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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재벌 이익단체 넘어 정경유착 끝판왕까지

1961년 발족 후 최대 위기 맞은 전경련 최근 ‘해체론’ 급속히 확산

한광범 시사저널e. 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0.11(Tue) 13:07:44 | 14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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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1961년 1월 만들어진 한국경제협의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경제협의회는 일본 게이단렌(經團聯·일본경제단체연합회 약칭)을 모델로 삼았다. 발족 당시 ‘(재계) 공동의 힘으로 정치와 관권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다시는 부정축재의 온상이 되는 일이 없도록 자주 역량을 조성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 분위기에 맞춘 재계의 움직임이었다. 초대 회장은 삼양그룹 창업주이자 인촌 김성수의 동생인 김연수였다.

 

 

군사정권 ‘입맛’ 맞춰 탄생

 

같은 해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한국경제협의회를 해체했다. 재계는 빠르게 군사정권 움직임에 발을 맞췄다. 그해 7월17일 경제재건촉진회를 발족시킨 것. 당시 박정희 정권이 최고 의결기관을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하는 등 ‘재건’을 전면에 내세운 데 따른 것이었다. 경제재건촉진회는 창립 취지문에 ‘기간산업건설 실천기구’를 자임했다. 아울러 ‘정치와 관권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겠다’는 한국경제협의회 목표와 달리 정권에 얽매인 단체였다. 이 같은 이유로 참여 경제인도 매우 적었다. 한국경제협의회엔 당시 대표적 기업인 70여 명이 참석한 데 비해 재건촉진회에는 이병철 삼성 회장 등 13명에 불과했다. 김연수 회장을 비롯한 주요 재계 인사들은 합류조차 하지 않았다. 군사정권은 부정축재 해소를 앞세워 참여 기업을 거세게 압박했다. 김입삼 전 전경련 고문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5·16 군사정부가 국민 불만을 배출하는 도구로 이(부정축재자 문제)를 이용했다는 것이 옳은 시각”이라며 “군사정부는 기업인들을 한번 단죄함으로써 경제건설의 수족으로 삼으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전 고문은 1962년 10월부터 1년간 재건촉진회 후신인 한국경제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1971년부터 10년 동안 전경련 상근부회장을 역임했다.

 

10월5일 국회 정무위와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800억원대 기금을 출연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해체 주장이 쏟아졌다. © 연합뉴스


재건촉진회는 창립 한 달 만인 8월16일 이름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꿨다. 부정축재자 위주였던 회원도 재계 인사들이 대거 합류해 설립 5년 후엔 회원이 80명을 넘기게 됐다. 국내 내로라하는 모든 재벌이 합류하며 명실상부한 최고 경제단체가 됐다. 초기 일방적으로 굴복적이었던 군사정권과의 관계에서도 차츰 지위가 오르며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성명을 내는 데까지 발전하게 됐다. 이 같은 군사정권과 한국경제인협회의 협력은 ‘정경유착’이라는 한국사회 고질병을 뿌리내리게 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968년 3월 명칭을 현재의 전국경제인연합회로 개칭했다. 전경련은 당시 명칭 변경 사유에 대해 “회원과 활동이 사실상 전국적으로 확대됐고 그 규모도 비대해져 명실공히 한국 제일의 경제단체를 자처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경련은 스스로 밝힌 대로 이후 재계 이익단체로서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재벌의 목소리를 강력하게 대변했다. 정부·재계 간 의견 조율 창구 역할로 산업화에 일조했다는 긍정적 측면마저 정경유착이라는 부정적 요소에 가려져버렸다.

 

1987년 민주화운동과 1993년 김영삼 정부의 등장으로 군사정권이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정치권력의 힘은 약해졌다. 재계도 정치권력의 종속에서 벗어나게 됐다. 주요 그룹 회장들이 모여 진행하는 전경련 회장단 회의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사회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언제나 행동대장은 전경련이었다. 재벌의 입장은 언제나 전경련을 통해 전달됐다. 실제 1995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파문이 불거지자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주요 그룹의 회장들은 전경련 회장단 회의 후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경련은 정부의 각종 규제 정책에 늘 딴죽을 걸었다. 사실상 ‘모든 규제는 악’이라는 태도로 일관하며 비난을 자초했다. 한국 정부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3주 전인 1997년 11월 중순 전경련 회장단은 경제난 원인을 엉뚱하게 금융실명제에서 찾으며 이를 유보하자고 제안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앞서 5년 전 금융실명제 실시 당시 밝혔던 ‘조건 없는 찬성’과는 정반대의 입장이었다.

 

IMF 외환위기가 발생하며 사회적으로 경제 지상주의가 팽배해졌고 자연스레 재계의 힘은 더욱 굳건해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경련의 영향력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이후 추진되는 재벌 규제 정책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며 ‘개혁 반발 세력’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아울러 주요 그룹 간 입장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한 점도 위상 하락의 이유가 됐다. 김대중 정부 당시 전경련이 중재한 대기업 간 사업체 빅딜로 반도체 사업을 잃은 LG는 이후 전경련에 발길을 끊었다.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현 한국마사회 회장)이 2003년 2월부터 2년간 전경련 상근부회장으로 근무할 당시 재계에선 “전경련이 삼성 이해만 대변한다”는 거센 비난이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현 전 회장은 재계 단합을 이유로 2005년 2월 상근부회장에서 사퇴했다. 이 같은 위상 추락과 함께 전경련 회장직의 인기도 함께 시들해졌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에 이어 2010년 7월 회장에 오른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회장직 자원자가 없어 6년 넘게 회장직을 맡고 있다. 한 재계 인사는 “당초 올해 광복절 특사로 거론되던 모 그룹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특사 명단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없던 일이 됐다”고 전했다.

 

 

1988년부터 전경련 해체 논란 계속돼

 

최근 거세지고 있는 ‘해체 요구’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1988년에도 야당이던 평민당이 전경련 해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자유경제체제를 수호하는 정당에만 정치자금을 배분하겠다”는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또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문제가 터져나오자 경실련은 전경련 해체를 촉구했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기 전경련을 대한상의 등 다른 경제 단체와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전경련 해체 주장은 흘러나왔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계속되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동반성장 필요성이 대두됐다. 동반성장에 대한 딴죽이 계속되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해체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명박 대통령조차 “대기업 이익집단에서 벗어나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전경련 해체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민연대’가 4월2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해체 요구가 과거와 다른 점은 전경련이 정치적 사건에 직접 휘말려 있다는 점이다. 이번 미르·K스포츠 재단 파문에 앞서 △어버이연합 뒷돈 지원 의혹 △사법연수생 역사 강의에 보수 인사 초빙 △유관단체 자유경제원의 국정 역사교과서 옹호 및 야당 의원에 대한 색깔론 공세 등도 있었다. 전경련 안팎에선 이 같은 의혹 중심에 이승철 상근부회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전경련 사무국 수장으로 사실상 전경련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한 재계단체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정치에 욕심을 두고 자꾸 무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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