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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주자 톺아보기-④] ‘강철수’로 거듭난 안철수 “내 길 간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4차 산업혁명’ 외치는 미래형 지도자 이미지 강점…지지 기반 견고하지 못하고 메시지 일관성 부족

소종섭 편집위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21(Tue) 09:33:28 | 14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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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안철수)가 ‘강철수’ 나아가 ‘독철수’로 거듭나고 있다. 다시 결기를 보이고 있다. 안철수는 2월13일 “그런 말(2012년 대선 때 문 전 대표를 돕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짐승만도 못한 것이다. (대선후보를) 양보했을 뿐만 아니라 도와줬는데 고맙다는 말은커녕 (도와주지 않아) 졌다고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양보한 것 하나만으로도 사실은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게 인간의 기본 도리 아니냐. 동물도 고마움을 안다”고 말했다. 그의 입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센 어조의 말이었다. 문재인 전 대표를 겨냥한 안철수의 공세는 문재인-안철수 구도를 만들기 위한 전략적 노림수로 보인다.

 

사실 최근 안철수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높아가면서 대선 정국이 달아오르고 있음에도 지지도가 좀처럼 두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한국갤럽이 2월7~9일 전국 성인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월1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안철수는 대선 주자 지지도에서 7%를 얻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에 이어 5위다. 한때는 안풍(安風)의 주체였는데 지금은 군소 후보로 떨어진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안철수는 “이번 대선은 문재인과 안철수의 대결이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이 상태라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는 상황이다. 그가 결기를 보이며 지지도 선두를 달리는 문 전 대표에 대한 대공세에 나선 배경이다.

 

안철수가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대선판의 구도가 어떻게 짜이느냐가 중요해 보인다. 문재인 전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된다면 그가 움직일 공간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안희정 충남지사가 후보가 된다면 안철수로서는 공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안철수는 과연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인가.

 

2월8일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교육혁명 토론회’에 참석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 시사저널 박은숙


공대 가고 싶었으나 부친 권유로 의대 진학

 

안철수는 1962년 2월26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2남1녀 중 장남이었다. 부친 안영모는 서울대를 졸업한 의사였다. 1963년 부산 동구 범천동에 의원을 연 그는 49년 동안 그곳에서 진료 활동을 했다.

 

어릴 적 내성적이었던 안철수는 부산 동성초교에 다닐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었다. 목차는 다 외울 정도로 읽고 책 뒤쪽에 있는 출판사 이름과 주소, 책 가격까지 확인하며 읽었을 정도로 철저(?)하게 읽은 것으로 알려졌다. 《행복바이러스 안철수》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어머니에게 새들이 알을 품으면 새끼가 태어난다고 들은 안철수는 이 말의 사실 여부가 궁금했다. 부엌 찬장에서 메추리알 몇 개를 꺼내와 이불 속에 품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알이 모두 깨어져 있었다. 내 최초의 꿈이 깨어졌다.”

 

부산 중앙중학교와 부산고등학교 시절에는 한국 소설을 많이 읽었다. 단편보다는 장편소설을 즐겼고 서양 고전도 숙독했다. 오늘의 안철수를 만든 거름은 책읽기였다. 중학생 시절 안철수는 《학생과학》 《라디오와 모형》 같은 잡지의 열혈 독자였다. 그러나 방송에 나와 “성적표에 ‘수’가 보인 게 이름 철수의 ‘수’뿐”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을 정도로 성적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부산고 2학년 때부터 성적이 수직 상승했다. 당시 안철수의 IQ는 145였다. 안철수는 “어떤 일에 몰입하면 무아지경에 빠질 정도로 집중력이 좋았다”고 했다.

 

안철수는 공과대학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부친은 의대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해 기초의학을 전공했다. 이와 관련해 안철수는 이렇게 말했다. “피를 끔찍하게 싫어하던 내가 아버지가 좋아하실 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의과대학에 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다.”

 

1982년 그는 컴퓨터를 처음 접하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1986년에는 3개월간 모은 조교 월급에 빌린 돈을 보태 개인용 컴퓨터를 사기도 했다. 의대 재학 시절 본과 1학년을 마쳤을 때 방황이 찾아왔다.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어 학교에 다니기 싫어진 것이다. 고향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모든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결심으로 다시 서울로 왔다. 안철수는 이 시기를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기억한다. 그가 봉사활동에 나선 것은 이런 방황과 관련이 있다. 본과 2학년 때부터 3년간 서울 구로동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안철수는 “소설보다 잔인한 비극을 경험했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각자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깊어졌다”고 이 시기의 깨달음에 대해 토로한 적이 있다. 불평등한 경제 구조와 한국 사회 부조리를 인식한 것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2012년 11월21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2012 후보 단일화 토론회’에 참석해 악수한 뒤 각자의 자리로 향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서울대 의대 1년 후배 김미경 교수와 결혼

 

1988년 당시 의대 박사 과정에 있었던 그는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해 보도한 신문기사를 보고 호기심에 바이러스를 치료할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해 6월 V3의 첫 번째 버전인 첫 백신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컴퓨터 관련 잡지에 이름이 보도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해에 안철수는 서울대 의대 1년 후배인 김미경 서울대 의대 교수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도서관 자리를 맡아주며 연애를 시작해 의료봉사를 하며 가까워졌다. 안철수는 김미경에 대해 “첫사랑이자, 늘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김미경은 안철수에 대해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내용, 콘텐츠가 굉장히 풍부하고 학습 능력이 있고 일을 굉장히 열심히 하는 지도자다. 남편이 거의 그와 같은, 혹 어쩌면 그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외동딸 설희씨가 있다.

 

대학을 졸업한 안철수는 1989~91년에 단국대 의과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이때 의과대학 최초의 의대생을 위한 컴퓨터 강좌인 ‘의학 컴퓨터’라는 과목을 개설해 강의했다. 1991년 30세에 해군 군의관으로 입대했다. 입대 당일까지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다가 입대했다. 군의관 시절 책상 하나가 겨우 들어가고 남은 자리에 이불을 펴면 여유 공간이 없는 방에서 생활했지만 컴퓨터와 관련한 원고를 쓰고 백신을 만들면서 군 시절을 보냈다.

 

제대 이후 컴퓨터 바이러스와 백신 연구에 몰두해 1995년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러나 경영은 쉽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줄 월급 걱정에 밤을 새웠다. 부인 김미경 서울대 의대 교수 월급에 손을 댔다. 안철수는 “월말에 월급 줄 돈을 마련하느라 은행에 ‘어음깡’을 하러 가곤 했다. 창구 직원이 좋아하는 소보로빵을 사들고 갔다”고 회고했다.

 

2012년 11월23일 안철수 대선후보가 후보를 사퇴한다고 밝힌 후 서울 공평동 캠프 관계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안철수연구소 설립해 백신 연구 몰두

 

1997년 안철수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거대 백신 소프트웨어 회사인 맥아피의 오너로부터 귀가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1000만 달러를 줄 테니 안철수연구소를 내게 팔라”는 것이었다. 큰돈이었지만 안철수는 거절했다. “그들의 생각대로 한다면 내가 받을 수 있는 것은 돈밖에 없었고, 남는 것은 직원들의 해고와 우리가 애써 개발한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것뿐이었다”는 게 이유였다.

1999년 4월 한국에서 수십만 대의 컴퓨터가 감염된 체르노빌 바이러스 사태를 계기로 안철수연구소의 매출이 급성장하면서 경영 어려움에서 벗어났다. 2001년 연구소는 코스닥에 상장됐고 2004년에 매출 300억원을 넘어섰다.

 

2005년 3월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2008년 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2008년 귀국한 뒤에는 KAIST 석좌교수로 기업가 정신을 가르쳤다. 2009년 6월 MBC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면서부터 대중적 관심을 모았다. 2011년에는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차세대융합기술원장을 맡았다.

 

 

‘안철수 바람’ 2012년 대선 출마, 단일화 고배

 

2011년 9월6일. 당시 지지율 50%를 넘던 안철수는 5% 지지율의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게 조건 없이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안철수 현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정치권에 거세게 불어 닥친 ‘안풍(安風)’은 ‘박근혜 대세론’을 흔들기 시작했다. 2012년 9월19일 대선 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2012년 문재인과 단일화에 합의했고 결국 문재인이 대선후보가 됐다. 대선 투표 당일 미국으로 가 2013년 3월 귀국했다. 그해 4월 서울 노원 병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했고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를 지낸 뒤 탈당해 2016년 2월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안철수의 최대 강점은 성공한 벤처사업가 출신이라는 점이다. 일자리 창출, 나라의 향후 먹거리 문제에 대해 할 말이 있다. 4차 산업혁명 등 미래를 열어갈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그는 ‘미래지향형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안철수는 이와 관련해 대중에게 뚜렷한 메시지를 각인시키고 있지는 못하다.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토론회에 참석하고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정치적으로 브랜드화할 만한 이미지가 약하다. 주목되는 이슈인 학제 개편도 같은 맥락이다. 전반적으로 경제전문가, 미래형 지도자로서의 이미지 포지셔닝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강점인 ‘중도 실용’ 노선은 크게 흔들렸다. 사드 배치와 관련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안철수는 2016년 7월 “사드 배치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며 사드 배치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당은 사드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다. 그런데 최근 안철수는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이미 사드 배치 협약을 맺었다. 이를 함부로 뒤집는 것은 국가 간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상황이 달라졌는데 입장이 그대로라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라고 해명하기는 했지만 ‘중도 실용’ 노선에 흠집이 난 것도 사실이다.

 

그러는 사이에 ‘중도 실용’ 노선 공간은 안희정 충남지사가 치고 들어갔다. 안철수는 다시 이 공간을 보고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결국 안희정이 문재인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대선 본선에서 중도 보수 공간을 차지할 후보는 자신밖에 없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듯하다.

 

2011년 9월6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 기자회견에서 포옹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2016년 국민의당 창당, 대선 도전

 

38석이라는 의석을 가진 국민의당을 창당한 주역이라는 점도 안철수가 갖고 있는 강점이다. ‘만들어본 적이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정치적 창업가인 셈이다. 안철수가 “우리나라 정치 역사상 혼자 창당해 40석 가까운 자리를 만든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3김’과 제가 거기 포함될 것이다. 정치적 돌파력이나 리더십은 국민들 앞에 증명했다”고 자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약점으로 꼽히기도 한다. 안철수는 국민의당 내 호남 세력을 장악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 지도부와 다른 의견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노출되곤 했기 때문이다. 일단 ‘자강론’으로 정리되기는 했다. 하지만 ‘자강론’과 ‘연정론’을 둘러싸고 나타났던 불협화음이 한 사례다.

 

또 안철수가 취하는 중도 실용 노선이 호남 지지층이 갖고 있는 생각과 일정한 괴리가 있는 것도 부담이다. 이런 점들은 안철수 지지 기반이 여전히 강고하지 못하다는 점을 말해 준다. ‘안철수의 딜레마’라고 할 만하다. 오락가락했던 ‘중도 실용 노선’ 사례에서처럼 메시지 관리가 치밀하지 못한 것도 눈에 띈다.

 

한때 ‘소통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소통 능력에 의문을 갖게 한다.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캠프 상황실장을 지내며 안철수의 ‘입’ 역할을 했던 금태섭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는 책에서 당시 안철수 캠프의 불통을 강도 높게 지적했던 것이 상징적이다. 안철수의 비서관을 지냈던 인사도 비슷한 비판을 한 적이 있다.

 

안철수는 탄핵이 인용되면 상황이 급변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대선 직전 90~100일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나는 끝까지 완주하고 연대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국민들이 연대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철수의 도전 의지는 강해 보인다. 탄핵 이후 보수층의 상황 변화가 어떻게 펼쳐지느냐, 민주당 후보가 누가 되느냐가 안철수의 대선 승리 여부를 가를 핵심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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