 집으로 차를 몰았다. 안방 문이 잠겨 있어 부엌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가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버르적거리는 오빠의 모습이 보였다. 목말라 하는 오빠에게 줄 물을 가지러 부엌으로 들어서자 싱크대 위에 놓인 막걸리 병이 눈에 들어왔다. ‘상한 막걸리를 드셨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동네 병원을 찾아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의사는 손사래를 치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의료원 응급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담당의사는 “환자의 콩팥이 결딴 났다. 1분1초가 급하다. 큰 병원으로 후송해야 한다”고 했다. 그날 저녁 8시쯤 천안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다. 제대로 된 병명도 없었다. 사망진단서에는 직접 사인으로 ‘상세불명의 쇼크’, 그 원인으로 ‘젖산산증’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틀 뒤인 12월9일 장례를 치렀다. 오빠의 죽음은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둘째 오빠의 죽음에 대해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는 이채윤씨가 8월24일 대전지방경찰청 홍성지청장 면담을 신청하면서 접수한 서류 © 사진=이채윤씨 제공

 

“4월에 나온 부검 결과 확인하고 재수사해야”

 

둘째 오빠의 죽음에 의문을 품었던 이채윤씨가 팔을 걷어붙이게 된 계기는 이듬해인 2016년 2월에 접한 경기도 포천에서 일어난 제초제 살인 사건 뉴스였다. ‘불명’으로 나왔던 오빠의 사인도 ‘독극물에 의한 타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오빠가 사망하기 전 보인 증세가 ‘염산을 마셨을 때 일어나는 전형적인 반응’이라는 의사의 설명도 있었다.

 

이씨는 독성학의 권위자로 알려진 한 대학병원 교수가 운영하는 연구소 홈페이지에 관련 질문을 올렸다. 오빠의 증세를 설명하고 음독 가능성을 물었다. 며칠 뒤 해당 교수가 답변을 올렸다. ‘비전문가가 올린 글만으로 사인을 추정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밝힌 후 ‘독극물 중독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만에 하나 범죄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경찰에 신고해라. 그러면 부검으로 연결될 것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사인을 밝힐 것이다’고 조언했다.

 

이씨는 이 조언에 따르기로 했다. 홍성경찰서에 조사를 요구하고 부검도 실시하기로 마음먹었다. 4월7일 경찰 조사를 받고 1주일 뒤인 4월14일 파묘(破墓)해 다음 날 오빠 시신을 대전국과수로 보냈다. 그런데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부검 결과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담당 경찰에게 수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냈지만 부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렇게 3개월여가 지난 뒤인 7월8일 드디어 부검 결과가 나왔다. 부검감정서에 따르면, 시신이 부패로 인해 일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특기할 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특히 가장 중요한 부분인 독극물 및 약물 성분과 관련해서도 특기할 만한 게 검출되지 않았다. 몇몇 약물 성분이 나왔지만 병원에서 치료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판단됐다. 결국 해당 사건은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됐고 오빠의 죽음은 여전히 ‘원인 불명’이 됐다.

 

그런데 최근 이씨는 정보공개를 통해 국과수로부터 받은 자료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오빠에 대한 부검 결과가 이미 4월에 경찰서로 보내졌다는 것이다. 이씨가 대전국과수의 문서등록대장이라고 제시한 문건에 따르면, 홍성경찰서로부터 부검 감정을 의뢰 받은 날짜가 2016년 4월14일, 홍성경찰서에 감정 의뢰 지연을 통보한 날짜가 6월6일, 홍성경찰서에 감정 의뢰 회보한 날짜가 7월11일로 돼 있다. 이것만 놓고 보면 부검이 지연돼 3개월여 뒤에 결과가 나왔다는 기존 경찰의 설명과 부합된다.

 

문제는 해당 문건을 살펴보면 부검 감정 의뢰 12일 후인 4월26일 날짜로 홍성경찰서에 감정 의뢰 회보한 것으로 나와 있다는 점이다. 이씨는 “7월에야 나왔다는 부검 결과가 4월에 나왔다면 이때 나온 결과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며 “오빠의 사망 원인이 약물이나 독극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4월에 나온 부검 서류를 본 사람이 있고 증언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를 근거로 재수사를 요청하고 있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만큼 수사를 재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홍성경찰서 관계자는 “부검 결과는 4월에 나온 게 아니라 7월에 나왔다”고 밝혔다. 4월26일에 나왔다는 것은 이채윤씨 주장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7월11일에 한 번 나온 것밖에 없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4월에 나온 건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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