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힘을 잃어버린 사람은 더 이상 그 무엇에도 감동하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무언가를 보고 감동할 수 있다면 그건 살아갈 힘이 되살아났다는 뜻이다. 감동이라는 것은 제 안에서 자가발전처럼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무언가를 매개로 하지 않으면 생겨나지 않는다.”
1998년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지 않은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됐고, 일본 근대화 과정과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일본 지식인 사회의 주목을 받아온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가 《구원의 미술관》을 펴냈다. 2009년 그는 일본 국영방송 NHK에서 40년째 인기리에 방송되어 온 《일요미술관》이라는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게 됐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던 작품들을 소개하며 자신만의 잔잔하지만 단단한 예술론을 펼쳐낸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 강 교수의 예술론은 원고 집필 중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경험과 결합되면서 대재앙과 폐허, 빛나는 파열, 그리고 받아들임을 통한 구원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형성한다.
“나는 여기에 있어.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강상중 교수가 미술관에서 구원을 얻은 것은 30년 전 어느 날로 거슬러 오른다. 재일 한국인의 사회 진출이 쉽지 않아 대학원에서 유예기간을 갖던 중 은사의 권고로 독일 뉘른베르크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던 시기다.
“무거운 눈구름 사이로 엷은 햇살이 비치던 뮌헨에서 일어난 일이다. 장소는 독일 굴지의 국립미술관 알테 피나코테크의 한 전시실. 바깥의 쌀쌀한 공기가 웅장하고 화려한 사원 같은 건물의 어두운 장내까지 흘러들어 관람객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중세에서 근세로 접어드는 시기의 작품을 모아둔 방으로 가려다가 구석에 걸린 그림을 보고 그만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꼼짝할 수 없었다. 분명 초상화였지만, 내게는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남자가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 듯 느껴졌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그럼에도 일본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운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독일로 유학했던 청년 강상중은 우연히 방문한 미술관에서 ‘한 장의 그림’과 마주하게 됐다. 곧게 뻗은 오른손으로 옷섶을 여미며 캔버스 밖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그림은 르네상스의 예술을 좀 더 형이상학적인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이었다.
“아무리 미약하고 하찮을지라도, 내 마음속에는 아주 작은 빛이 분명 반짝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희미한 빛으로 눈을 돌려 바로 거기에서 희망을 끌어내려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자. 그리고 나를 뛰어넘는 한 걸음을 굳건히 내딛는 거야.’ 이런 결정적인 도약을 못한 것이다. 뒤러의 《자화상》을 만나고 나서야 내 마음속에 있던 그 어슴푸레한 빛으로부터 어떤 희망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다고 직감할 수 있었다.”
뒤러가 28세 되던 해에 그린 이 작품이 던진 강렬한 질문 앞에서 청년 강상중은 그제야 마음속에 꽉 차 있던 불안을 걷어내고 작고 미약한 희망의 불빛에 몸을 던질 수 있게 됐다. 뒤러의 《자화상》이 청년 강상중에게 던진 질문은 “나는 여기에 있어.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이다. 《구원의 미술관》의 원제이기도 한 이 질문은 오늘날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사회현상 등에 비판의 날을 벼르고, 한·일 양국의 수많은 독자들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 인생의 의미를 전달하는 강 교수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