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넘기면 또 다른 삶이 시작된다”
  • 김철수 가정의학과 전문의·한의사·치매전문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25 16:00
  • 호수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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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가 열심히 치료받아야 하는 이유

 

“이런! 옷이 찢어졌네! 얼굴이 예뻐! 얼굴이 예쁘면 찢어진 옷을 입어도 용서가 돼!”

 

치매에 걸린 지 9년째인 86세 J여사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촬영을 나온 예쁜 PD에게 한 말이다. J여사는 4년 전 왼쪽 골반복합골절, 3년 전에는 오른쪽 고관절골절로 두 번이나 큰 수술을 받았다. 고관절골절 수술을 두 번 받으면 살기 힘들다고 한다. 더구나 고령의 치매 환자인 J여사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였다.

 

첫 수술은 척추 마취로 뇌에 큰 부담을 주지 않아서인지 비교적 쉽게 회복했다. 수술 후 집중적인 뇌세포 재활 치료 덕분인지 오히려 상태가 많이 좋아지면서 입주해 24시간 돌보던 간병인을 내보내고 낮에만 간병하는 사람으로 바꿨다. 상태가 좋아지자 J여사는 매사에 의욕이 넘쳤다. 그러다 손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을 치우겠다는 일념으로 화장실에 들어가다가 미끄러지면서 이번에는 오른쪽 고관절골절상을 입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치료 포기하지 않아 치매 증상 호전

 

척추 마취로는 수술이 불가능해 전신 마취로 수술을 받았다. 이번에는 회복 기간도 길고 상태가 아주 나빠졌다. 요양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독감, 바이러스성 장염, 장출혈, 빈혈 등 크고 작은 병이 들면서 체력이 더욱 고갈되었고, 재활의 기회도 놓쳤다. 수술을 받은 지 몇 달이 지났지만 혼자서 침대에서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식사도 떠먹여야 하며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같은 병실의 할머니를 남자로 혼동하고 딸도 몰라봤다.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나면서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입주 간병인이 돌보았지만 간병하기가 힘들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자꾸 바뀌었다. 다행히 뇌세포 재활 치료 약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면서 사람을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소변을 못 가리고 일어나 앉을 수는 있어도 전혀 걷지는 못했다. 한쪽만 수술을 받았다면 다른 발에 힘을 줄 수 있어서 걷는 데 큰 문제가 없겠지만 양쪽을 수술해 힘을 받을 수 없으니 걷기가 힘들어지고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수술을 담당했던 교수의 배려로 재활 치료를 시도했으나 첫 수술 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치료를 받으니 겨우 일어서서 버티는 연습을 하는 정도에서 조금씩 회복되어 이제는 지팡이에 의존하긴 해도 제법 잘 걷게 되었고, 치매 증상도 많이 호전되어 대소변도 가리고 농담도 하고 노래도 부를 정도가 됐다.

 

오늘은 방송국에서 촬영하러 왔다. 마침 촬영 나온 PD가 3년 전에도 왔던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3년 전과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깜짝 놀라며 좋아했다. 일반적으로 중기 이후의 치매 환자들은 진행이 상당히 빠르기 때문이다. 크나큰 역경을 겪어도 열심히 치료하면 치매의 진행을 늦출 수 있고 좀 더 나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오늘도 J여사는 치매 환자들에게 힘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열심히 촬영에 임했다. 이름이 ‘장금순’이라 현인 선생의 《굳세어라 금순아!》를 불렀다. 모든 치매 환자의 회복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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