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검증’의 단골손님 ‘최태민’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6.10.24 19:48
  • 호수 14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태민 목사 가계도, 박근혜 대통령과 어떻게 얽혀 있나

“의혹은 많이 제기됐지만 실체가 없다고 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이력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이름이 있다. 고(故) 최태민 목사다.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박 대통령은 최 목사와 관련한 의혹을 “실체가 없다”며 일축했지만, 의혹은 최 목사의 딸과 사위로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최근 ‘비선 실세’ 논란에 휘말린 최순실씨(최서원으로 개명)는 최 목사의 다섯째 딸이다. 최 목사가 생전에 가장 아꼈던 딸이었다고 한다. 이는 최순실씨가 소유한 강남 빌딩 등 재산이 아버지 최 목사로부터 물려받은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비선 실세’ 의혹도 같은 맥락에서 제기된다. 최순실씨가 고인이 된 아버지의 대를 이어 박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필해 온 것 아니냐는 것이다.

 

 

1977년 3월16일 새마음궐기대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 구국봉사단 총재(오른쪽)의 안내를 받고 있다. © 뉴스뱅크이미지

“최태민씨에게 포위당한 언니 박근혜”

 

최순실씨가 ‘비선 실세’ 논란의 핵심 인물로 떠오르면서 아버지 최태민 목사를 비롯한 그의 가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먼저 최 목사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베일에 가려졌던 그의 실체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수사 자료’와 1980년 계엄사 합동수사본부가 작성한 ‘조사 자료’ 등이 공개되면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191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난 최 목사는 1950년 한국전쟁 전에는 경찰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잠시 군에서 문관으로 일하다가 사업에 뛰어들어 대한비누공업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1950년대 중반에는 돌연 승려가 되는가 하면, 경남 양산의 한 중학교에서 교장을 맡기도 했다. 1965년 유가증권위조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기도 한 그는 1973년 독단적인 교단을 운영하면서 목사로 신분을 바꿨다.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육영수 여사가 세상을 떠난 1974년께였다. 최 목사가 상심에 빠진 박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서신을 보낸 게 계기가 됐다. 이 서신 내용을 두고도 뒷말이 나돌았다. 《김형욱 회고록》에 따르면, 최 목사는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 달라고 했다’는 내용의 서신을 박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런 뜻’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딸 박근혜를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이듬해인 1975년 대통령 큰영애(令愛) 박근혜를 접견한 최 목사는 곧바로 ‘대한구국선교단’ 설립을 주도했다. 최 목사가 총재를 맡고 박근혜가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이 단체는 1976년 ‘구국여성봉사단’에 이어 1979년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중앙정보부의 ‘수사 자료’에 따르면, 최 목사는 이 단체의 업무를 사실상 총괄하면서 기업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거두고 조직을 확대해 수백만 명의 단원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사기와 횡령 등 각종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나와 있다. ‘수사 자료’ 작성을 주도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10·26 뒤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보충서 중 ‘구국여성봉사단과 연관한 큰영애의 문제’에서 “이 문제가 10·26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이지만 중요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최 목사가 언론의 주목을 다시 받은 것은 1990년 육영재단 운영권을 둘러싸고 박 대통령과 동생 박근령씨가 마찰을 빚을 때였다. 당시 박근령씨를 지지하던 숭모회 회원들은 재단 고문을 맡고 있던 최 목사의 전횡을 비난하며 그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들은 최 목사가 육영재단의 각종 사업을 배후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근령씨는 “사기꾼 최태민을 엄벌해 최태민씨에게 포위당한 언니 박근혜를 전직 국가원수 유족 보호 차원에서 구출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하기도 했다. 최 목사는 이로부터 4년 뒤인 1994년 지병인 만성신부전증으로 사망했다.

 

 

최순실 3남6녀 중 5녀, 언니 딸도 승마선수

 

최태민 목사의 가계도 역시 베일에 가려져 있다. 최 목사가 결혼을 다섯 차례 했고 이들 사이에 3남6녀를 뒀다는 정도만 알려졌다. 월간조선 2007년 7월호에 따르면, 최 목사는 첫째 부인과 사이에 장남을, 둘째 부인과 사이에 딸과 아들을, 셋째 부인과 사이에 딸을 낳았다. 그리고 넷째 부인과 사이에 아들을, 다섯째 부인과 사이에 네 딸을 뒀다. 최순실씨는 최 목사가 마지막에 결혼한 부인 임아무개씨와 사이에 둔 다섯 번째 딸이다.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씨와 결혼해 딸 정유라(정유연에서 개명)를 뒀다. 최씨와 정씨는 2014년 5월 이혼했다. 

 

최씨뿐 아니라 그의 자매들이 보유한 부동산도 아버지 최 목사의 재산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최씨의 동생인 막내 최순○씨는 서아무개씨와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용산구 한남동 빌라와 청담동 빌딩을 소유하고 있었다. 최씨의 바로 위 언니인 최순○씨는 기업가인 장아무개씨와 결혼했는데 강남구 도곡동에 빌라를 갖고 있었다. 최근 특혜 논란에 휩싸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가 승마를 하게 된 계기가 승마선수였던 이종사촌 언니를 따라다니면서였는데 이 언니가 장씨의 딸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의 딸은 마장마술 고교 랭킹 1위를 지낸 유망주로, 정유라와 마찬가지로 마장마술 선수였다. 승마협회 고위직을 지낸 박아무개씨는 “(정유라가) 초등학교 때 뚝섬 서울승마장에 승마선수인 사촌 언니를 따라와 말을 타게 됐다”며 “(정윤회·최순실 부부를) 그때 뵙고 나중에 과천과 상주에서 뵙고 그랬다”고 말했다.

 

최씨의 큰언니인 최순○씨는 어머니 임씨의 전 남편 소생으로 알려졌다. 아버지인 최 목사에게는 의붓딸인 셈이다. 그의 친오빠인 조순제씨를 두고도 의혹이 제기됐다. 최 목사는 자신의 성을 따르지 않은 의붓아들 조씨를 친아들처럼 대했다고 한다. 조씨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박 대통령이 검증청문회에서 자신을 모른다고 증언하자 “나를 모른다고 했던 부분은 물론 최씨(최태민 목사)와 관련된 진술은 대부분 거짓말”이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당에 제출했다. 조씨는 “75년 구국선교단을 시작으로 80년 새마음봉사단에 이르기까지 박 후보(박근혜 대통령)가 몸담았던 봉사단체는 박 후보와 최 목사, 그리고 나 이렇게 3인 협의체제로 운영됐다”고 주장했다. 실제 조씨는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지낸 영남대재단 운영에 깊이 관여했고, 역시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았던 한국문화재단에서 이사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