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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정부 믿었는데…” 인증제도의 배신

관료의 성과주의와 민간의 영리 욕구가 불신 키웠다

이민우 기자 ㅣ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7(Thu) 09:06:25 | 14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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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주부 박소영씨(34)는 8월30일 집 근처 대형마트에 들렀다가 한참을 망설여야만 했다. 얼마 전 ‘무항생제 친환경’ 인증을 받은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먹거리는 조금 비싸더라도 좀 더 몸에 좋고 덜 유해한 제품을 선호해 왔다.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유기농’ ‘친환경’ ‘무항생제’ 등의 마크가 달려 있는 제품이라면 더 비싸도 선뜻 구매했다. 하지만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엔 정부가 인증한 제품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정부 인증마크들이 눈에 들어왔다. 식품은 물론 대부분의 생활용품에도 온갖 인증마크들이 붙어 있었다. 종류도 너무 다양했다. 한 제품에 3~5가지 인증마크가 붙어 있는 것도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급하게 검색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박씨는 “안전한 먹거리나 생활용품을 알려주기 위해 인증 마크를 하는 게 아닌가”라며 “인증마크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정부 인증, 생필품 유해 논란 때마다 도마에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생리대 유해 화학물질 논란까지 일면서 또다시 ‘케미포비아’(생활 화학제품에 대한 혐오 현상)가 확산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로 들끓었던 케미포비아가 다시 대한민국을 덮친 것이다. 케미포비아의 분노는 곧바로 정부의 인증마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식료품을 구입하다 보면 제품에 HACCP, GAP, PGI, 친환경 인증 등 다양한 인증마크를 확인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안전관리 인증인 HACCP(해썹·Hazard Analysis and Critical Control Point)은 사전 예방적 식품안전관리체계를 거친 제품에 붙는다. 식품의 원재료부터 소비자가 섭취하기 직전의 모든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위해요소를 확인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중요 관리점을 정해 식품 안전성을 확보하는 위생관리체계다. 국제기구에서도 적극 권장하고 있는 인증제도다. 한국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관리하고 있다.

 

계란의 경우 HACCP은 크게 생산·출하 단계와 유통·소비 과정으로 나뉘어 이뤄진다. 닭의 살모넬라균 감염 여부, 사육 과정에서의 항생제 사용 여부 등을 따져 생산·출하 단계에서 농장들이 기준을 만족하면 농장 입구에 ‘HACCP 마크’를 붙여준다. 작년 11월부터는 살충제 잔류검사도 HACCP 인증 기준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이번에 살충제 계란이 나온 농장 중 절반 이상이 ‘안전관리 인증’을 획득한 것으로 나타나 인증체계의 부실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한 생리대 제품에서 인체에 유해한 화학성분이 검출됐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생리대 안전성 논란이 커졌다. 깨끗한나라 생리대 제품 ‘릴리안’도 2013년경 미국 유기농교역협회(OE100)의 친환경 인증을 받은 제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OE100은 오가닉 코튼이 100% 함유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부여하는 민간 인증으로, 3년 이상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면만을 사용해 제품을 만든다는 의미다.

 

비단 최근에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파동 때도 인증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 역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의 ‘KC’(국가통합인증)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제품은 자율안전확인 공산품 중 생활화학가정용품 세정제 안전기준에 적합하다며 기술표준원으로부터 KC 마크를 받았다.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정상 예외 목록에 등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실·자동차 세척제와 함께 일반 세척제 기준을 적용해 안전심사가 진행됐다. 2014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무항생제’ 인증 소·돼지고기 9만 마리에서 항생제가 검출됐다. 지난해에는 KS 인증을 받은 전국 초·중·고 우레탄 트랙과 인조 잔디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중금속이 나왔다.

 

도대체 인증 획득 과정이 어떻길래 사전에 걸러낼 수 없었던 것일까. 최근 천연 향초와 아로마 디퓨저(방향제)를 팔기 위해 KC 인증마크를 받았다는 최아무개씨(여·38)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최씨는 공방을 운영하는 개인사업자다. 세무서엔 간이과세자로 등록돼 있다. 지인으로부터 천연 향초와 디퓨저를 팔기 위해선 KC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절차를 진행했다. 실제로 이 검사를 받지 않고 위해(危害)한 물건을 팔 경우 최대 7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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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인증제도

 

엄청난 처벌 조항과 달리 인증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최씨는 인증을 받을 수 있는 기관 2곳 가운데 수수료가 싼 곳을 택했다. 수수료는 용기 검사 비용까지 포함해 38만~50만원이었다. 최씨는 곧바로 신청서와 원료 물질이 적혀 있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등 각종 서류를 준비한 뒤 검사받을 제품 3개를 들고 인증기관을 찾아갔다. 수수료를 내고 접수한 뒤 한 달 정도 지나자 우편으로 검사 결과가 도착했다. 포름알데하이드, 메탄올, 글리옥상, 벤젠 등이 검출되지 않아 모두 합격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후 최씨는 자신의 제품에 KC 인증마크를 붙여 판매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씨가 판매하는 제품은 안전한 걸까. 답은 ‘아니요’다. 인증제도 자체가 최소한의 안전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인증기관의 연구원으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연구원은 “현재의 인증제도는 검사 항목이 극히 제한돼 있어 ‘일부 위해물질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식으로 해석돼야 한다”며 “100% 안전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시험 항목을 다양하게 늘릴 경우 비용이 급상승한다. 비용이 늘어나면 인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품들이 음성적으로 거래될 수 있다. 이 연구원은 또 “인증을 위한 시제품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인증을 받은 뒤 어떻게 생산하는지 사후 관리하는 제도도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제도 자체를 정부가 주도하면서 민간 업체에 위탁한 것이 인증제도를 건당 수십만~수백만원짜리 ‘인증서 장사’로 변질시킨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공인한 친환경 인증 업무는 실제로 민간 업체가 대행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담당하는 인증 업무도 지난 6월부터 64곳의 민간 업체에 모두 넘겼다. 이미 이전부터 민간 인증 대행업체를 안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인증 업체들은 인증을 내줄 때마다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수익을 위해 더 간단히, 더 많은 인증을 내주고 있다. 나중에 유해성 논란이 벌어져도 특별히 책임을 묻지도 않는다. 당연히 부실 인증으로 이어졌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적발한 민간 업체의 부실 인증 건수만 무려 2639건에 달했다.

 

민간 기관에 위탁하는 구조는 오히려 ‘관피아’(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의 통로가 됐다. 실제로 친환경농산물 인증기관으로 지정된 민간 업체 64곳 중 5곳이 농산물품질관리원 퇴직자가 대표를 맡고 있었다. 또한 인증심사원 649명 중 85명이 농산물품질관리원 출신으로 밝혀졌다.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인증마크는 너무 다양하고 기준이 제각각이다. 한국의 법정 인증제도는 올해 1월말 기준으로 174개나 된다. 이 가운데 법정 의무인증은 71개다. 가장 많이 운영하고 있는 부처는 국토교통부로 무려 30개나 된다. 이어 생필품과 공산품을 관장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23개로 뒤를 이었다. 먹거리 인증을 주로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부는 17개로 4위다. 여기에 국외 인증, 민간 인증까지 더하면 인증제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소비자도 모르는 인증제도

 

법정 인증만 보면, 2000년 72개에 그쳤던 것이 2015년 210개로 늘었다. 그리고 올해 174개로 줄었다. 인증제도가 새로 생겼다가 사라지고 합쳐지는 일이 빈번하다는 의미다. 정부 당국자조차 각 부처에서 담당하는 인증제도를 모두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5년 동안 인증 실적이 전혀 없거나 10건 이하의 실적을 올린 인증제도도 40건이나 된다. 그나마 활성화된 친환경 인증제도도 살충제 계란 사태로 도마에 올랐다.

 

가장 큰 문제는 소비자들이 인증제도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물론 국가기술표준원을 중심으로 국가표준인증 통합정보시스템인 ‘e나라표준인증’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각 부처별로 운영 중인 표준·인증 관련 정보를 통합 제공하기 위해 구축됐다. 하지만 각 인증마크가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어 농림축산식품부의 친환경농축산물 인증 정보를 누르면 인증기관과 소요기간, 비용 등이 안내돼 있다. 인증을 받으려는 공급자에게 필요한 정보다. 사실상 소비자보다는 공급자 위주로 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정부는 왜 공급자 위주의 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을까. 여기에는 인증 업무를 행정적으로 바라보는 관료적 시각이 작용한다. 식품법률연구소 대표인 김태민 변호사는 “정부가 인증제도를 주도하면서 담당 공무원들은 인증 실적, 인지도 등의 성과를 중심으로 사고하게 됐다”며 “정부의 행정 편의적 발상과 관료 중심적 사고, 민간의 무책임 등이 더해져 인증제도에 대한 불신을 키운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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