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라”
  • 이규석 동북아국제문제연구소 소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0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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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메이와쿠 문화’ 탈출 욕구가 불러온 ‘아들러 심리학’ 열풍

 

 

지금 일본에선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겸 정신과 의사였던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1870~1937)의 말이 ‘부활’하며 새로운 유행을 일으키고 있다. 프로이트·융과 함께 세계 심리학계의 3대 거목으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선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아들러 심리학이 100여 년이나 세월이 흐른 지금 왜 일본에서 각광을 받으며 새로운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아들러 심리학’은 20세기 초 아들러가 프로이트에 반기를 들며 창시한 심리학을 일컫는다. 아들러의 언설(言說)은 ‘인간의 행복’이란 테마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에 가까운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미움받을 용기> 출간 후 ‘열풍’

아들러 심리학이 일본에서 대(大) 브레이크(히트)를 하게 된 것은, 일본의 한 서양 철학자가 아들러 심리학의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쓴 책 <미움받을 용기(嫌われる勇気)>를 출판한 것이 계기였다. 2013년 일본에서 출판된 이 책은 100만부가 넘게 팔리는 초(超)인기 밀리언셀러가 됐다. 이 책은 한글로 번역돼 한국에서도 출판됐는데 이 번역서도 100만부가 팔려 나가는 밀리언셀러가 됐다. 이어 2016년 2월에 같은 저자에 의해 출판된 속편(續編) <행복해질 용기(幸せになる勇気)>는 10여 일 만에 20만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각 서점에선 특설코너가 설치돼 독자들의 발길을 묶어 두고 있다. 

 

서적만이 아니다. 자녀교육에 애를 먹고 있는 부모들이 가정교육의 수단으로 아들러 심리학을 습득하려고 애쓰고 있다.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과 상사들은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하기 위해 아들러 심리학을 활용하려 든다. 정신과 의사들과 사회복지사들도 ‘멘탈 테라피(mental therapy)’를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아들러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학교 교육의 현장에서도, 심지어 사설 과외학원에서도 아들러 심리학에 정통한 전문가를 초청해 고교생 등 학생들에게 강연을 들려주고 있다. 바야흐로 일본열도는 아들러 열기에 빠지며 ‘아들러 전성시대’에 들어서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러 심리학의 정체는 무엇이고, 왜 일본인이 아들러의 ‘가르침’에 쏙 빠질 수밖에 없었을까. 여기엔 일본 문화의 속사정이 함께 얽혀 있다. 

 

국제 문화의 시각에서 볼 때 일본은 특수한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메이와쿠(迷惑·폐) 문화’가 그 한 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 경제는 고도 경제성장을 실현하면서 경제대국의 위치를 손에 넣었다. 국민들이 근면하고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일을 했고, 이것이 원동력이 돼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학교에서도 민주교육이 충실하게 이뤄져 학생들은 반듯하고 예의 바르게 성장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가장 철두철미하게 교육받는 내용은 남에게 절대로 ‘폐(메이와쿠)’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서, 이것이 이른바 일본 사회의 성격을 규정짓는 ‘메이와쿠 문화’가 돼버린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2를 낸 고가 후미타케(왼쪽)와 기시미 이치로.

 

아들러 열풍, 비틀스 신드롬에 뒤지지 않아

따라서 일본인들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타인의 눈치를 보고 타인의 ‘승인’을 받으려고 하는 성벽(性癖)이 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주위의 분위기에 휩쓸리기 일쑤다. 자기 자신과 자아는 찾기 어렵다. 

 

에도 시대에 보급된 공자의 논어, 고대 일본에 전파돼 일본화된 불교, 그리고 일본 고유 신앙인 신토(神道) 등 일본의 종교·사상도, 개인의 자유를 압살하는 역기능을 수행하게 됐다. 오직 국가조직과 단체를 중시하는 전통을 뿌리 깊이 내리게 했다. 

성별과 세대 중에서도 특히 20~30대의 여성들이 이 일본 사회의 집단을 우선하는 가치관에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20~30대 여성들이 지금 아들러 심리학에 가장 큰 열광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회적 구속으로부터 탈출해 아들러에게서 오아시스를 찾으려는 열망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타인의 눈치를 보며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메이와쿠 문화’와 일본 종교의 억압적 전통 등이 지금의 일본인들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일본인들을 정신적 아사(餓死)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요인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그 위에 현대 첨단과학 시대의 ‘문명의 이기’가 더해졌다. SNS 등의 융성으로 대인관계는 눈사람처럼 팽창하고 있다. 그 인간관계의 방식에선 인간이 바코드로 찍혀 인식되는 ‘물건’처럼 취급되기도 하고, 숫자와 수량에 지배당하기도 한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에선 ‘좋아요’와 공감의 숫자에 신경을 쓰게 된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 돼서다. 일본인들은 이렇게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소셜 미디어의 평판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일본인들은 아들러 심리학에 눈을 맞대게 된다. 아들러는 대뜸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신경 쓰지 말고 자기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이건 ‘메이와쿠 문화’의 완전해체를 선언하라는 외침으로도 들린다. 아들러는 덧붙이고 있다. “자기 자신이 타인에 어떻게 생각돼질지라도, 자기 자신의 가치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아들러는 주체적으로 자신을 믿으며, 미움을 받더라도 보다 적극적, 역동적 그리고 자연적으로 자기 인생을 살아가라고 조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나 조직논리에 구속받지 말라는 이야기로도 들린다. 

 

일본 사회는 한때 비틀스에 열광한 적이 있었다. 1960년대 일본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고도 경제성장, 도쿄 올림픽, 그리고 비틀스였다. 1966년 일본 부도칸(武道館)에서의 비틀스 라이브 공연은 전 일본에 비틀스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엄청났다. 그런데 이번의 아들러의 인기는 결코 비틀스에 뒤지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아들러가 사회적 구속으로부터 자유와 방종·이기주의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들러는 자신과 자기 긍정감을 가지고 이웃을 대하고 주변에 공헌하는 액티브한 생활을 계속한다면 행복한 삶을 개척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띄우고 있는 것이다.

 

아들러가 현대 일본 사회에 내려와 일본인들을 계발(啓發)시켜주는 수호신으로 등장하고 있는 모습이 놀랍기까지 하다. 아들러는 분명 삶의 정치사상으로서의 실존주의를 심리학과 정신의학 분야에서 구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본의 아들러 붐을 보고 있노라면, 아들러가 100여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현대 일본 사회의 현장 속으로 ‘재림(再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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