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사로잡은 한국 장르 영화
  • 나원정 매거진M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8 10:46
  • 호수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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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작 세 편 중 두 편이 한국영화

 

“《부산행》은 역대 최고 ‘미드나잇 스크리닝’ 작품이다!” 지난해 티에리 프레모 칸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찬사는 빈말이 아니었다. 프랑스 칸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영화 축제, 칸영화제는 매년 4월 중순부터 수일에 걸쳐 각 부문 초청작을 발표한다. 그리고 올해 제70회 칸영화제(5월17~28일)를 한 달여 앞둔 지난 4월13일 영화제 집행위원회가 첫 공개한 초청작 명단에는 무려 다섯 편의 한국영화가 포함됐다. 언론이 앞다퉈 보도한 ‘빅뉴스’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홍상수 감독의 《그 후》가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겨루는 공식 경쟁 부문에 나란히 초청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편의 한국영화가 칸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동시 초청된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오히려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대목은 따로 있다. 올해 전체 세 편의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작 중 두 편이 한국영화로 채워졌다는 사실이다.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불한당》)과 정병길 감독의 《악녀》가 그 주인공이다.

 

미드나잇 스크리닝은 호러·액션·스릴러·미스터리·판타지 등 대중성을 겸비한 장르 영화를 심야에 상영하는 비경쟁 부문이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칸영화제에서 가장 재미있는 영화를 상영하는 부문으로 통하기도 한다. 매년 2~5편의 작품이 상영되는데, 한국영화가 초청된 건 2005년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2008년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2014년 창감독(윤홍승 감독)의 《표적》, 2015년 홍원찬 감독의 《오피스》, 그리고 2016년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에 이어 올해가 여섯 번째다. 그러나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한국영화가 4년 연속, 그것도 한 해에 두 편이 나란히 초청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겸비한 한국형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로서 전 세계에 각인된 것이 2004년의 일이다. 이전까지 홍상수 감독 등 주로 한국 작가주의 감독들의 독립·예술 영화를 주목했던 칸영화제가 한국 장르 영화에 눈길을 돌린 것도 이즈음부터다. 영화제뿐 아니다. 《올드보이》 《달콤한 인생》 《추격자》 등이 잇달아 대중과 평단을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암흑가와 거친 액션이 등장하는 한국 장르 영화를 사려는 해외 바이어도 꾸준히 늘었다. 그러니 국내 1100만 관객을 동원한 좀비 액션 영화 《부산행》이 지난해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후 10분간의 기립 박수를 받을 만큼 큰 화제를 모은 데는 이 영화 자체가 거둔 성취만큼이나 한국 장르 영화가 그간 해외에서 쌓아온 인지도와 흡인력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설경구와 임시완이 주연한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윗 사진)과 김옥빈이 주연을 맡은 정병길 감독의 《악녀》가 나란히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됐다.


 

《불한당》과 《악녀》,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

 

그런데 일각에선 이를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라고 꼬집는다. 최근 한국영화가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서 유난히 두각을 나타내는 현상은 갈수록 액션·스릴러 장르에 편중되고 있는 한국영화계의 고질적인 쏠림 현상의 방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2016년 한국영화 흥행 톱10은 남성 주인공의 스릴러나 재난·액션 블록버스터가 주를 이뤘다. 실제 역사를 토대로 한 시대극과 코미디도 일부 눈에 띄지만, 대부분 앞서 언급한 장르로 분류해도 큰 무리는 없었다. 2015년과 2014년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주인공이거나 드라마를 강조한 흥행작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설경구와 임시완이 주연한 《불한당》 역시 교도소에서 만난 두 남자가 권력을 향한 야망을 불태우는 범죄 액션 영화다. 이 영화로 설경구는 《오아시스》 《박하사탕》 《여행자》에 이어 네 번째, 임시완은 처음으로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게 됐다. 또 다른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작 《악녀》는 다큐멘터리 데뷔작 《우린 액션 배우다》와 극영화 《내가 살인범이다》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액션 스쿨 출신 정병길 감독의 신작이다. 최정예 살인 병기 숙희(김옥빈)를 뒤쫓는 액션 영화다. 하드코어 액션을 강조했고, 이미 2009년 박찬욱 감독의 《박쥐》로 앞서 칸영화제를 찾았던 김옥빈과 신하균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 등이 칸영화제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았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영화가 ‘핫’하고 재미있다고 인식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를 발판으로 더욱 완성도 높고 다양한 신작을 계속 선보여야 한국영화에 대한 해외에서의 위상과 입지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봉 감독은 2006년 《괴물》, 2008년 《도쿄!》, 2009년 《마더》로 칸영화제를 찾았다. 그러나 공식 경쟁 진출은 《옥자》가 처음이다. 《마더》 이후 8년 만의 칸 방문이다. 미국 인터넷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가 전액 투자한 《옥자》는 돼지를 닮은 거대한 동물 옥자와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의 우정, 그리고 다국적 기업에 쫓기는 그들의 거대한 여정을 그리는 독특한 영화다. 안서현·변희봉·윤제문·최우식 등 한국 배우뿐 아니라, 틸다 스윈튼·제이크 질렌할·폴 다노·지안 카를로 에스포지토·스티븐 연·릴리 콜린스 등 할리우드의 스타 배우들이 출연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 넷플릭스

《옥자》의 공식 경쟁 진출에 거는 기대

 

미국과 한국에서 한시적으로 극장 상영될 예정이지만, 《옥자》는 넷플릭스 온라인 스트리밍을 목적으로 만든 영화다. 때문에 ‘극장 예술’로서의 영화 전통을 지켜온 유럽에선 이 영화가 칸영화제 공식 경쟁에 진출한 것을 두고 반발도 있었다. 이에 대해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극장이라는 전통적 매체를 사랑하고, 넷플릭스가 극장 개봉을 결정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옥자》는 ‘거장’ 봉준호 감독의 경이로운 작품”이라고 단언했다. 칸영화제는 작가주의 감독의 예술성 강한 작품들을 선호한다는 인식을 넘어서,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도전적인 이 블록버스터 영화의 완성도와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수상 여부를 떠나, 이러한 지점에서 《옥자》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가장 이목을 독차지하는 화제작이 될 공산이 크다. 이는 국내 영화계에도 적지 않은 자극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홍상수 감독이 2012년 《다른 나라에서》 이후 5년 만에 칸영화제 공식 경쟁에 호명된 것도 반갑다. 《그 후》는 김민희·권해효·조윤희·김새벽 등이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 감독의 또 다른 신작 《클레어의 카메라》는 스페셜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다른 나라에서》의 주연을 맡은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홍 감독이 함께한 두 번째 작품이다. 이로써 홍 감독은 경쟁과 비경쟁 부문을 합쳐 모두 열 편의 영화를 칸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쾌거를 이뤘다. 망상에 빠진 남자가 엉뚱한 일을 저지르는 신동영 감독의 단편 영화 《백천》도 비경쟁 단편 부문에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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