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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최순실, 국세청 움직여 기업 발목 잡았다”

이민우 기자 ㅣ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11.21(Mon) 11:51:54 | 14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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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일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한 사무실에 두 명의 남성이 찾아왔다. 36세 장아무개씨와 그의 상사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이들이 찾은 곳은 특정국가 내 각종 정보 조사를 대행하는 ‘라이언앤폭스 컨설팅’ 사무실이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 재력가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추후 이들의 신분은 국세청 직원으로 확인됐다.

 

민간인으로 위장한 국세청 직원들은 두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 여권번호, 해외 주소 등이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그리곤 두 사람의 금융자산 및 부동산 보유 내역, 한 페이퍼 컴퍼니의 주주 내역과 재무제표 등을 조사해 달라고 의뢰했다. 대한항공 부회장을 지냈던 조중건씨와 그의 부인 이영학씨였다. 조중건씨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작은아버지다. 이들에 대한 정보가 왜 필요한 것인지 묻자 “우리도 시키는 대로만 하는 사람들”이라며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그러면서 “돈은 충분하니 제대로 된 정보만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국세청이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사태와 연관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국세청은 민간기업에 재벌 일가의 해외 계좌 추적을 의뢰하기도 했다. © 연합뉴스·시사저널 임준선


국세청의 수상한 재벌 조사

 

계약금액은 7500달러, 한화로 863만원이었다. 계약서 작성이 끝나자 이들은 검은 가방에서 5만원권 뭉치를 꺼내더니 현금 865만원을 곧바로 지급했다. 영수증을 발급하려 하자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 거스름돈도 마찬가지였다. 라이언앤폭스는 이후 조씨 부부와 친인척 등이 보유하고 있는 2400만 달러(약 266억원) 상당의 재산 내역을 이들에게 제공했다.

 

정체불명의 두 남성은 조씨 부부에 대한 거래가 끝나자 또 다른 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특정 금융기관의 계좌 잔액과 거래 내역 등을 요구했다. 여기에다 계좌의 잔액과 거래 내역 등을 조회한 금융정보 화면을 카메라로 찍어달라거나 해당 금융기관에서 직접 발급한 공식 조회 서류를 확보해 달라고 요구했다. 현지법에 저촉되는 내용이었다.

 

라이언앤폭스 측은 의뢰 내용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한 뒤 의뢰 내용을 수정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은 반복적으로 불법조사를 종용했다. 결국 현지법에 저촉되는 정보 조사를 할 수 없다는 라이언앤폭스 측과 관련 근거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양측의 입장 차이로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세청 담당자는 “정당한 정보활동”이었다며 “국익을 위해 해외 재산을 찾아 불법 행위를 밝히는 것이 담당 부서의 역할”이라는 입장이다. 특정인 계좌에 주목한 배경에 대해선 “정보활동의 개별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도록 돼 있다”며 “다양한 경로로 입수된 단서를 기초로 혐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민간 정보업체 라이언앤폭스는 지난 6월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의 해외 은행 계좌 정보를 확인했다. © AP연합


‘수상한 조사’ 배후로 최순실 지목

 

하지만 해외의 계좌 정보를 국내의 민간 정보업체에 의뢰한 점은 여전히 의심이 남는 대목이다. 국세청은 해외 탈세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10개국에 21명의 세정요원을 파견해 운용하고 있다. 국세청은 해외 파견 세정요원의 숫자를 2011년 9명에서 2012년 14명, 2013년 16명, 2014년 21명으로 꾸준히 늘려왔다. 이들의 현지 체류비와 정보 조사비는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국세청은 왜 이들을 활용하지 않고 국내의 민간 정보업체에 수백만원의 비용을 지불했을까. 특히 신분까지 속여야 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보안이 요구되는 업무임을 감안하면 더욱 수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의미한 증언이 나왔다. 최순실씨와 그의 측근 인사들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협박 및 회유 카드로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 같은 소문이 파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ㅍ기업이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당하고 ㅎ기업에 대한 계좌 추적이 이뤄지면서 미르·K스포츠 재단과 연관성이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며 “당시 특정 인물이 배경에 있다는 생각을 못했지만 최근 뉴스를 보면서 최순실이라는 인물을 연관시키니 그림이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일부 기업이나 재벌 일가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 수상한 뒷조사의 배경에 ‘국정 농단’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최순실씨가 있다는 의미다.

 

국세청으로부터 재벌 일가의 해외 재산 추적을 의뢰받았던 김웅 라이언앤폭스 대표도 배후로 최순실씨를 지목했다. 그는 “미르·K스포츠 재단의 강제 모금을 말로 다 끝냈을 수 있었을까”라며 “실제적인 위협이 있어야 겁을 먹고 알아서 토해 내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최순실 게이트’의 국세청 연루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여러 정황도 발견됐다. 최순실씨의 최측근으로 최근 구속된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의 경우 세무조사를 빌미로 회사 인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차씨의 측근인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포스코 계열 광고회사 ‘포레카’를 인수한 A사 대표에게 지분 80%를 넘기지 않으면 회사는 물론 광고주까지 세무조사를 받도록 하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K스포츠재단 회의록에 따르면, 재단 관계자는 올해 초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을 만나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순실씨가 자주 이용했던 서울 강남 A성형외과와 특허권 분쟁을 벌이던 중소업체는 2015년 10월 세무조사를 받았다. 또한 성형외과의 중동 진출을 컨설팅한 업체의 대표는 사업이 무산된 뒤 회사와 함께 자신의 친인척까지 ‘보복 세무조사’를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양호 회장은 11월3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갑작스레 물러난 배경에 최순실씨가 있다는 보도에 대해 “언론에 다 나왔는데 언론에 나온 게 90% 맞다”고 말한 바 있다. 수억원대 이권이 걸린 사업 예산들을 거부하면서 정권 ‘실세’에게 미운털이 박힌 조 회장이 결국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의해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라는 압박을 받았다는 증언도 있었다.

 

이와 관련, 국세청은 “최순실씨와 관련된 내용은 보도를 통해 확인하고 있지만 외압에 의한 조사는 있을 수 없다”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재벌 불법조사 배후에 최순실 있었다”

국세청 해외 계좌 추적 의뢰받은 김웅 라이언앤폭스 대표  

 

국세청으로부터 재벌 일가의 해외재산 조사 의뢰를 받은 김웅 라이언앤폭스 대표는 11월17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해당 국가에 공식적으로 요청하면 될 것을 비공식적으로 조사하는 것은 ‘저의’가 있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KBS 보도본부 기자 출신인 그는 “국세청이 왜 이들의 해외재산 조사를 의뢰했는지 당시에는 의문이었지만 ‘최순실 게이트’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석연찮은 이유로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사퇴하고 계열사인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넘어가는 것을 보고 재벌 ‘압박용’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 시사저널 임준선


국세청은 정상적인 활동이었다고 주장한다.

 

“2012년 2월 국회에서 비준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심의 다자간 조세행정공조협약이 있다. 이를 근거로 해당 국가에 정보제공을 요청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현금더미’를 건네고 민간정보회사를 통해 사문서 위조, 제3자 명의도용까지 해 가며 대기업 총수 일가의 해외재산을 조사하려 한 것은 공식적으로 처리하지 못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해외 은닉 재산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나.

 

“혹시 해외에 있는 현금이나 부동산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세금을 매겼다는 얘기 들어봤나. 해외로 빼돌려진 대기업 회장들의 재산을 찾아내도 뭘 어찌 할 방법이 없다. 압류를 할 수도 없고 강제집행에 나설 수도 없다. 우리나라와 해당 국가는 ‘징수공조협약’이 체결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왜 세무조사나 검찰 고발이라는 정공법을 택하지 않고 사문서까지 위조해 가면서 민간기관을 동원해 불법적인 정보 수집에 나섰을까.”

 

실제로 재산 추적은 이뤄졌나.

 

“지난 6월 한솔그룹 조동길 회장의 해외 현지 계좌에 39만5000달러가 예치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두 군데 지점에서 동일한 잔액이 확인됐으니 신뢰수준이 아주 높은 정보다. 두 지점 모두 조 회장의 미국 주소지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조 회장은 지난 6월에 마지막으로 31만 달러를 예치했다. 물론 조사 시점 이후에 추가로 예치했거나 인출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다른 지역의 은행에서도 계좌 두 개가 발견됐다.”

 

국세청이 왜 비공식적 조사를 의뢰했을까.

 

“최근 ‘최순실 사태’을 접하면서 국세청의 무능이 아니라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의 강제 모금을 말로 다 끝낼 수 있었을까. 대통령이 했든 경제수석이 했든 구두상 위협만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까. ‘작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위협이 필요했을 것이다. 당시 조사된 조중건 부부의 미국 내 재산은 약 2400만 달러, 우리 돈 266억원 수준이었다. 아주 공교롭게도 국세청이 조사를 의뢰했던 5월3일 조양호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외압으로 퇴출됐다. 석 달 뒤 한진해운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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