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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굿즈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책

대형 서점가에 부는 ‘굿즈 열풍’, 출판계엔 오히려 ‘독(毒)’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4.21(Fri) 23:58:24 | 14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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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보다가 잽싸게 질렀습니다. 워터보틀이랑 앨리스 트럼프 카드는 정말 예쁘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종이책만 쌓여가서 당황스럽네요.”

 

최근 한 서점에서 책을 구입한 고객이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어떤 책을 읽었는지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사은품을 자랑하는 내용이다.

 

도서정가제로 경품 제공이 불가능해지기 전에는 책 살 때 사은품이 하나 정도는 꼭 따라왔다. 심지어 1+1 행사를 실시하는 출판사도 더러 있었다. 그러던 것이 현행 도서정가제가 ‘10% 할인과 5% 마일리지 적립’ 말고는 사은품 제공을 불허하면서, ‘책 사면서 덤으로 받는 건 없나’ 하고 뭘 더 바라기는 힘들어졌다. 1년여 전 한 출판사가 김훈 작가의 신작 《라면을 끓이며》를 구입하는 독자에게 양은냄비를 제공했다가 출판유통심의위원회로부터 도서정가제 위반 판정을 받은 뒤부터는 출판사에서 실시하는 경품행사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4월13일 알라딘중고서점 서울 종로점에 다양한 굿즈 상품들이 진열돼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사실 책을 구입하면서 다른 것에 눈길이 간다면 ‘독자’가 아니라 그냥 ‘소비자’일 뿐이다. 독자로서 책을 구입하는 사람이라면 덤 상품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출판계는 뭘 더 주어서라도 책을 더 팔아야 하는 절박함을 숨길 수 없었나보다. 최근 몇 개월 사이 각 서점이 출판사와 제휴해 구매 고객에게 ‘굿즈(goods)’를 덤으로 주는 사은행사를 경쟁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굿즈’는 아이돌·영화·드라마·소설·애니메이션 등 문화 장르 전반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해당 장르에 소속된 특정 인물이나 그 장르 및 인물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주제로 제작된 펜던트·수첩·배지 등의 상품과 용품을 뜻한다. 아예 책은 뒷전이고 굿즈에 관심을 가지는 소비자도 많다. SNS에 ‘이번 교보문고 굿즈 보셨어요’라는 글을 올려, 책을 샀다는 사실보다 굿즈를 더 자랑한다. ‘알라딘·교보문고 굿즈 판매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행사가 끝나 구하기 힘든 굿즈를 따로 파는 네티즌도 있다.

 

이런 ‘굿즈 열풍’을 감지한 서점들(인터넷 서점 포함한 대형 서점)은 캐릭터 가방이나 수첩·펜던트 등을 자체 개발해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예상외 반응에 굿즈 코너를 따로 마련하기도 했다. 책을 구입한 고객에게 굿즈를 거의 반값에 살 수 있게 해 준 서점도 있다. 굿즈를 싸게 사기 위해 읽지도 않을 책을 구입하는 고객도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이렇게 각 서점들의 굿즈 마케팅이 효과를 거두자 출판사가 직접 자체 굿즈 제작에 뛰어들기도 했다.

 

‘추천도서’라는 이름으로 이벤트 대상 도서를 제한하는 경우도 있어, 이는 도서정가제를 위반한 혐의가 짙어 보였다. 해당 출판사의 특정 도서에 ‘덤’으로 뭔가 더 들어간 것이 분명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한 서점 관계자는 “회원님의 적립 포인트를 차감하기 때문에 덤이 아니라 교환 형식이다”고 설명했다. 도서정가제 위반 논란을 피하기 위해 대책을 세워 실시하는 사은행사라는 말이다. 사은품 행사 덕분에 독서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굿즈 열풍에 책이 도구로 쓰인 꼴이다.

 

문화비평가로 활동하는 이택광 경희대학교 교수는 “요즘 출판계 이슈 중 하나가 굿즈다. 책을 보기 위한 물건들, 예를 들어서 책갈피라든가 또는 북커버라든가, 필통·책받침대 이런 것들이 딸려 나오기도 하는데, 그 자체에 책이 들어가 한정판 같은 느낌을 준다. 게다가 학생들은 ‘득템’이라고 해서 아이템 수집과 같이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 경우도 책은 읽히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팔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굿즈 열풍을 출판 트렌드로 봐서는 안 돼

 

‘굿즈 열풍’이 ‘독서 열풍’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지는 못해도, 불황에 허덕이는 출판계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일까? 인터넷 서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이벤트 대상 도서의 구매 권수와 액수가 평균 대비 두 배 정도 늘어났다. 이에 대해 한 출판사 관계자는 “서점 측이 공문을 띄워 참여를 종용하는데, 사실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소규모 출판사들과 중소형 규모의 서점에 ‘굿즈 열풍’은 인터넷 서점을 포함한 대형 서점과 큰 출판사들에나 해당하는 ‘먼 나라 이야기’다. 작은 출판사와 작은 서점들은 ‘굿즈’로 유혹하기보다 독자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SNS와 블로그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하거나, 책 속 콘텐츠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소통한다. 책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말하던 미디어를 역으로 홍보에 이용한 것이다.

 

이택광 교수는 책을 안 읽는 풍토라서 출판사도 적응한답시고 예쁜 책이나 굿즈에 눈을 돌리는 세태를 지적했다. 출판계를 위해서 결국은 공공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그는 “공공도서관을 많이 만들어서 출판사가 무슨 책을 내더라도 그 책을 공공도서관에서 사주면 되는 거다. 그러면 독서율도 올라갈 것이고 지금 내가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사지만, 책을 보고 싶으면 도서관에 가서, 그냥 마을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마치 카페에 가듯이 가서 책을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나.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또한 최근의 굿즈 열풍에 휩쓸리는 세태를 출판 트렌드로 보는 것을 경계한다. 그는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독자의 기호와 눈높이는 급변하고 있는데, 출판업은 예전 그대로인 것이 문제다”며 출판의 방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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