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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노후화된 공간의 기억 되살려 독창적 문화공간 재탄생한 마포

[김지나의 도시문화기행] 오래된 시설물 꾸며 재탄생시킨 마포 ‘힙 플레이스’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 연구실 연구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1(Fri) 11: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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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는 서울에서 가장 트렌디한 동네 중 하나다. 마포구 합정동에 사는 필자의 지인은 매일같이 자기네 집근처로 놀러오라며 노래를 불러댔는데, 그 성화에 못 이기는 척 하루는 합정역 주변에서 회동을 가졌다. 신난 후배가 이끄는 대로 마포구 서교동 골목길 이곳저곳을 탐색하면서, 그가 그렇게 동네자랑을 해 마지않는 이유를 알겠다 싶었다. 

 

서울의 ‘즐길거리’야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풍요롭겠지만, 마포구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감각적이고 참신한 서울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하지만 마포구의 ‘새로움’은 조금 특별하다. ‘최신식’이어서 새로운 것이 아니라, 거리에 늘어선 가게들이 제각각의 개성을 과시하며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한 풍경으로부터 오는 신선함이 있다. 표준어는 아니지만 ‘힙(hip)’하다는 표현이 있다. 말하자면 ‘최신 유행의 사정에 밝은 혹은 앞서 있는’ 정도의 뜻이다. 마포구의 매력은 이런 ‘힙’한 문화의 최전방이라는 점이다.

 

물론 메트로폴리탄 서울의 발자취를 훔쳐볼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작년에 전(全) 구간이 완공된 ‘경의선숲길’은 마포구 연남동에서부터 용산구 효창동까지는 이어지는 기다란 선형의 공원이다. 경의선숲길이 특별한 것은 옛 경의선 철길의 기억이 공원의 모티브가 됐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져 꽤나 유서 깊은 이 철길은 화려했던 철도시대를 뒤로 하고 한때는 도시의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지역 최고의 명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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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에서 양화대교를 건너다 남쪽으로 내려가다보면 도중에 만날 수 있는 선유도공원도 마찬가지다. 잘 알려져 있듯 이곳은 원래는 하수처리장시설이었는데, 그 구조를 살려 공원을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흉물로 전락할 수도 있었던 이런 도시발달사의 파편들도 소중한 역사이자 자원이라는 생각들이, 도시의 풍경을 더 개성있게 만들고 도시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깃거리가 많은 도시공간이 기발하고 참신한 다른 많은 아이디어의 탄생 요람이 되는 것일테다.

 

마포구는 서울의 서쪽 끝으로, 어떻게 보면 변두리 지역이다. 지금이야 서울의 중요한 부도심이 됐지만, 과거 서울의 외곽지역으로서 수용해야 했던 각종 도시기반시설들이 수명을 다한 이후의 스토리도 흥미진진하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서울이 만들어내는 온갖 쓰레기들을 매립하던 ‘쓰레기 섬’ 난지도의 사연은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마포구에 위치한 한강 하류의 범람원인 난지도는 쓰레기가 계속 쌓이고 쌓여 100미터 높이의 산이 두 개 생겨날 정도였다.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이 쓰레기의 산들은 정비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제 두 개의 쓰레기 산 중 하나는 하늘공원이, 작은 산은 노을공원이 됐다. 쓰레기분리수거가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오늘의 서울에 비춘다면, 난지도에 있었던 쓰레기의 산은 마치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다. 가을을 맞은 하늘공원은 올해도 어김없이 아름다운 억새숲의 자태를 뽐낼 테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밟고 서 있는 땅에 얽힌 지난 15년의 과오를 되돌아보는 좀 더 성숙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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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일 마포구에 숨겨진 또 다른 보물 같은 장소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마포구 월드컵경기장 옆 매봉산 자락에는 우리나라 인터넷 위성지도에 나오지 않는 대규모 시설물이 하나 있다.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서울시에서 석유를 비축하기 위해 만든 다섯 개의 거대한 탱크들이다. 약 7000만 리터의 석유를 저장할 수 있었던 이곳의 이름은 ‘석유비축기지’였지만, 1급 보안시설이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에겐 철저히 비밀의 장소였다. 

 

2002년의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다량의 석유를 저장해놓는 위험시설물을 월드컵경기장 코앞에 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석유비축기지의 이전이 결정됐다. 2000년 12월의 일이다. 그때부터 약 14년의 시간동안 공영주차장으로만 이용되던 이 공간이 ‘문화비축기지’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됐다. 탱크들은 다양한 형태로 리모델링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어떤 탱크는 공연장이 됐고, 어떤 탱크는 전시장이 됐다. 각 탱크들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나온 폐기물들을 모아 6번째 탱크를 새롭게 만들기도 했다. 탱크의 원래 모양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5번 탱크 내에서는 작은 소리도 웅장하게 퍼지는 울림이 인상적이고, 야외공연장으로 변신한 2번 탱크는 마치 고대의 원형극장을 연상케한다. 고지대에 위치해 월드컵경기장과 그 뒤에 펼쳐지는 도시의 빌딩숲이 한 데 어울린 풍경 역시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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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애초부터 사람들에게 개방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문을 닫은 공장이나 낡은 고가도로 같은 공간과는 사정이 다르다. 사람들은 석유비축기지에 아무런 추억도, 애착도 없다. ‘문화비축’이라는 이름이 더 의미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문화비축기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여러 문화기획자들, 예술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공간을 써보도록 할 계획이라 했다. 이제부터 사람들은 이곳에서, 어쩌면 미래세대에게 석유보다 더 필요하고 더 귀중한 자산이 될 ‘서울의 문화’를 비축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서울은 오래된 도시다. 그만큼 낡은 공간도 많지만, 그 낡은 공간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층위도 잘만 활용한다면 보물이 될 수 있다. 노후했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없는 백지로 되돌려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보다, 땅의 기억을 고스란히 살린 결과물은 훨씬 창의적이다. 그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마포로 가보자. 이 도시의 근대가 남긴 것이 비단 경제성장의 영광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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