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자영업자 울리는 기막힌 ‘소액 사기’
  • 정락인│객원기자 (.)
  • 승인 2016.05.12 17:39
  • 호수 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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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무대로 ‘5만원 이하’ 빌리는 수법…신고 꺼리면서 피해자 속출

대전광역시 서구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이 아무개씨(여)는 최근 황당한 사기를 당했다. 4월30일 오전 10시쯤 매장 문을 열자마자 나이 지긋한 한 남성이 들어왔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얼굴이었다.

이 남성은 커피 한 잔을 시킨 후 자신의 나이를 63살이라고 하면서 이런저런 말을 걸어왔다.  “이 근처에 피부과를 개업하려고 한다. 커피가 참 맛있다”며 커피 한 잔 값을 지불하고 나갔다.

그런데 이 남성은 매장을 나갔다가 얼마 후 다시 들어왔고 이씨에게 “조명 사러 골목에 들어왔는데, 카드를 안 가지고 와서 그러니 조명 값 주게 1만6000원만 빌려달라”고 손을 벌렸다. 이씨는 금액도 많지 않아서 선뜻 돈을 내주었다. 이 남성은 매장을 나가는 척하다가 다시 돌아서서는 1만원을 더 빌려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 떼먹을 테니 염려 마라. 다시 오겠다”며 총 2만6000원을 가져갔다.

ⓒ Freepik

이씨는 커피숍을 개업한 지 얼마 안 돼 한 명의 단골 고객이 절실했기 때문에 의심 없이 돈을 빌려줬던 것이다.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사기당한 줄을 몰랐다. 약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이씨는 ‘내가 사기당한 것이 아닌가’ 하며 의심하게 됐다.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일을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바리스타 카페’에 올렸더니, 너도나도 같은 피해를 당했다고 댓글을 남겼다. 이씨는 그때서야 자신이 사기당한 것을 알았다.

아이디 ‘빨강*’은 “혹시 대전이세요? 저도 저번 주에 3만2000원을 귀신에 홀린 듯이 주고 말았어요. 피부과 하고 있다고, 돈도 돈이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가게를 몇 번씩 오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제 얼굴을 보고 대화를 했다는 게 소름 끼쳤어요”라며 치를 떨었다.

이씨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막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국민신문고’에 피해 내용을 토대로 신고 접수했다. 이씨는 “사기 치려고 골목을 돌며 물색하고 다녔다는 게 소름 끼친다. 여자 혼자 장사하는 것도 무서운데, 이런 사기까지 당하니 황당하다”며 “귀신에 홀린 느낌이었고, 다시 온다는 걸 믿고 바보같이 기다렸는데 결국에는 안 와서 신고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에게는 크게 세 가지의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객의 요구를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둘째, 커피숍 주인이 여성이라는 것이며, 셋째, 피해금액이 5만원 미만의 소액이라는 점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사기범은 한 명의 고객 확보가 절실하고, 여성 혼자 있는 매장을 범행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기금액이 소액이어서 피해자들 대부분 ‘액땜’한 것으로 여겨 신고하지 않거나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꺼렸다.


‘동일 인물’ 사기범으로 지목

바리스타 카페 피해자들의 피해 경험담을 들어보면 수법도 여러 가지였다. 또 피해자들이 지목하는 범인의 인상착의는 모두 동일 인물이었다. 실제 피해자들이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매장 내 CCTV에 찍힌 범인 또한 같은 인물인 것을 알 수 있다. 피해지역도 대전뿐 아니라 서울 등 전국을 무대로 돌아다니며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아이디 ‘rarar*’는 “저도 완전 비슷해요. 자기가 ‘근처 사거리에서 피부과 개원하는 의사다. 공사 중인데 이제 우리 직원들 이쪽으로 소개하기 위해 구경 온 거다’라고 했다”며 “60대 정도인데 머리 묶고, 로퍼, 흰 바지에 선글라스까지 멀쩡해서 전혀 의심을 안 했다. ‘가게 앞에서 뭐 좀 사려는데 2만3000원이 부족하다’며 바로 가져다주겠다고 해서 돈을 줬는데 그 뒤로 얼굴을 못 봤다”고 말했다.

하마터면 사기를 당할 뻔했다는 아이디 ‘작은연*’도 다른 사기 피해자들이 지목하는 사기범이 동일 인물이라고 했다. 그는 “얼굴 보니 우리 집에 온 사람, 저 사람 맞아요. 전에 다른 분도 당하고 사진 올렸는데 같은 동일인이네요. 피부과하고 있다고 1만4000원 빌려달라 했어요. 단체 예약이나 더치 주문한다면서 계속 만 몇 천 원 정도 돈을 요구했는데, 10분 후 직원이 온다기에 그때 사라고 했어요. 너무 비슷해요”라고 말했다.

아이디 ‘후8*’은 약 2년 전쯤에 비슷한 사기를 당했다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그에 따르면 “저도 더치 커피 취급 안 한다고 했더니 선물하기 좋다면서 (돈을 빌려달라더니) 커피 한 잔 마시고 나갔다가 10분 정도 있다 와서 또 빌려달라고 했다”며 “여러 건 사기 치면 잡힐 텐데 소액이라 신고를 안 해서 그런가 계속 사기 치고 다니나 보네요”라며 주의를 요구했다.

돈을 빌리는 수법도 가지가지다. 매장 주인 대신 아르바이트생이 있는 경우에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매장 주인 지인인 척하며 돈을 빌려가기도 한다.

아이디 ‘쪼*’는 동일한 인물인데, 사기 내용이 좀 달랐다고 말했다. “이 사람 아직도 이러고 다니나 봐요. 저희 동네에는 양복차림에 명찰 단 뚱보 사기꾼 왔었어요. 차를 견인해갔는데 지갑이랑 핸드폰 다 차 안에 있다고 3만원 빌려달라고 해서 저 털렸었거든요”라며 피해 경험담을 들려줬다.

일명 ‘밑장 빼기’ 수법도 있다. 가령 10만원짜리 수표나 5만원권을 내고 잔돈을 거슬러주면 여기에서 1만원을 몰래 빼고는 덜 거슬러줬다고 하면서 만원을 더 받아가는 것이다.  또 이러한 소액 사기는 커피숍 뿐 아니라 편의점, PC방 등에서 이뤄지고 있다. 소액 사기 피해자들 대부분은 사기범으로 한 남성을 지목하고 있다. 바리스타 카페에서는 ‘소액 사기범을 조심하라’며 이 남성의 사진이 회원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다.

해당 사기범에게 당했다는 피해자는 전국에 걸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근에는 대전 지역에 집중돼 있다. 이 지역에 있는 여성 자영업자가 특히 주의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역과 동네를 옮겨 다니며 사기를 치다가 들통날 것 같으면 다시 다른 지역으로 옮겨 사기를 치는 방식이다.

전국에서 피해자가 속출하는 만큼 커피숍이나 다른 자영업자들은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수사기관이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들은 “사기범은 소자본 자영업자들을 등쳐먹고 수법도 다양하다”며 소액이라도 적극 신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피해자인 이씨가 국민신문고에 신고한 것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그에 따르면 “경찰청에 사건이 배정됐고, 12일에 응답해준다고 나와 있는데, 아직 전화 온 것은 없다. 상습범인 것 같고, 바리스타 카페에 피해자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어 불안하다”고 말했다.

형법 제347조는 ‘사기죄’를 사람에 대해 직접적으로 행하는 사기 이외에도 컴퓨터를 이용한 사기, 미성년자 등을 이용한 사기, 편의시설을 부정하게 이용한 사기, 부당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한 사기를 규정하고 있다. 이 중 사람을 기망해 재물의 교부, 이익을 얻었을 때는 10년 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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